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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_ 최은영


  『쇼코의 미소』를 다시 읽었다. 지난 번에「쇼코의 미소」를 읽고, 오로지 선한 의도로 가득찬 주인공들에 대해서 불평했다. 다시 읽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리고 최은영 작가님의 팬이 되기로 했다. 특별히 대단히 좋았던 작품이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재미있었다. 어색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으나,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문체가 담담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쇼코의 미소』를 읽고나면 좋은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만족감이 든다. 일종의 작은 어쿠스틱 콘서트라고 할까. 대단한 실력파라는 느낌이 없어도 저절로 빠져드는 소극장의 아늑함이랄까. 작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이한 관념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읽었더라도 작가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는 일은 드물다. 작품은 작품이고 작가는 작가니까. 그러나 최은영의 소설을 읽고 나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 친해져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작가님이 다음 작품도 잘 써내기를 응원하는 팬심 가득한 독자가 되었다.

 

  아마도 작품에서 자전적 목소리가 많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세대의 권작가님이라고 보아도 되겠다. 내가 특히 재밌게 읽은 건 외국사람과 교류하는 대목들이다. 서로 터놓고 소통하길 원하면서도 언어·문화적 차이로 오해가 생길까 두려워 양해를 거듭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제멋대로의 호의와 기대로 반목하게 되는 사람들. 경험에서 나온 듯한 자전적 이야기가 특히 매력적이다. (반면 서영채 문학평론가가 해설하는 조부모와의 정서적 교감 부분은 크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나의 경험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조부모의 마음을 순하디 순한 무조건적 사랑으로 그리는 것은 조금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보다 작가에 호의를 가져도 괜찮은 것일까? 아무리 작가가 마음에 들었다지만, 작품평을 찾아보는 대신 작가의 인터뷰를 검색하는 것은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뭐, 딥러닝 시대에 어울리는 독자의 자세이긴 하다. 훗날 알파고가 아무리 좋은 소설을 써내게 된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