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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산책



장례식이 끝날 즈음엔 너무 울어서, 걸어 나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용케도 심장이 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헌화를 마치고도 한참을 앉아서 선배의 친구들이, 동료들이, 가족들이, 후배들이(나의 선배들이) 헌화하는 길을 지켜보았다. 선배들은 꺼이꺼이 많이도 울었다. 전에도 종종 봤을법한 우는 얼굴. 적어도 그 때는 서로의 등을 두들겨줄 정도는 되었다.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선배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였다. 그저 유아적 사고밖에. 이름 석자 오직 선배만을 위해서 할 수 있었을 것을,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다느니, 부끄러운 이름이라느니, 개소리를 변명처럼 지껄여댔다. 고맙다는 편지를 뒤늦게라도 부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때로는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루고자 했던 무엇도 달성하지 못했고, 모든 면에서 철저히 패배하였으며, 내가 건넨 모든 말이 나의 말로 번복되었다는 생각. 나는 사랑도 동지도 잃고 철저히 혼자 남겨졌으며, 그리하여 내 삶으로 의미를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내가 내일 사라지고 나면 어느 문자도 날 기록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산책을 나선다. 생존을 위한 산책이다. 그저 바닥에 한 발씩 내딛으며 단단한 대지에 안도하는 것 외에는 방황하는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내가 서른의 문턱에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나는 내 삶의 주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고작해야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조연이고, 영웅적 서사의 장애물이며, 해피엔딩을 방해하는 악역이다. 그래서 뭐?라고 물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꺼져버려!라고 하면 미안해...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다. 미안한 조연이라서_ 2015. 1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