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12월 1일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잠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로 로스쿨에서의 마지막 학기시험이 끝났다. “무사히 수료는 하겠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쨌든 나도 무사히 수료는 하게 되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즐거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지치거나 외로운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날들은 잔잔하게 지나갔다. 그런 잔잔한 일상이 모여서 행복을 이루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이제 학교를 떠나도 매일매일을 잔잔하게 잘 살아내야지.

 

그래서 요즘에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본다. 숭고함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일단 학자금부터 갚고’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대단치도 않은 빚이지만, 로펌행의 핑계로는 제격이다. 핑계마저 다 떨어지면 무슨 말로 나의 인생을 변명해야 할까.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변명을 되뇌이는 건 스스로의 결정에 확신이 없어서일까.

 

온 힘을 다해 몰입할 수 있는 일생의 과업을 찾고 싶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나서기엔 절대선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제는 모든 주장에 일장일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양비론의 대가가 되었다. 어느 법학자는 행정행위의 공정력을 부정하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라고 말했다던데. 그러나 당연히 국민의 권리신장처럼 보이는 이론조차 공동체적 관점에서 부당할 수 있다. 순진무구한 선행이 생각치 못한 피해를 끼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지구에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음악, 학문, 저술, 산책, 요가, 뭐 그런 것. 한마디로 놈팡이로 놀고먹고 싶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