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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태도의 문제

 

연휴동안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At the Will of the Body: Reflections on Illness>를 읽었다. 사회학자인 프랭크는 39살과 40살에 갑작스럽게 심장마비와 암을 겪으면서, 삶과 질병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은 그가 아픈 몸을 살아내면서 가졌던 생각들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기회라니. 질병이 어떻게 삶에 기회일 수 있을까?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이따금 아프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중병을 앓아본 일은 없다. 내 삶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도 없다. 며칠간 불편에 시달리기도 하고, 뭔가 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 날도 있었지만, 결코 온전한 몸에 대한 환상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비가역적인 질병을 겪어내고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삶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통찰을 갖게 되었다는 프랭크의 증언에는 얼마간 거리감을 느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프랭크의 태도는 확실히 감동적이다. 질병을 겪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삶의 모습들, 새롭게 느꼈던 감정들, 상실감과 두려움, 고독감, 희망과 좌절까지 전부 그 자체로 자신의 삶으로서 긍정하려는 태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회복에 안도하면서도, 그 것이 전적으로 우연한 결과임을 인정한다. 그는 불멸의 의지로 고통을 이겨낸 것도, 신의 은총으로 축복받은 것도 아님을 안다. 그저 아픈 몸을 묵묵히 살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묵묵히 살아낸다는 것이 질병의 회복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서글픈 진실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임을 존중한다. 요컨대 이 책이 주는 울림은 내용보다 태도에서 온다.

 

아픈 몸을 살아낸다는 것은,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입학하고, 친했던 친구와 절교하고, 자신을 돌보지 못할 만큼 사랑에 빠지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또 그 것을 잃어버리고, 옛날 일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일 만큼이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병 서사와 의료윤리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생에 집착하지 않는 관조적 태도야말로 이 책에서 읽어야 할 교훈이었다. 제멋대로 한 오독일 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