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놀이 2017.07.31 13:09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적어도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는 말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그의 부인 조세핀 호퍼도 유망한 미술가였고, 에드워드의 작가적 성공을 위하여 미술을 포기했으며, 그는 부인을 모델로 여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의 그림은 정적인 태도로 현대인의 짙은 멜랑꼴리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중에는 방 안에 혼자 있는 조세핀의 뒷모습을 그린 것도 여럿 있었다.

 

그의 그림 다수는 아마도 뉴욕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미국 미술관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갔던 건 4년 전이다. 화창한 여름 날씨가 좋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겨울의 뉴욕은 날씨가 최악이라는데, 미술관은 다닐만 하려나. 조세핀의 그림도 몇 개가 휘트니 미술관에 있다. 아마도 에드워드에 미친 영향과 관련해서만 가끔 관심을 받을 뿐이겠지.

 

요켠대 포섭의 문제다. 누구는 시각적 쾌감이 좋아서 미술관에 가고, 누구는 작가를 둘러싼 뒷이야기가 좋아서 미술관에 간다. 누구는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을 사랑하고, 또 누구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까지야말로 위대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서로 취향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쨌거나 둘 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니 꽤 잘 맞았다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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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 책.

놀이 2017.07.30 22:48



먼저 산책.

 

때때로 이유 없이 시청 주변을 걷는다. 서울의 밤은 어딘가 음흉한 느낌이 있다. 오늘은 명동에서 저녁으로 회냉면을 먹었다. 여름에는 함흥냉면이, 겨울에는 평양냉면이 땡긴다. 광화문으로 올라오는 길에 하얀 칫솔도 하나 샀다. 구경할 것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어느 일본인 노부부를 보면서, 서대문 쪽에서 에어비앤비를 하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는 서촌을 걸었다. 수성동 계곡에 올라 정자에 누워 한참을 보냈다. 날이 무척 더웠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인왕산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동행의 웃음소리가 나른했다. 이런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 때는 괜찮았다.

 

금요일에는 회나무길도 걸었다. 보석길인지, 옆리단길인지, 장진우길인지, 아무튼 부르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그 길 말이다. 자주 가던 칵테일바는 그새 주인이 바뀌었는지 와인바로 변신을 했다. "서울은 너무 빨리 변해요." 투덜대며 말했지만 동행은 무심했다. 와인을 몇 잔 집어먹다가 그냥 진토닉을 시켰다. 혼자노는양의 라비앙로즈가 생각났다. 으스대며 시켜대던 날이 그리웠다. 하지만 동행은 맥켈란을 온더락으로 마시는 분이었으므로, 여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나는 쓸데없는 정보를 늘어놓다가, 알쓸신잡에 나가라는 말이나 들었다. 매우 아름답고 차분한 분이었다.

 

그리고 산 책.

 

말로만 듣던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책이었다.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문학적 성취를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취재없는 르포문학을 쓰려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새내기 선물용이라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그럴바엔 정희진 선생님 책을 두 권 사는 편이 낫겠다. 진영논리는 적정한 비평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권석천 선생님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썼다는 책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도 샀다. 권선생님 칼럼에는 몇 번 감탄한 적이 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풀어서 판결문 분석을 했다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법조기자를 오래 했다고는 하는데...

 

코치D의 <통증홈트>도 샀다. 이제는 이론보다는 실천을 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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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표절

사랑/일상 2017.07.22 22:12


“그에게는 언제나 대인관계가 순탄했으니, 작은 균열도 생소하여 피로감이 컸다.”

 

지나고 나면 굳이 마음쓸만큼 대단치도 않다. 그렇게 믿고 지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왔다. 비가 참 많이 왔고, 비가 많이 또 계속 왔고, 지겹도록 계속 비가 왔다. 비도 참 많이도 오네. 떨어지는 비를 넋놓고 본 날도 있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와도 되나. 언제까지 비가 오려나. 이제 비가 그만 그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그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며칠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칠월이었다.

 

칠월 들어서 책을 세 권 읽었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아주 좋은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이 섞여있다. <입동>이나 <풍경의 쓸모>는 김애란다운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결혼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침묵의 미래> 같은 작품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할배들은 아직도 이런 소설을 파고 있는 모양이다.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문학계의 수치이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도 읽었다. 여전히 김영하식의 작위적 유머는 껄끄럽다. 그런 말장난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만 재미있다. 등장인물이 입밖으로 꺼내서 말하는 순간 저급한 일본코믹풍이 되어버린다. <최은지와 박인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심보선의 새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글쎄, 나는 이번엔 잘 모르겠다.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점점 취향에서 멀어져간다.

 

하지만 모두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불만이 많은 계절이니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칠월에는 무엇을 읽어도 천국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체념뿐이다. ‘예상표절’이라고 했던가. 몇 번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내가 읽어온 것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기이한 생각을 한다. 선행된 텍스트는 자기복제를 거치면서 비로소 의미가 명료해진다. 비슷한 시간이 반복되기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감각. 그러니 순전히 개인적인 이별이다.

 

슬프고 밉지만 마음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남아서 잠시 울다 갈테니 먼저 가셔도 좋다.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아마도, 그동안 정말 좋았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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