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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잔 속 얼음이 바스락 하고 무너졌다. 창밖으로는 진부한 풍경. 내손으로 찢어놓은 영수증을 조각조각 천천히 손에 모았다. 얼그레이가 차가웠다.

언젠가 약속을 말한 일이 있었다. 나란히 흙길을 걸은 날도 있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진다던 수풀길 끝에는 검은 진창 뿐이었지만, 와인이 서늘했으므로 마음에 들었다.

느리게 헤엄치는 잉어도 물을 지겨워하는 날이 올까. 그 날도 여름이었다. 거울못에 비친 뜨거운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리 밑으로 침을 뱉고 싶었다.

삼류 소설쯤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마스킹이 철저했다. 검은 화면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한참을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