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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by 봉준호

옥자

 

사랑은 보편적이지만, 사랑의 조건은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랑 이야기는 보편적인 서사를 개별적인 사랑의 조건이 드러나도록 잘 세공해야 한다. 우리는 삶에 관한 진실을 깨닫기 위해 허구의 이야기를 본다. 진실로 믿을만큼 훌륭한 거짓말은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은 디테일에 있다.

 

내가 미국인이었더라도 <살인의 추억>을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까? 아닐 것이다. 잘 만든 스릴러이긴 하지만, 인생의 영화라고 할 것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내가 조용구(폭력경찰)라는 인물을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을 나의 한국적 배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조용구라는 인물의 입체성이 좋다. 가끔은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진다.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 인물에 이렇게 빠져버린 건, 그만큼 디테일이 훌륭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봉준호의 <옥자>는 재미있다. 서사가 난폭하게 튀지만 장점이 될 뿐이다. 주제도 시의성이 있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미야자키 하야오 풍의 동화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동시에 장피에르 주네 식의 기묘함이 공존한다. 생각보다 잔인하지만, 관객을 불필요하게 고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옥자>는 결코 명작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넷플릭스는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 생각도 없었겠지만. <옥자>는 현실과 환상에 반쯤 걸쳐있다. 현실의 서울과 뉴욕이 익숙한 공간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낯선 모험이 펼쳐지는 가상의 공간일 뿐이다. 의미있게 등장하는 사회적 디테일들, 예컨대 4대보험, 사설경비업체, 유별난 경영자 자매같은 블랙유머들은 확장되는 일 없이 판타지 속에서 일회적으로 소비된다. 이는 <살인의추억>이나 <괴물>같은 봉감독의 위대한 성취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아예 차라리 환상 속으로 뛰어들어서 더 그럴듯한 거짓말의 세계를 창조했으면 어땠을까? 하긴, 그러려니 이미 <설국열차>라는 실패 사례가 있다.

 

어쨌거나 모자이크처럼 시골과 도시, 서울과 뉴욕, 현실과 환상, 블랙유머와 교훈드라마, 모험액션과 잔혹드라마를 거칠게 이어붙인 <옥자>는 서로 다른 분위기의 공존이라는 위태로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기는 하다. 넷플릭스와 극장개봉으로 태생부터 하이브리드였으니,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옥자를 보면 넷플릭스가 염두에 둔 주 고객층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미국 영화관객은 동양인 감독이 만든 동물권 이야기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