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랑 2015.12.12 22:57


도서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있는 비온 뒤 낙엽 사진


 

학사거부가 시작된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설을 읽고 있다. 지난주에는 거리홍보니 TF니 정신 없었는데, 주말쯤 되니 시간이 남아돌아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이 붕 뜨니 공부할 마음도 안들고 그렇다고 달리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그래서 밀렸던 독서나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김연수의 장편소설을 하나 빌려왔을 뿐이었는데, 밤새 한 권 읽고는 독서병이 도졌는지 이제 침대 옆에 책을 쌓아놓고 읽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책을 읽는 형편이라 글에 주렸는지, 현재까지는 매일 단행본 1권반 정도 읽는 강행군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방에서 책을 읽었다. 유일한 외출은 중앙도서관에 책을 새로 빌리러 다녀온 길이었다. 고대 중도는 일반열람실은 거의 없고 거의 모든 공간이 대출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아담해서 책 고르기 좋다. 특정한 책을 검색해가지 않아도 적당히 해당 코너에서 들춰보고 고를 정도는 된다. 특히 한국소설은 4층 코너에 작가 이름순으로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으니, 교보나 반디 같은 곳에서 책을 고르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다. 서울대 중도에서 책을 빌릴 때에는 미리 청구번호를 알아가지 않으면 한참을 헤매야 했는데 고대에서는 그리도 쉽게 책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고대는 洋書와 國內書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원서들은 리모델링이 안된 별도의 자료실에 따로 소장되어 있고 일반적인 국내서들만 비치되어 있으니 대형서점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반면 서울대에서는 예컨대 프랑스혁명에 관한 책을 찾으려고 해당 코너에 가면 영어본은 물론이고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책에다 세로쓰기의 일서까지 잡다하게 섞여있으니 내가 읽을만한 책은 도리어 찾기 어려웠다. 연구생이 아닌 입장에서야 원서를 본격적으로 읽을 일이 많지 않으니 국내서만 있는 편이 확실히 책 고르기는 좋은 것 같다.

 

          여하간에 오늘은 도서관 김연수 칸에서 철지난 소설을 두 권정도, 트위터로 가끔 소식이나 훔쳐보는 지인의 아버지가 쓴 소설도 한 권, 뜬금없이 궁금해진 빌 클린턴 자서전 1권을 골랐다. 또 매번 읽어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던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집었으나 집에 와서 5페이지쯤 읽고 나서야 몇 년 전쯤에 이미 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에 좀 힘을 낸다면 아마 월요일 저녁쯤에는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자주 갔던 도서관이 몇 곳 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왔던 17살 무렵에 즐겨 찾은 성북정보도서관. 꽤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면 있는 나름대로 규모 있는 도서관이었다. 지하에 있는 저렴하고 볼품없는 구내식당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무언가 읽으시는 할아버지가 많았다. 소장 중인 책이라고 해봐야 그저 동네 도서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문학과 철학에 대한 나의 기본지식은 이 곳의 책들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들이 결국 내 학부전공까지 결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장승배기에 있던 동작도서관. 1년 정도 다녔는데, 별다른 기억이 없다. 이삭토스트를 손에 들고 도서관을 향하던 춥고 지겨운 골목길만 생각날 뿐.

 

그리고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이다. 이제는 중도라고 해야 할까. 7동에는 三史科 도서관도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도서관을 갈 때면 언제나 중도 3열이었다. (졸업할 즈음에는 1열에 더 많이 갔다) 많은 도서관과 구별되는 중도의 특징이라면 칸막이 없이 드넓은 테이블만으로 이루어진 열람실이었다. 다른 도서관에도 대출자료실에는 칸막이 없는 테이블이 드물지 않게 있었지만, 열람실만은 대부분 독서실 칸막이형이었다. 그런데 중도는 큼직한 홀 안에 커다란 테이블만 널찍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으니, 열람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카페테리아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곳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자면 더러 하품하는 앞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고, 시선을 내리고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정수리를 보며 자극을 받기도 했다. 테이블이 널찍하니 사람이 적을 때엔 얼마든지 책을 사방에 늘어놓고 공부해도 되었다. 밤에 마감할 시간이 되면 흘러나오는 메시지도 좋았다. 오늘 한 노력이 훗날 많은 이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고 했던가.

 

이따금 다른 도서관을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예를 들어 남산도서관이나 정독도서관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겸해서 공부하러 가기 좋았다. 남산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갈 때면 커피 한 잔씩 들고 오솔길을 한참을 산책을 했고, 정독도서관에서는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밤이 돼서야 가방을 찾으러 도서관에 돌아오기도 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강남도서관, 한양대 법도, 삼성도서관, 그리고 지금의 CJ나 해도까지 여러 도서관에 머물렀지만, 역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성북도서관과 서울대 중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친구에게 농담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도서관 컨셉의 바bar를 차릴 거라고.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어디 예일이나 옥스포드에 있을 법한 도서관 인테리어를 해두고, 실제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 10시가 되면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데, 모두들 즉시 그 자리에서 책을 치우고 바로 술판을 벌이는 거다. 오늘 읽은 책이 얼마나 흥미롭고 새로웠는지, 내가 그 지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싶은지 서로를 향해 열변을 토하면서. 물론 친구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은 된다고 생각한다.

 

어서, 이 곳의 도서관에 정을 붙여야 할 텐데. 거의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CJ 열람실은 답답하고 해도는 부산스럽고 다른 곳들은 번거롭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주로 해도에서 공부했다. 곧 학사거부가 풀리면 정착할 곳을 찾아봐야 한다_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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