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생적인 사랑, <Shape of Water>

 

A는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고 했다. B는 자기 인생영화 리스트에 들었다고 했다. C2000년대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다. 나는 캡쳐 한 장면을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누가 뭐래든,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야기는 <미녀와 야수>와 닮아있다. 미녀는 미녀가 아니고, 야수는 야수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많은 지점에서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로 읽힌다. 악당 스트릭랜드가 <미녀와 야수>의 개스통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에서 잘생기고 강하며 당당한 백인 청년은 영화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힘과 권력을 숭상하고,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며, 약하고 가련한 것에 대한 연민이 없고, 지식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한다. 스트릭랜드는 실은 캡틴아메리카같은 아폴론적 영웅이지만, 너무나 전형적인 악당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전복적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장애인, 동성애자, 흑인, 여성,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가 총동원된 영웅군단조차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자연스럽다.

이 영화가 진짜 전복적인 지점은 미적으로 혐오스러운 괴물이다. <미녀의 야수>에서의 야수는 공포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잘생긴 사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의 괴물은 낯설고, 징그럽고, 비위생적이다. 감독 자신처럼 괴물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야 일반적으로 좋아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그러니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너는 이렇게 못생긴 괴물을 사랑할 수 있겠니?” 다시 말해, 낯설고 거북한 존재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미학은 이야기와 직접 연결된다. 낯설고, 징그럽고, 비위생적인 이 다리달린 양서류 괴물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열린 미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쉽게 사랑에 빠질테지만, 편견 덩어리라면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절대 모를거야!” 젤다의 외침은 결코 괴물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할 자들, 결코 엘라이자같은 사랑을 하지 못할 자들, 결코 다른 존재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쁨을 모를 자들, 그저 차를 바꾸고 승진을 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만 몰두할 무수히 많은 스트릭랜드를 향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와 친구는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지쳐있었다. 너무나 비위생적으로 아름다웠던 사랑이 그렇게 끝났으므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기 여자 친구를 재촉하던 젊은 남자를 이유 없이 미워했다. 너 같은 놈이 바로 스트릭랜드야. 영문도 모르게 타인의 혐오를 받은 커플이 유유히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감상에 빠진 나를 널리 전시하기 위해 캡쳐 장면을 검색하다가, 괴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골라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나도 못생기고 비위생적인 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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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갈까 말까 며칠을 망설이다가 내일자 항공권을 질렀다.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신작 <패터슨Paterson>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패터슨>은 시적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언 그대로 마치 시와 같다는 말이다. 시는 그저 단어들이다. 단어에는 표정이 없다. 단어의 선택로부터 표정을 짐작해 볼 뿐이다. 영화의 시선도, 남주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의 연기도, 종이에 적힌 시처럼 담담해서 모호하다. 그리고 그 담담함이 감정의 진폭을 넓힌다.

 

주인공은 말하자면 방구석 시인이다. 위대한 시인도 몇명을 탄생시킨 조용한 소도시 패터슨에서 그는 혼자서 가끔 시를 쓴다. 비밀노트에 적어내려간 몇 편의 시가 언젠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쩌면 위대한 시로 칭송받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아마도 그저그런 시시한 시겠지만. 그렇게 혼자서 시를 쓰는 사람에게 과연 영화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날까?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가 종이에 적힌 활자처럼 담담하니 각자의 독법으로 읽어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삶 속에서 예술적 열정을 잃지 말자는 낙관적인 영화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대단히 염세적이다. 이 세상에 해맑은 시는 없다던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이 영화시에는 담담한 비관주의가 팽배하다. 그러나 최하의 삶을 잔잔한 미소로 노래하는 블루스처럼 너그럽다.

 

언젠가 친한 친구 두셋과 자작시 동인을 꾸린 적도 있었다. 그 때 시를 끄적이던 노트는 이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런던행 비행기를 예매하면서, 작은 노트도 하나 샀다. 재생지가 얇고 매끄러운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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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봤다

사랑/일상 2018.01.16 18:14

ㅎ선배의 이야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녹두호프에서 청춘을 허비한 밤이었다. 막차가 끊어지자 ㅎ선배는 인학실(인문대 학생회실)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학교로 올라왔다. 운동권 소굴이던 인학실에는 밤샘 작업을 위한 낡은 2층침대가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문제는 ‘공식적으로는’ 12시 이후에 학교 건물에 출입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자동문이 모두 잠긴다는 점이었다.

 

당시 인학실은 인문대 3동에 있었다. 인문대 건물은 언덕을 따라 8개동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앞동은 문학계열, 뒷동은 사철계열이었다. 중간쯤에 위치한 3동도 언덕을 깎아가며 지었기 때문에 전면은 평지였지만 후면은 2층까지 대지가 솟아있었다. 후면 언덕에서 3동 2층 뒷문으로는 구름다리가 하나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 뒷문 옆이 인학실이었다. ㅎ선배는 구름다리 옆 창문을 타고 인학실에 침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름다리 바로 옆 창문은 방범용 창살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창문 4개 넓이만큼은 창틀을 잡고 건너가야 했다. 고작 2층이니 때문에 떨어진다고 죽기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다리 하나쯤은 부러질 수 있는 높이였다. 그러나 술에 적당히 취한 ㅎ선배에게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아 창틀을 붙잡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시작했다. 의외로 간단했다. 창살이 없는 창에 도착하자 ㅎ선배는 창을 열고 인학실 안쪽을 둘러봤다.

 

으악!

 

ㅎ선배의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어두운 인학실 내부에 머리 하나가 동동 떠서 ㅎ선배와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뭐야, 귀신인가? 술때문에 헛것이 보이나? 하마터면 뒤로 자빠져 다리를 부러뜨릴 뻔한 ㅎ선배가 정신을 가다듬고 어둠 속 얼굴을 바라보자 희미한 형상이 점차 또렷해졌다.

 

벽에 걸린 박종철 열사의 영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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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입담이 좋던 ㅎ선배였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1학년 어느 학회 술자리에서였는데, 그 후로 인학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딱 10달 전인 1987년 1월, 고작 22살이던 언어학과 3학년이 남영동으로 끌려가 물고문으로 죽었고, ‘탁 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며 민주화를 촉발시켰다는 그 무거운 사건보다는, 택시비 아끼려다가 박종철 선배 따라갈 뻔 했다던 ㅎ선배의 농담이 나에겐 더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1987>을 보고 난 후, 영정의 이미지로만 남은 박종철 열사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변변치도 않은 인물인 선배 하나 지키겠다고 물고문을 당하다가 피워보지도 못한 스물둘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벌써 서른이 넘었지만, 그런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도 졸업식 시즌에는 박종철 열사 추모비에 꽃을 놓는 사람들이 있을까. 영정 사진으로밖에 만난 적 없는 박종철 선배가 나만큼 살았더라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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