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다 - 비상총회 비판에 부쳐



  먼저 간단한 참여 소감에서 시작하겠다. 어젯밤 6시경부터 아크로 비상총회에 참여하여 표결을 마치고 본부 점거에 참여했고, 오늘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길지 않은 대학생활이지만 학생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은 웬만큼 봐왔다. 삽질하는 총학생회도 봤고, 있는 듯 없는 듯 내려오는 총학생회도 봤다. 총학생회가 없던 시절도 겪었다. 이번 비상총회? 내 대학생활 동안 총학생회가 이렇게 제대로 준비하고 세련되게 진행한 행사는 처음이었다. 선동적 분위기를 자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행사였다.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수정동의안에 대한 표결로 시간이 지체되어 두 번째 안건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있겠다. 총학생회 측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찝찝함은 지울 수 없다.)

  스랖의 일부 여론이 총회의 방식에 부정적임을 안다. 이들의 비판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듯 하다.


1) 표결이 공개투표로 이루어짐. 2) 총회 자리의 일방적 분위기.


  그러나 두 비판 모두 총회의 위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첫 번째 비판의 경우 대학생들이 정치적 경험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듯해서 더욱 안타깝다.




1) 표결이 왜 공개투표???



  아마도 대학생들이 행하는 정치경험이란 십 년에 서너 번 치르는 선거가 전부인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걸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식이 낯설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표결은 원래 공개투표가 원칙이다. 이는 운동권의 문제도, 총회의 비민주성과도 관계가 없는 일이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표결을 할 때에도, 각 종 주류 정당에서 전당대회나 대의원대회를 할 때에도, 전학대회나 각종 대표자회의, 심지어 반상회에서 논의를 할 때에도, 말하자면 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안건에 대한 표결은 공개가 기본이다. 예외적으로 인사와 관련되어 있거나(선거가 대표적이다), 소수 의견이 심하게 억압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무기명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사표명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의 경우 현실적 조건상 모두가 똑같은 비표를 받았지만, 원래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비표로 표결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전국단체의 대의원이라면, 속한 지역구(예를 들어 은평구 갑)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비표를 들고, 그 지역구의 대표로서 ‘우리의 입장은 이것이요’ 하고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표결인 것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법안에 대해서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해서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안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무기명투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법안이 심하게 구려서 도저히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혹은 당론으로 정해졌지만 양심상 허락하지 않아 반대표를 던지고 싶은 의원이 많은 경우 무기명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상총회의 표결이 무기명투표로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법인화는 인사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심한 억압을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표결 전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소수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무기명투표로 진행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표결을 무기명투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묻는 절차가 이루어지고, 많은 참가자가 납득한다면 표결은 무기명으로 시행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번 비상총회에서 소수의견에 대한 억압적 분위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찬성표에 대한 집단적 열기가 있었지만 대체로 준수한 수준이었고, 반대의견을 발제한 자연대학우에 대해서도 충분한 박수와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나는 소수의견이 극단적으로 억압받는 자리에도 많이 참여해 봤다. 반대의견 발제자에게 야유가 쏟아지고, 심지어 물병이 날아드는 상황에서도 표결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혹시 소수당의 국회의원이 연단에 서서 발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때 객석의 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비상총회가 소수의견에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은 이미 파쇼국가다. 친한 운동권 선배가 옆에 있어서 부담스러웠다고? 그건 스스로의 입장에 당당하지 못한 정치적 미숙함이다. 물론 그 운동권 선배가 그걸 빌미로 개인적 악감정을 갖는다면 그건 더욱 졸렬한 일이다.


  다시 말해 비상총회에서 안건에 대한 공개표결이 이루어진 것은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오히려 이를 문제 삼는 것이 학생사회의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낼 뿐이다. 나는 이런 정치의 기본적 절차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초중등교육의 학생회라는 것이 얼마나 앙상하게 치러지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학의 각종 학생회 활동의 경험은 시민적 교양을 기르는 요람의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이제 학생사회는 그런 기능조차 불가능한 모양이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2) 총회 자리의 일방적인 분위기


  혹은 ‘선동적인 분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총회가 “집단적 토론의 장”이나 “100분토론”같은 분위기가 되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찬성자와 반대자가 끝없이 나오고, 서로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을 계속하다가, 종국엔 어떤 합의점에 이르는 그런 토론 말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 그런 토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총회에서 반대입장(설준위 참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부각되지 못하자, 결국 총학생회의 일방적 선동의 장이었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 것 역시 총회의 방식과 위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총학생회가 비상총회를 “집단적 토론의 장”으로 홍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와서 의견을 개진하고 그에 대한 찬반토론이 끝없이 개진되는 축제의 장이나 “아고라”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그 것은 총회와 같은 정치적 테이블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총회는 의견이 ‘결정’되는 자리이지, ‘토론’되는 자리가 아니다. 총의를 ‘모으는’자리이지,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가 아니다. 2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가하게 ‘토론’이나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토론이나 논의도 없이 의결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물론 아니다. 나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논의는 의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토론은 총회 이전에 하는 것이다. 의견의 수렴은 총회의 개최가 결정된 순간부터, 총회 당일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실효성 있게 개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총학생회에서 추진한 “유니온 디베이트”가 바로 그런 자리이다. 혹은 총학생회를 우회해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본인이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고, 총학생회에서 제출하리라 예상되는 안건에 반대한다면, 총회 개최 전까지 총학생회 안건에 반대하는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50인 이상의 서명을 받아 총회에서 총학생회의 안건에 반대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충분한 홍보와 여론의 수렴이 있었다면, 그리고 총회 참여자들이 수정동의안의 명분과 근거에 수긍한다면, 총학생회의 안건이 부결되고 새로운 동의안이 채택되지 말란 법이 없다. 두 번째 안건에서 수정동의안이 올라왔을 때, 모두들 오오오- 하는 분위기였지만, 원안을 지지하는 발언의 근거를 듣고 나서 수정동의안이 부결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대중은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의외로 쉽게 수긍한다.


  총회에서 이 모든 절차(설명, 토론, 의견수렴 및 의결)를 한 방에 처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이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총회는 “의결”을 목적으로 하는 자리이다. 설명 및 토론은 최소한으로 필요할 뿐이다. 만약 안건이 미리 배부되었다면, 심지어 설명 및 토론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다. 정치는 총회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큐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시간동안 행해진 무수한 설명과 홍보, 토론 및 논의를 통해 총회자리에서 총화되는 것이다.


  만약 총회의 분위기가 일방적이었다고 느꼈다면, 이는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정치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오히려 총학생회는 상당한 배려를 했다. 총학생회의 입장과 분리해서 중립적으로 비상총회를 홍보할 의무는 총학생회에겐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제출할 안건만을 충실히 홍보해도 절차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정치력이 부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홍보했던 것 같다.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을 대독해준 시도도 상당히 세련된 배려로 보였다. 국회에서 소수당 의원의 발언을 대독해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참여한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야유를 퍼붓거나 고성을 치는 경우는 없었다. 모두들 모든 의견에 대해 박수를 치고 환호해 주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 올라온 용기 자체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대다수였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비상총회를 개최한 총학생회는 비판받아야 할까? 내가 보기에 총학생회가 비판받을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학생사회의 붕괴가 가시화되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현실에서 비상총회를 대단히 정석적인 방식으로 개최했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총회가 가능했을까? 그 것은 각자가 대답해 볼 일이다.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트랙백  0 , 댓글 하나 달렸습니다.
  1. 비밀이 풀렸군요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