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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다 - 비상총회 비판에 부쳐



  먼저 간단한 참여 소감에서 시작하겠다. 어젯밤 6시경부터 아크로 비상총회에 참여하여 표결을 마치고 본부 점거에 참여했고, 오늘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길지 않은 대학생활이지만 학생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은 웬만큼 봐왔다. 삽질하는 총학생회도 봤고, 있는 듯 없는 듯 내려오는 총학생회도 봤다. 총학생회가 없던 시절도 겪었다. 이번 비상총회? 내 대학생활 동안 총학생회가 이렇게 제대로 준비하고 세련되게 진행한 행사는 처음이었다. 선동적 분위기를 자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행사였다.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수정동의안에 대한 표결로 시간이 지체되어 두 번째 안건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있겠다. 총학생회 측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찝찝함은 지울 수 없다.)

  스랖의 일부 여론이 총회의 방식에 부정적임을 안다. 이들의 비판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듯 하다.


1) 표결이 공개투표로 이루어짐. 2) 총회 자리의 일방적 분위기.


  그러나 두 비판 모두 총회의 위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첫 번째 비판의 경우 대학생들이 정치적 경험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듯해서 더욱 안타깝다.




1) 표결이 왜 공개투표???



  아마도 대학생들이 행하는 정치경험이란 십 년에 서너 번 치르는 선거가 전부인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걸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식이 낯설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표결은 원래 공개투표가 원칙이다. 이는 운동권의 문제도, 총회의 비민주성과도 관계가 없는 일이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표결을 할 때에도, 각 종 주류 정당에서 전당대회나 대의원대회를 할 때에도, 전학대회나 각종 대표자회의, 심지어 반상회에서 논의를 할 때에도, 말하자면 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안건에 대한 표결은 공개가 기본이다. 예외적으로 인사와 관련되어 있거나(선거가 대표적이다), 소수 의견이 심하게 억압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무기명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사표명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의 경우 현실적 조건상 모두가 똑같은 비표를 받았지만, 원래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비표로 표결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전국단체의 대의원이라면, 속한 지역구(예를 들어 은평구 갑)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비표를 들고, 그 지역구의 대표로서 ‘우리의 입장은 이것이요’ 하고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표결인 것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법안에 대해서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해서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안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무기명투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법안이 심하게 구려서 도저히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혹은 당론으로 정해졌지만 양심상 허락하지 않아 반대표를 던지고 싶은 의원이 많은 경우 무기명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상총회의 표결이 무기명투표로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법인화는 인사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심한 억압을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표결 전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소수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무기명투표로 진행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표결을 무기명투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묻는 절차가 이루어지고, 많은 참가자가 납득한다면 표결은 무기명으로 시행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번 비상총회에서 소수의견에 대한 억압적 분위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찬성표에 대한 집단적 열기가 있었지만 대체로 준수한 수준이었고, 반대의견을 발제한 자연대학우에 대해서도 충분한 박수와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나는 소수의견이 극단적으로 억압받는 자리에도 많이 참여해 봤다. 반대의견 발제자에게 야유가 쏟아지고, 심지어 물병이 날아드는 상황에서도 표결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혹시 소수당의 국회의원이 연단에 서서 발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때 객석의 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비상총회가 소수의견에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은 이미 파쇼국가다. 친한 운동권 선배가 옆에 있어서 부담스러웠다고? 그건 스스로의 입장에 당당하지 못한 정치적 미숙함이다. 물론 그 운동권 선배가 그걸 빌미로 개인적 악감정을 갖는다면 그건 더욱 졸렬한 일이다.


