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BONO

일/법 2018.11.14 00:26

보노보노 말고 프로보노

프로보노는 라틴어 문구 ‘PRO BONO PUBLICO’의 준말이다. 영어로 적자면 ‘FOR THE PUBLIC GOOD’ 정도가 되려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미권에서나 한국에서나 주로 법조인의 공익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보노보노는 해달이다.

법인에 입사하고 나서 몇 가지 프로보노 활동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로, 모두 공익법인법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는 미국의 모 한인교회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의 일환으로 동남아에 병원과 학교를 짓는 사업을 하는데, 한국에서의 모금을 위한 공익법인을 설립해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 국제구호NGO의 정관이 공익법인법과 충돌하는 부분에 관하여 자문해달라는 것이었다.

공익법인법에 관하여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일반 민사법 및 행정법의 원리에 비추어 떠듬떠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행정청에서 발간한 공익법인 운영백서나 다른 법인의 정관 사례, 신청례 등을 찾다보니 비교적 어렵지 않게 답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에는 법률문제였으니, 공익단체의 실무자들이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을 내용들이었다. 의뢰인에게는 도움을 주고, 나로서는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으니, 그야말로 보람찬 프로보노였다.

바로 그 법인이 2018. 11. 9.자로 법인설립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들었다. 동남아에는 유치원 건물과 기숙사가 세워졌고, 내년에는 한글학교 및 직업학교 신설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분이 BUONO하여 BONO의 노래를 들었다. PRO가 된 기분이어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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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심불

일/법 2018.11.12 23:00

두 번의 심리불속행

최근 두 번의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았다. 판결(判決)은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라는데, 심리불속행도 판결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가? 판결문을 뜯어보아도 판단의 이유를 알지 못하니, 이름값을 못하는 편이다.

한 사건은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심, 2심에서 받았던 주문보다 1/6로 깎은 금액에 상대방과 합의를 봤다. “변호사님, 너무 고마워요. 안 잊을 거에요.” 의뢰인이 전화로 엉엉 울었다. 전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나도 같이 끌어안고 울었을 것이다. 비록 법원의 판단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의 서면이 설득력이 있으니 상대방도 1/6로 합의에 응한 터였다.

그러나 며칠 뒤부터 상대방은 우리의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 상대방 변호사님이 휴가라도 가셨나, 생각할 즈음,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이 나왔다. 어디서 언질이라도 받으셨던 것일까. 우연이라기엔 교묘했다. 합의를 하자던 상대방이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더니, 그대로 우리의 패소가 확정되고 만 것이다. 이번에도 의뢰인은 전화로 엉엉 울었다. 의뢰인의 아들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래도 되는지 따져 물었다. 전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나는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건은 처음에는 질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했다. 사안을 보면, 져도 좋을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원고와 피고 중 누가 지더라도 특별히 정의관념에 반할 것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을 살펴볼수록, 원심 판결문을 뜯어볼수록, 부당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판사가 이런 부분까지 놓쳐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론 그 자체만 두고 보면 별다를 게 없었지만, 관련 법리를 고려할 때 원심판결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나 역시 심리불속행이다. 해당 법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대법원 판단의 이유를 받아보지 못했다. 속이 쓰렸다.

의뢰인은 패소한 후에도 가끔 연락을 했다. 상대방과 어떻게든 연락해서 집행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무책임하게 들렸던 것일까. 언제나 절절했던 의뢰인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어떻게든 해보라며 소리를 질렀다. 심리불속행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고마움을 안 잊을 거라던 지난 말이 생각났다.

돌변한 의뢰인의 태도도, 싸늘해진 나의 마음도, 썩 달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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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라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과자라고 불렀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꼽추의 이름을 따서 콰지모도라는 아이디를 쓰는 친구였다. 아이디가 너무 길어서 줄여 부른 것인지, 아니면 키읔의 파열음이 주는 거리감을 완화하려던 것인지, 콰지모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냥 과자또는 과자씨라고 불렀다. 어쩌면 콰지모도가 주는 대담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상반되었던 그 친구의 수더분한 성격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자는 자주 한가했다. 역시나 한가했던 18살의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과자와 보냈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별다른 일정 없이 책이나 읽던 한량이었고, 과자도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대학로의 어느 대안학교에 비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었다. 이외에도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나를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대판 싸우고 연을 끊은 친구도, 아주 일찍 생을 마감해버린 친구도 있었다. 어쨌거나 다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착한 아이들이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던 우리는, 자주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로니에의 벤치에서 자주 수다를 떨었고, 한강 공원에서 라면에 술을 마시기도 했고, 하늘공원에서 야외상영을 보았다. 맥주 한 봉지 사들고 낙산공원을 뛰어 오른 일도 있었다. 과자는 덕후 기질이 있어서 <파리의 노트르담><네 멋대로 해라> 이야기를 자주 했다(물론 후자는 고다르의 영화가 아니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던 영화나 소설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미묘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과자는 자주 집을 나왔다. 왜 집을 나왔는지는 다들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었다. 언젠가 모임 약속을 잡아서 공원에서 만났을 때엔, 일주일 째 집에 안 들어갔다면서 약간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과자가 집을 나오면 연락 가능한 핸드폰도 없어서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약속에 늦어도 알릴 길이 없으니 한 시간쯤 일찍 나와서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예사였다. 과자는 가끔은 내 자취방에도 문득 찾아와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했다. 또 가끔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셨다는 친구 집으로 다 같이 몰려가서 떠들썩하게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모두 귀가하는 편이었고, 친구들은 과자에게 오늘 밤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대화주제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꺼려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과자가 어디에서 자는지 아무도 모른 채 서둘러 인사하곤 헤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늦게까지 놀다가 함께 노숙을 한 일도 있었다. 아마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낮이 무척 더웠기 때문에, 이 정도 날씨라면 노숙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과자의 리드를 따르기로 했다. 과자는 밤의 길거리가 무척 춥다며 어딘가에서 버려진 신문지를 주워왔다. 신문지를 구겨서 옷 사이에 솜처럼 잔뜩 채워 넣었다. 한강변의 어느 굴다리 아래에서,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밤새 시덥 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여름의 밤이 그렇게 추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과자와는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과자에게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너무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과자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나는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과자를 잘 모르는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과자의 발냄새를 놀려댔다. 나는 친구를 나무라는 대신 함께 과자의 발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 날 과자의 표정이 자주 떠오른다. 과자는 평소처럼 쾌활하게 웃어넘기는 대신, 약간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학을 갔고, 한동안 과자를 만나지 못했다. 과자와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 언저리에서 잊혀질 즈음,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과자랑 연락이 되니?” 과자가 집을 나간 지 몇 달이 지났고, 혜화역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메일 답장도 없고, 최근에는 네이버 블로그도 폐쇄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별일 아닐거야. 어디서 평소처럼 잘 살고 있겠지 뭐. 가출은 자주 했었잖아?” 그러나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와 이메일은 과자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후로 겨울이 오면 가끔은 걱정을 했다. 여름에야 어떻게든 노숙이라도 한다지만, 추운 한겨울에는 어쩌나. 그런 걱정은 아주 가끔 내 안온한 삶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왔다. 옛날에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라고 추억할 정도로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 후로 한번도 과자를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를 봤다. 소공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얼마간은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게 사라져버린다. 사라져버린 소공녀를 가끔 추억하는 친구들은, 안온한 삶을 끌어안고 산다. 그 안온한 삶에도 걱정과 고민이 가득하다. 그러니, 누구도 소공녀를 재워줄 수 없다. 소공녀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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