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새_ 심보선

새 / 심보선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깔깔깔.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영혼을 동그란 돌처럼 가지고 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작 자기 자신의 영혼에는 그토록 진저리치면서.


사랑이 끝나면, 끝나면 너의 손은 흠뻑 젖을 것이다.

방금 태어나 한 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의 살결처럼.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

새를 잡는 시늉도 않는다. 나는 눅눅한 빨래를 개고, 책상을 정리하고, 팔굽혀펴기를 서른 개쯤 하다가, 무표정하게 잠에 든다.

하루 내 미풍은 없었지만, 눅눅한 냄새는 계속 따라온다. 킁킁, 무슨 냄새야. 얼굴을 찌푸리고 걷다가, 냄새의 근원지가 나였음을 깨닫는다. 동그란 돌처럼 갖고 놀다가 생채기가 난다.

민법 469조2항을 소리내 읽으며 겸허해진다. 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이해관계없는 제3자. 누구도 대신 욕망하지 못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가 필요해

라라라라랄라 라라라랄라랄라 랄랄라라랄라 라라라라라랄라

라라라라랄라 라라라랄라랄라 랄라라라랄라 라라라라라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