  다시 말해 비상총회에서 안건에 대한 공개표결이 이루어진 것은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오히려 이를 문제 삼는 것이 학생사회의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낼 뿐이다. 나는 이런 정치의 기본적 절차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초중등교육의 학생회라는 것이 얼마나 앙상하게 치러지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학의 각종 학생회 활동의 경험은 시민적 교양을 기르는 요람의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이제 학생사회는 그런 기능조차 불가능한 모양이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2) 총회 자리의 일방적인 분위기


  혹은 ‘선동적인 분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총회가 “집단적 토론의 장”이나 “100분토론”같은 분위기가 되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찬성자와 반대자가 끝없이 나오고, 서로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을 계속하다가, 종국엔 어떤 합의점에 이르는 그런 토론 말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 그런 토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총회에서 반대입장(설준위 참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부각되지 못하자, 결국 총학생회의 일방적 선동의 장이었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 것 역시 총회의 방식과 위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총학생회가 비상총회를 “집단적 토론의 장”으로 홍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와서 의견을 개진하고 그에 대한 찬반토론이 끝없이 개진되는 축제의 장이나 “아고라”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그 것은 총회와 같은 정치적 테이블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총회는 의견이 ‘결정’되는 자리이지, ‘토론’되는 자리가 아니다. 총의를 ‘모으는’자리이지,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가 아니다. 2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가하게 ‘토론’이나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토론이나 논의도 없이 의결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물론 아니다. 나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논의는 의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토론은 총회 이전에 하는 것이다. 의견의 수렴은 총회의 개최가 결정된 순간부터, 총회 당일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실효성 있게 개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총학생회에서 추진한 “유니온 디베이트”가 바로 그런 자리이다. 혹은 총학생회를 우회해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본인이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고, 총학생회에서 제출하리라 예상되는 안건에 반대한다면, 총회 개최 전까지 총학생회 안건에 반대하는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50인 이상의 서명을 받아 총회에서 총학생회의 안건에 반대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충분한 홍보와 여론의 수렴이 있었다면, 그리고 총회 참여자들이 수정동의안의 명분과 근거에 수긍한다면, 총학생회의 안건이 부결되고 새로운 동의안이 채택되지 말란 법이 없다. 두 번째 안건에서 수정동의안이 올라왔을 때, 모두들 오오오- 하는 분위기였지만, 원안을 지지하는 발언의 근거를 듣고 나서 수정동의안이 부결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대중은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의외로 쉽게 수긍한다.


  총회에서 이 모든 절차(설명, 토론, 의견수렴 및 의결)를 한 방에 처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이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총회는 “의결”을 목적으로 하는 자리이다. 설명 및 토론은 최소한으로 필요할 뿐이다. 만약 안건이 미리 배부되었다면, 심지어 설명 및 토론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다. 정치는 총회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큐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시간동안 행해진 무수한 설명과 홍보, 토론 및 논의를 통해 총회자리에서 총화되는 것이다.


  만약 총회의 분위기가 일방적이었다고 느꼈다면, 이는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정치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오히려 총학생회는 상당한 배려를 했다. 총학생회의 입장과 분리해서 중립적으로 비상총회를 홍보할 의무는 총학생회에겐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제출할 안건만을 충실히 홍보해도 절차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설준위 참여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정치력이 부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홍보했던 것 같다.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을 대독해준 시도도 상당히 세련된 배려로 보였다. 국회에서 소수당 의원의 발언을 대독해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참여한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야유를 퍼붓거나 고성을 치는 경우는 없었다. 모두들 모든 의견에 대해 박수를 치고 환호해 주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 올라온 용기 자체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대다수였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비상총회를 개최한 총학생회는 비판받아야 할까? 내가 보기에 총학생회가 비판받을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학생사회의 붕괴가 가시화되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현실에서 비상총회를 대단히 정석적인 방식으로 개최했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총회가 가능했을까? 그 것은 각자가 대답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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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이 풀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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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자료집용 글

연대 2011.03.13 23:32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펼치지 않는 내 일기장에는 신환회 첫 날의 감상이 이렇게 시작되어 있다.

"휘황한 달빛 아래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녹두를 향해 걸었다. 고향은 어디에요, 학교는 어디 나왔나요, 떠듬떠듬 어색하게 묻는 목소리 사이로 서로를 향한 호기심과 설렘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구나 하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바로 선배들과 인사하고 동기들과 번호를 교환하던 바로 그 순간에!" -2007. 2. 8.

