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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너에게.

명동성당이 네오고딕인지, 고딕 리바이벌인지는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플라잉 버트리스가 있는지, 아니면 흔적만 남았는지도 아무 상관 없지. 중요한 건 그게 말이 되느냐야. 말이 된다는 감각.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감각을 기다려 왔다는 생각이 들어. 어둑해진 하늘과, 은은하던 조명과, 선선하던 바람과, 나른했던 목소리와, 가볍게 스치던 피부의 예리한 감각 같은 것들 전부 다 좋았지. 그 날의 네가 자주 생각날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이 된다는 감각, 그 감각에 모든 걸 걸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어.

이야기를 좋아해. 그럴듯한 이야기에 대한 갈망으로 소설과 영화를 찾아다녔던 것 같아. 서사에 약한 타입. 음악을 들을 때도 가사에, 회화를 볼 때조차 알레고리에 탐닉하는 타입. 그러니까, 나는 이야기가 말이 되는 사람을 찾아 떠돌고 있는 셈이야. 너와 느린 걸음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속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상상해 봤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너와의 쓸쓸하지만 그럴듯했을 이야기를 말이야.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여행길에서 돌아와 아직도 추억에 흠뻑 젖어있는 너에게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 손쉽게 흘러가버리도 말았을 순간을, 나는, 우리는 언제쯤 캐치할 수 있을까? 지금이 그 순간인지 도무지 알아챌 방도가 없는데도.

그래도 나는 이 망상이 꽤나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이상할 정도로 근거 없는 확신이 들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상한 그대로의 말이 나올 때마다 깊은 곳의 무언가가 사그러드는 기분이었지만, 때로는 땅으로 꺼지거나 점으로 쪼그라드는 감각이었지만, 생각만큼 구슬프지 않고 오히려 생의 가장자리가 넓어지는 것 같았어.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난다는 건 그만큼 희소하고도 고귀한 경험이니까. 유예된 행복감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기분이었으니까. 금방이라도 타올라 없어질 양초처럼.

어때, 나름대로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