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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70122

  생각이 많은 밤이다.


  새로 이사 온 방은 두 면이 통유리다. 방 전체가 대략 직사각형 모양이니 벽의 절반은 유리인 셈이다. 코너 끝 방이라 가능한 구조. 처음 이 방을 보러 왔을 때, 온실같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가득히 들이치는 방안에서 광합성을 하다보면 나도 조금은 자랄까. 그런 마음으로, 조금은 부담스러운 월세에도 선뜻 계약했다. 창이 난 방향이 동북-동남인 탓에 오전에만 해가 들이치는 것 까지는 생각도 못 했다. 다행히 아침 햇살이 워낙 밝아 기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침대를 창 옆에 바짝 붙였다. 10층인 데다가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커텐도 활짝 걷고 산다. 침대에 누우면 창으로 바로 하늘이 보인다. 누워서 보는 것은 대체로 구름. 가끔 날이 좋은 밤에는 별도 보인다. 그렇게 누워서 아무런 생각 없이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 따위를 보고 있자면, 홀로 우주에 남겨진 기분이다. 아주 고독하고 특별한 우주. 그 우주에는 외로움도, 슬픔도, 질투도, 후회도 없다. 그저 구름만이 무심하게 흐른다. 언젠가 새벽녘에 문득 잠에서 깬 적도 있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노랗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색감이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중 일요일에는 늦잠을 잘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해를 받을 수 있는 날이다. 햇볕 비추는 매트리스 위를 손으로 훑고 있으면, 햇살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온난한 감각을 즐기다가, 괜히 옷을 벗고 광합성에 나서기도 한다. 나신으로 햇살을 받는 행위에는 간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기묘한 야릇함이 있다.


  지난 주말에 첫 소장을 썼다. 수업 과제로 써본 것이지만, 상담기록과 등기부, 계약서 등 제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쓰는 기록형 과제라서 정말 소송을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쓸 수 있었다. 법 실력이 미천한 탓에 터무니 없는 주장을 많이 넣긴 했지만, 교과서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모아 추리를 완성해 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완성된 소장이 형편없어서 마음이 안좋긴 했다. 내가 누군가를 대리한다면 이런 수준으로는 안된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를 믿어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기분은 참을 수 없다. 신뢰는,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고독하고 특별한 우주에 홀로 누워 판례를 읽고, 잦은 오류를 책망하다가, 아주 길고 어려운 전화를 한다. 나만의 우주와 교신하는 사무적인 음성은 어느새 눅눅해진다. 눅눅한 전화는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전화가 끊기면 내 우주는 끝내 난파하고 마는 것 아닐까. 두렵다. 어제보다 작아진 이 방에서.


  나는 언제부터 방에 집착하게 된 걸까. 몸 누울 자리 하나 없이 방황하는 공포. 너는 내 생각을 궁금해했고, 나는 바보같은 나의 심연을 빨래처럼 널어두었다. 빨래는 역시 눅눅했다. 몹시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