미지의 생활을 앞둔 야릇한 흥분. '새내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 찾아오는 그 청춘의 감정에는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막막하게 흔들리면서도 기대감에 설레는 기분. 모든 스무 살이 느끼고 있을 그 감정에 나는 오랜만에 옛 자료집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같은 문장을 읽어도 감상은 전혀 새롭다. 의뭉스런 선배들이 꽁꽁 숨겨둔 행간의 의미는 다섯 번 쯤 다시 읽어야 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양이다.

앗 그런데 선배라니. 믿기 어렵겠지만 5학년인 나에게도 선배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있다. 그것도 06, 05학번뿐이 아니라 지금은 삼십대에 접어든 01, 00학번 같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 11학번이 조금 어색하고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보듯 내가 낯설게 쳐다봤을 그런 선배들. 우연히 모반에 들어왔다는 점 이외에 어떤 그럴싸한 인연도 없는 나를 뻔뻔하고 오지랖 넓게도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던 그런 선배들. 서로 책임지지 않는 관계가 '쿨함'으로 찬미되는 이 시대에, 내 인생에 감히 개입하고 훈육(!)할 용기를 내어준 귀찮은 사람들 말이다.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랬다. "고학번 선배"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도 닥치고 나서야 나는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어떤 선배의 말들이 불현듯 이해되곤 한다.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대화의 뒤늦은 방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가, 반가웠다가, 다시금 서글퍼지는 것이다.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넌 요즘 하는 고민이 뭐니?" 그/녀들의 악취미적 질문이 물어다 준 소통과 미혹의 감격을 나는 흔히 왜곡하거나 폄훼하곤 했다. 아둔하고 자존감만 높았던 나는, 나만 모르는 얼마나 많은 수치스런 행위와 제멋대로의 오해를 반복했던 것일까.

내 대학생활의 전부를 쏟아 부은 모반과의 몇 년으로 나는 몹시도 많이 변했다. 모반에서 지지고 볶고 웃고 다투는 동안 나는 조금 울었고 종종 벅찼으며 다행히도 자주 자랐다. 어떤 만남은 이처럼 뜻밖의 오해나 우발적 마주침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버린 모반은 나를 통째로 뒤흔들었고 인생의 방향을 다소간 바꿔버렸다. 이제는 나 자신의 의지로, 어.쩌.다.보.니 모반에 들어와버린 새내기들을 격하게 아껴주려고 한다. 이들의 반짝이는 청춘이 한 번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야만의 시대에 억눌려 살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바로 나의 사랑스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해도 좋을까? 하물며 나 자신도 이토록 진동하며 갈피를 못 잡는 주제에?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확신에 차서 달려가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화두를 던졌던 선배들도 지금의 나만큼이나 한 아름의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들리던 그/녀들의 질문은 실은 더 거대한 의구심의 한 표현이었고, 나에게 건넨 말들은 실은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으며, 또한 그것은 느낌표로 위장된 은밀한 물음표였던 것이다. 뒤늦게 깨닫게 된 이 작은 비밀은 나에게 적잖이 위안이 된다. 바로 나 자신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의 의의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민하는 사람으로써 하는 질문이 당신의 마음에 일으킬 잔잔한 울림을 기대하면서

사랑스런 풍경이 그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색하고 촌스러운 표정으로 바위처럼을 추는 몸짓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해방터"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누군가는 오늘도 보편성을 상상하며, 또 서로 연대(Solidarity)하고 교통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도 모르게 찾아오던 일상의 불안감을 고맙게도 덜어주던 손길을 누군가는 계속 건넸으면 좋겠다. 내면화된 경쟁의 원리를 넘어 "함께 살자" 뜨겁게 외치던 함성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도 울려퍼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너무도 변했는지 모른다. 철지난 유행가처럼 어색하게 들릴 내 편지를 누가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게 될까. 잔치가 끝나도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운다지만, 우리가 부르다 만 노래는 홀로 마저 고쳐 부르기엔 너무 서글픈 멜로디가 아닌가.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눈이 쌓였다 녹고, 나는 여전히 막막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시 내년 이맘때 우리는 또 어딘가에서 겨울눈을 밟으며 새맞이의 야릇한 흥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나도, 당신도 모두 조금씩은 달라져 있겠지. 물론 어떤 이와는 같은 꿈을 그리며 달리기도, 또 어떤 이와는 만나지도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의 짧은 만남이란 실은 별 것 아니었노라고 어렴풋이 회상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웃고 싸우고 사랑한다면, 오늘의 모든 말이 허망한 것이었다고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일단은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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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사건’ 침묵하는 여성가족부?

