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소의 기분

일/법 2018.04.28 22:59

첫 승소의 기분

 

지난주에 첫 승소판결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가처분인용결정. 첫 고객회의에서부터 기일 출정, 사건 종결까지 종합적으로 관여한 첫 사건이 되었다. 모든 사건이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의 기분을 앞으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소소한 기록을 남겨둔다.

지난 월요일이다. 오전에 열심히 참고서면 초안을 회람하고 제출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오후 65분에 옆방 이**님이 갑자기 흥분한 모습으로 복도로 뛰쳐나오셨다. “결정이 나온 것 같은데!” 내 방에 뛰어들어오며 외치셨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 그렇습니까?” 일단 놀란 표정을 지어드렸다.

잠시 후 권**님이 송무팀에 메일을 보냈다. “표제 건 즉시 송달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6시가 지났으니까, 대부분 퇴근해버린 게 아닐까. 설마 이대로 궁금증을 안은 채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건가. 왜 이렇게 금방 나왔지? 금방 나왔다는 건 인용이라는 건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619, 송무팀에서 메일이 왔다. 나는 즉시 결정문을 열었고, 나도 모르게 !’라고 외치는 것과 동시에 옆방 이**님의 통화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잘 되었네요.” 곧이어 내 방에 들르셔서는 활짝 웃으며 이프로, 고생했네!”라고 하셨다. “부장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남동 라인에 환희가 가득했다.

별다른 내색은 안했지만, 내심 정말 기뻤다. 이런 느낌으로 송무하는 건가. 왜 그렇게 기쁜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고객이 잘돼서? 우리 논리가 받아들여져서? 회사에 성과가 좋아서? 상대방을 이겨서? 정의가 승리해서? 잘했다고 칭찬받아서? 그저 하던 일이 끝나서? 아니면 그 모두?

어쨌거나 첫 승리의 기억이다. 기념 회식에서 쏘맥을 연달아 마셔도 거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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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훌륭한 글

놀이 2018.04.19 10:52

이기홍 교수님의 글이 너무나 훌륭하다.

옆에 두고 삶의 귀감으로 삼을만 한 가르침이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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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생적인 사랑, <Shape of Water>

 

A는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고 했다. B는 자기 인생영화 리스트에 들었다고 했다. C2000년대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다. 나는 캡쳐 한 장면을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누가 뭐래든,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야기는 <미녀와 야수>와 닮아있다. 미녀는 미녀가 아니고, 야수는 야수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많은 지점에서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로 읽힌다. 악당 스트릭랜드가 <미녀와 야수>의 개스통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에서 잘생기고 강하며 당당한 백인 청년은 영화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힘과 권력을 숭상하고,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며, 약하고 가련한 것에 대한 연민이 없고, 지식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한다. 스트릭랜드는 실은 캡틴아메리카같은 아폴론적 영웅이지만, 너무나 전형적인 악당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전복적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장애인, 동성애자, 흑인, 여성,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가 총동원된 영웅군단조차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자연스럽다.

이 영화가 진짜 전복적인 지점은 미적으로 혐오스러운 괴물이다. <미녀의 야수>에서의 야수는 공포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잘생긴 사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의 괴물은 낯설고, 징그럽고, 비위생적이다. 감독 자신처럼 괴물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야 일반적으로 좋아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그러니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너는 이렇게 못생긴 괴물을 사랑할 수 있겠니?” 다시 말해, 낯설고 거북한 존재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미학은 이야기와 직접 연결된다. 낯설고, 징그럽고, 비위생적인 이 다리달린 양서류 괴물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열린 미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쉽게 사랑에 빠질테지만, 편견 덩어리라면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절대 모를거야!” 젤다의 외침은 결코 괴물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할 자들, 결코 엘라이자같은 사랑을 하지 못할 자들, 결코 다른 존재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쁨을 모를 자들, 그저 차를 바꾸고 승진을 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만 몰두할 무수히 많은 스트릭랜드를 향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와 친구는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지쳐있었다. 너무나 비위생적으로 아름다웠던 사랑이 그렇게 끝났으므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기 여자 친구를 재촉하던 젊은 남자를 이유 없이 미워했다. 너 같은 놈이 바로 스트릭랜드야. 영문도 모르게 타인의 혐오를 받은 커플이 유유히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감상에 빠진 나를 널리 전시하기 위해 캡쳐 장면을 검색하다가, 괴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골라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나도 못생기고 비위생적인 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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