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갈까 말까 며칠을 망설이다가 내일자 항공권을 질렀다.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신작 <패터슨Paterson>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패터슨>은 시적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언 그대로 마치 시와 같다는 말이다. 시는 그저 단어들이다. 단어에는 표정이 없다. 단어의 선택로부터 표정을 짐작해 볼 뿐이다. 영화의 시선도, 남주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의 연기도, 종이에 적힌 시처럼 담담해서 모호하다. 그리고 그 담담함이 감정의 진폭을 넓힌다.

 

주인공은 말하자면 방구석 시인이다. 위대한 시인도 몇명을 탄생시킨 조용한 소도시 패터슨에서 그는 혼자서 가끔 시를 쓴다. 비밀노트에 적어내려간 몇 편의 시가 언젠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쩌면 위대한 시로 칭송받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아마도 그저그런 시시한 시겠지만. 그렇게 혼자서 시를 쓰는 사람에게 과연 영화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날까?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가 종이에 적힌 활자처럼 담담하니 각자의 독법으로 읽어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삶 속에서 예술적 열정을 잃지 말자는 낙관적인 영화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대단히 염세적이다. 이 세상에 해맑은 시는 없다던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이 영화시에는 담담한 비관주의가 팽배하다. 그러나 최하의 삶을 잔잔한 미소로 노래하는 블루스처럼 너그럽다.

 

언젠가 친한 친구 두셋과 자작시 동인을 꾸린 적도 있었다. 그 때 시를 끄적이던 노트는 이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런던행 비행기를 예매하면서, 작은 노트도 하나 샀다. 재생지가 얇고 매끄러운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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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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