 

마침내 불만이 폭발했다꼴페미된장녀, E대생보슬아치로 이어져  마녀사냥이 인터넷을 넘어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자연사건 침묵하는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 폐지하라며1인시위에 나선 사람이 메스컴을 타는가 하면여성가족부 폐지 운동본부가 탄생하고여성부 폐지 아고라청원 등이 네티즌의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생활을 페미니즘과 함께   나라면 이같은 비난에 안타까움을 느낄 만도 하건만사실은 꽤나 담담하다오히려 여성부 비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측은함마저 느낀다그것은 이를테면 사장님앞에서 쩔쩔매다가 외국인 동료에게 화풀이하는 노동자를   드는 생각과 비슷하고김수영 님의어느  고궁을 나오면서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분노와 흥분은 이해하지만안타깝게도 그들은 엉뚱한 대상을 욕하고 있다.

 

여성부 폐지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여성부라면 오히려 폐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아마도 상당수의 페미니스트는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그러나  이유는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통상적인 근거와는  반대에 있다.

 

 

 

공무원 페미니즘?

 

먼저 여성부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가자. “이중잣대의 페미니스트”, “남자 골수 빨아먹는 된장녀”, “쓸데없는 일만 하는 여성부”,  외의 여성에 대한 다양한 공격이  덩어리처럼 얽혀있어서 마치여성부가  모든 것의 대표자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사실 각각의 실체는 교육부와 전교조초등학교선생님만큼 다르다. (오히려  이상일  있다.)

 

여성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공무원이 근무하는 국가 기관이라는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다시 말해 여성부의 대부분의 구성원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때때로 여성도 아니며그저 로테이션에 따라 업무가 배정된 공무원 뿐이라는 것이다예를 들어여성부의 김교식 차관은 20년동안 재정경제부에 근무해  고위공무원일 뿐이다페미니스트와는 거리가  뿐만 아니라,여성문제에 대해서 접해본 일도 없고심지어 여성도 아닌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여성자원 국가적차원에서  이용할지 골똘히 궁리하는 경제관료일 따름인 것이다.

 

물론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여성운동단체와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담론과 친숙할 수는 있다게다가 일반적으로 여성 행시합격자들이 선호하는 부처중의 하나기 때문에  부처에비해서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여성부의 서울 잔류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있는 근무지로 부상했다는 말도 있다.) 공무원 중에 페미니스트가 많을  같은가? ‘꼴페미라는말을 들을 정도의 활동가들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지공무원시험을 준비하지 않는다게다가 90년대이래로 영페미니스트들은 국가기구’ 자체에 비판적이고심지어 주류 여성운동을 개량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젊은 페미니스트중에 여성부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다.

 

공무원 페미니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공무원 마르크스주의나 공무원 아나키즘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만약 국가기구가 공식적으로 페미니즘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회혁명이 임박한 시기에거나이미 페미니즘이 아닐 것이다.

 

(여성부에 대한 저속한 비난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http://ko.wikipedia.org/wiki/%EC%97%AC%EC%84%B1%EA%B0%80%EC%A1%B1%EB%B6%80#.EC.97.AC.EC.84.B1.EB.B6.80_.EA.B4.80.EB.A0.A8_.EA.B4.B4.EB.8B.B4.EA.B3.BC_.EC.A7.84.EC.8B.A4여기를 참조)

 

 

 

여성 가족” 

 

