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섬세한 감수성과 치밀한 문장으로 인...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욕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려면, 여러 번 책장을 덮어야 한다. 안개꽃 자욱한 표지를 바라보며 묵묵히 삼키는 순간을 견뎌야 한다. 심호흡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음 장의 슬픔을 각오해야 한다.


  읽는 내내 선배들을 따라 다녀왔던 망월동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봤던 생생한 사진들, 기록들, 마른 꽃이 놓인 묘역들.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채 리어카에 대충 실어 한꺼번에 매장했다던 구묘역의 서늘함. 5. 18을 맞아 단체로 참배 온 사람들과, 여기저기에 휘날리는 리본들과, 격한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간간히 들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그런 것들이 의외로 활기차게 느껴져서 기묘한 축제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 그 후로도 몇 번 더 망월동을 찾았지만, 구묘역은 기억보다 점점 더 초라해 보였고, 그만큼 신묘역의 기념탑은 웅장하고 깔끔해 보였다. 그때의 기억들이 이 소설을 더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읽도록 했는지, 아니면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은 제목의 ‘소년’인 동호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년은 옴니버스로 구성된 각 단편을 꿰뚫는 연결고리가 되어, 5.18을 통과한 여러 삶을 이어준다. 소년은 때로 직접, 때로는 간접적으로만 등장하는데, 입체적인 중층구조가 되어 소년의 이야기, 소년을 스쳐 간 화자의 이야기, 화자의 이야기 속에 남아있는 소년의 흔적을 연결짓게 한다. 그러나 정작 소년의 죽음에 대해서는 매우 간결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데,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간단히 소멸해버린 생에 대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부여잡고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아마도 필사적으로 썼을 것이다. 더는 인간성이 모욕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월에 ‘부서져버린 유리조각’을 맨손으로 쓸어담으면서 생채기가 많이도 났을 것이다. 상처 입은 존재들을 유달리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이기 때문일까. 몇 달간 광주의 기록을 읽으며, 울먹이듯 글을 썼을 작가를 생각했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잔혹한 사건은 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니까. 상처받은 개인의 내면에 천착해 온 지난 소설들을 생각하면, <소년이 온다>는 의식적으로 외부를 향하는 편이다. 상처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드러내면서도, “진짜 유리로 만든 인간”들을 위하여 대신 분노하고, 소리친다.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져버릴 것만 같던 지난 작품들 속 인물에 비하면,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들은 차라리 영웅적이다. 누구도 큰소리로 외치지 못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검은 숯덩어리가 된 페이지를 다시 집어 드는 마음으로.


  각 장 사이에서 삐걱거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일 튀는 편인 2장은 지나치게 운문적이고 ‘마술적’이다. 후안 룰포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이었지만, 정작 그 의도와 효과가 무엇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소설가 한강의 시적 역량에 대해서는 (시로 등단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회의적이다. 문체에서 한강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3장과 5장으로 생각되는데, 모두 여성 화자이다. 서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는 4장으로, 화자의 계속되는 물음에 독자는 인간을 대표하여 연신 사죄하고 싶은 심정에 빠진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그러나, 소재를 택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만큼 광주는 지난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30년이 넘게 흘렀으니, 이제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쓰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독자들이 납득할 것인가. 사족처럼 붙인 에필로그는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이제 청년들에게 광주는 자신과 무관한 비극이거나, 그저 역사 속 사건이거나, 심지어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일 것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돌을 던지는 대신, 묵묵히 이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덧///

  오월 광주야말로 내가 최근 좋아하게 된 칸트의 말이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섬에 범죄자가 있다면 그 섬이 내일 당장 바닥에 가라앉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내일 범죄자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 전에 반드시 인간의 손으로 범죄자를 직접 처단함으로써 훼손된 인간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이성과 정의는 더럽혀지게 된다.”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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