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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one of those madeleine moments.

Mais, quand d’un passé ancien rien ne subsiste, après la mort des êtres, après la destruction des choses, seules, plus frêles mais plus vivaces, plus immatérielles, plus persistantes, plus fidèles, l’odeur et la saveur restent encore longtemps, comme des âmes, à se rappeler, à attendre, à espérer, sur la ruine de tout le reste, à porter sans fléchir, sur leur gouttelette presque impalpable, l’édifice immense du souvenir.

Et dès que j’eus reconnu le goût du morceau de madeleine trempé dans le tilleul que me donnait ma tante (quoique je ne susse pas encore et dusse remettre à bien plus tard de découvrir pourquoi ce souvenir me rendait si heureux), aussitôt la vieille maison grise sur la rue, où était sa chambre, vint comme un décor de théâtre.


  지금이야 파스쿠치니 자바커피니 하는 커피집이 캠퍼스에 널려있다지만,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던 6년 전에만 해도 교내에는 갈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찾는 군것질꺼리래 봐야 자하연의 커피쏙(냉커피속 아이스크림) 수준이었고, 대부분은 매점에서 앙팡에 빨대 꽂아 먹는 게 고작이었다. 해방터 근처를 오가다 보면 도란도란 입에 요구르트를 물고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보이곤 했다. 모두가 소박하던 시절이었다.

  6, 7동을 거의 벗어나지 않던 1학년 시절, 자하연까지 내려가는 것도 귀찮았던 나에게는 8동 앞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먹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었다. 수업이 지겨워지면 나는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와 계단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곤 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미화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바라보던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고 예뻤다. 그렇게 파란 하늘이나,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 같은 걸 보고 있다가도, 하늘하늘한 옷차림의 여학생이라도 지나가면 또 그 발걸음을 눈으로 좇느라 바빴다. 어쨌든, 그 때는 나도 스무살이었으니까.

  자판기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학교 자판기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생협에서 학생복지 차원에서 그렇게 운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에서 6~700원 하던 음료들이 교내 자판기에서는 3~400원 하는 경우가 흔했다. 쉬는 시간은 몇 사람의 주머니에 짤랑이던 동전을 모으는 것으로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5000원이 넘는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구할 수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카페 프렌차이즈는 버스를 타고 10분이나 나가 지하철 역 앞까지 가야 나왔으니까. 신촌 어귀를 드나드는 세련된 대학생들에 비해 유난히 우리 학교 학생들이 촌스럽다는 소문은 아마도 허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데자와라는 음료가 반드시 있다는 것도 우리학교 자판기의 독특한 점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대학 입학 전까지 데자와의 존재도 생소했다. 어느 쉬는 시간엔가 자판기 앞에 선 나에게 그 선배는 미묘한 미소로 데자와를 권해 왔다. 마치 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데자와를 들이켰고, “~”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역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맛. 걸레 헹군 물에 아기 토한 냄새를 섞어놓은 것 같은 맛. 나는 단번에 반-데자와 전선에 동참했고, -데자와 전선의 선배들과는 건널 수 없는 취향의 벽이 세워졌다. 실로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는 음료였다.

  얼마 전, 강남역 근처의 투썸플레이스에 갔다가 얼그레이 라떼를 시켰다. 가능하면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게 내 최근의 습관이었다. 한 끼 식사 가격의 홍차라떼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프루스트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 일은 없었다. 그냥 어떤 기시감과 향수가 일어났을 뿐이다.) 내가 반-데자와 전선에서 친-데자와 진영으로 넘어가기까지는 딱 1년이 걸렸다. 그 해 겨울 처음 싫어했던 데자와를 이듬해 겨울엔 매일 손에 들고 다녔다. 눈이 끝도 없이 내렸던 혹독한 겨울, 나의 데자와는 따뜻하고도 달콤했다. 식도에서 아랫배까지 뜨겁게 일렁였다. 이후로 내 미각이 그토록 줏대 없이 매혹당한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취향의 극적인 전환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모조리 담기기엔 사랑은 너무나 크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쪽으로 방사되어, 상대의 한 표면에 부딪혀 본래 방사점 쪽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그처럼 우리 자신의 애정이 튕겨져 돌아오는 반동을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일컫는데, 간 것보다 돌아온 것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간 것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리비의 가느다란 홈이 난 조가비 속에 흘려 넣어 구운 듯한, 잘고도 통통한, 쁘띠 마들렌이라고 하는 과자. 추억은 미각이나 후각처럼 비자발적이고도 무의식적인 계기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내 의지와 무관하다. 아무리 자발적이고 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