여성부를 비난하는 반페미니스트들의 분노가 측은한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여성부가 하는 활동의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8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출발한 여성부는 2004-2005결정적인 변화를 겪는데남녀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증진시키던 종래의 업무를 국가인권위원회로이관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육업무를 받으면서 여성 가족” 부로 개편된 것이다실제로 현재 여성부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91%(예산 기준) 영유아 보육과 관련한 영역이다여성부의 업무  페미니즘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만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가정폭력성폭력 방지  피해자 보호여성자원 활용과 관련한 국가정책 자문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정도인데아마도 국가가 가정폭력을 방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초 중의 마초에도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페미니스트까진 아니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꼭지에라도 공감했다면 여성부에 대해 코웃음을  것이다여성을 가정과 보육의 영역에 가두려는 가부장적 편견으로부터 저항해 것이 페미니즘 200년의 역사라면여성가족부는 여성의 위치는 가정이며여성의 업무는 보육이다라고 이름에서부터 강변하고 있지 않은가성보수주의적인 편견과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해소하기는 커녕 더욱 공고화하고 권유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성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에 맞서 여성부를 옹호하려는 것도여성부의 실체를 드러내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여성부는 그저 잡다한 업무를 떠맡은 무수히 많은 국가 기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그런데 한강다리 위에서 쌀포대를 뜯는 농민운동의 전투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농림부를 비난하는가혹은 역으로 교육부장관의 자질 부족을 들어 전교조를 욕하는가심지어 재정경제부의 정책 실패를 들어 기업가 전체를 욕하거나 경제주체 전체를 욕하는가나는 여성부가 여성주의를 대표하고심지어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미묘한 현상으로부터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좌표를 설명하는 징후적 독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여성여성운동여성주의

 

한국의 반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모든 것은  동일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명의 남성국회의원이 있다고 하자 안에는 성격이 급한 사람도조폭 출신유단자도광선검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남성의 성향은 각자의 개성으로 이해된다그러다 어느  1명의 여성국회의원이 생겼다고 하자 여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이제 모든 여성의특성을 대표한다우연히  여성이 성격이 급하면 모든 여성은 성격이 급한 것으로 어쩌다  여성이 깔끔하면 모든 여성은 깔끔한 것으로 이해된다다수자는 각자 개별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만소수자는 소수자로써의 정체성만이 강조된다소수자이론의 기본  하나이다.

 

여성주의는 손쉽게 단일한 것으로 이해된다예를 들어 한국여성단체협의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라는 대표적인 집단을 생각해 보자  중의 어떤 단체가 여성의 사회참여 50% 보장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고 하자 내용을 접한 신문의 독자는 여성주의자들이   했구나라고 생각하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활동으로 이해하지 않는다어차피 여성운동은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안타깝게도 아니다한국 여성운동의  축이랄  있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만큼의 공통점도 없다 추구하는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이해심지어 여성해방이라는 관념 자체가 판이한 것이다심지어 3 8 여성의 날에도    따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http://www.womennews.co.kr/news/48798 참조)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이 모두 여성주의적인 것도 아니다모든 노동자가 노동운동을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노동운동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구사대) 마찬가지로모든 여성이 여성운동이나 여성주의와 친화적인것도 아니다소위 이기적인 여성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인상을 바란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참고로 개별적 노동자의욕망과 노동운동의 이념이 집단성에서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개별적 여성의 신분상승을 위한 협상전략은 집단적 운동 관점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페미니즘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반여성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동일하게 취급한다혹은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공통의 이해를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비록 때때로 이견을 보이는  하지만진정 여성의 이익이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대동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리라 생각한다현실은 그렇지 않다성매매특별법이 도입될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이 가한 비난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 수준을 초과하는 발본적인 것이다어떤 여성운동 진영의 활동은 어떤 페미니스트들의 보기에는 가부장적으로 바람직한 어머니 길러내는 활동에 불과할 것이다모든 여성이 페미니스트인 것도 아니고모든 여성 관련 의제가페미니즘의 영역인 것도 아닌데군가산점부활에 반대하는 여성은 반드시 꼴페미 매장당하고 만다.

 

내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이상하다노동의 노자만 들어가도 빨갱이라고 비난당하듯 비주류의 숙명이라고 수긍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하다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해서 소수자이론이 이다지도 적절히 적용되는 현상 자체가 이상하다너무나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그저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나는 여성과 여성운동여성주의와 여성부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이 이다지도 유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페미니즘의 의의를 보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인류의 절반이라는 여성의 의제가 이토록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아마도 보통사람들이 페미니즘에대해 적확한 비판을   있게 되는 날이 진짜 여성해방의 날이 아닐까.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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