좁은 문

일/글쓰기 2013.06.03 23:08

좁은 문. 대학신문 5월 27일자 맥박.


『좁은 문』의 주인공 알리사는 사촌동생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혼자 쓸쓸하게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알리사를 강하게 지배한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는 그가 지상의 사랑을 억누르고 ‘좁은 문’을 거쳐 신에게 의탁하는 길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유년 시절 알리사와 제롬이 함께 들었던 주일 설교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불면과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했다.

지금도 매일 밤 수많은 청춘은 좁은 문을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종교적 구원의 문이 아니라 정규직 취업의 문이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가는 길은 갈수록 험난해진다. 청년들은 서로를 밀치고 제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애쓴다. 그 옆에는 매우 크고 한산한 문이 비정규직이란 문패를 달고 섰지만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월급(명목임금)은 정규직이 253만원, 비정규직이 141만원이다. 격차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란다. 전체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증가했는데,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 가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정규직은 상승하고 비정규직은 하락했다. 게다가 잇단 산재 사망(대우조선해양), 계약 해지 후 자살(현대자동차), 실적 압박으로 투신(롯데백화점)과 같은 우울한 소식을 듣고 있자니, 정규직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비유는 문학적 수사에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알리사가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좁은 문에 다가가려 했다면, 오늘날 청춘은 ‘세속적 금욕주의’라 할 만한 태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견결하게 다듬는다.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점 관리에 힘쓰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이제 여가와 휴식, 우정과 사랑마저 세속적 금욕주의로 승화한다. 동아리 활동은 기왕이면 봉사활동이나 영어토론이 좋다. 프레젠테이션 동아리, ‘금융’이나 ‘경제’가 이름에 붙은 동아리라면 더 좋다.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듣기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미드’를 본다. 인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친구를 사귀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뺏기지는 않는다. 집값과 양육비 걱정에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소문에 따르면 한번 비정규직 트랙에 올라타고 나면 동일 노동을 하고도 2/3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4대 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되고, 또 좀처럼 비정규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씁쓸해하는 한편 또 오늘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지 헤아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좁다.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을 꿈꿨던 수많은 이들은 인턴, 계약직, 파견직, 기간제, 하청, 특수고용 등 이름도 다양한 비정규직의 넓은 문으로 무기력하게 떠밀려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푸어’해지는 각종 신조어들이 낙인처럼 찍힌다. 문을 뚫고 마침내 성취한 소수의 성공담은 낙오자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상처가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오늘도 이 말을 되뇌며 버스에 지친 몸을 실었던 당신. 세속적 금욕주의로 삶을 벼리며 좁은 문에 끼워 넣으려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품었는지. 좁은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치며 어떤 멍이 들었는지. 들춰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상처들을 온몸 깊은 곳에 숨겨뒀는지.

 『좁은 문』으로 앙드레 지드는 사랑을 가로막는 종교적 윤리의 허무함을 비판해 기독교적 유럽 사회에 격론을 일으켰다. 숭고한 삶과 세속적 삶의 엄격한 구분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제약한 전통적 이분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 청춘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좁은 문은 어떤가. 좁은 문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떤 반기를 들 수 있을까.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트랙백  0 ,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1.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하...좁은 문 비유까지 ㅜㅜㅜ
    역시 대단하십니당!!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