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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소의 기분

일/법 2018.04.28 22:59

첫 승소의 기분

 

지난주에 첫 승소판결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가처분인용결정. 첫 고객회의에서부터 기일 출정, 사건 종결까지 종합적으로 관여한 첫 사건이 되었다. 모든 사건이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의 기분을 앞으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소소한 기록을 남겨둔다.

지난 월요일이다. 오전에 열심히 참고서면 초안을 회람하고 제출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오후 65분에 옆방 이**님이 갑자기 흥분한 모습으로 복도로 뛰쳐나오셨다. “결정이 나온 것 같은데!” 내 방에 뛰어들어오며 외치셨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 그렇습니까?” 일단 놀란 표정을 지어드렸다.

잠시 후 권**님이 송무팀에 메일을 보냈다. “표제 건 즉시 송달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6시가 지났으니까, 대부분 퇴근해버린 게 아닐까. 설마 이대로 궁금증을 안은 채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건가. 왜 이렇게 금방 나왔지? 금방 나왔다는 건 인용이라는 건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619, 송무팀에서 메일이 왔다. 나는 즉시 결정문을 열었고, 나도 모르게 !’라고 외치는 것과 동시에 옆방 이**님의 통화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잘 되었네요.” 곧이어 내 방에 들르셔서는 활짝 웃으며 이프로, 고생했네!”라고 하셨다. “부장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남동 라인에 환희가 가득했다.

별다른 내색은 안했지만, 내심 정말 기뻤다. 이런 느낌으로 송무하는 건가. 왜 그렇게 기쁜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고객이 잘돼서? 우리 논리가 받아들여져서? 회사에 성과가 좋아서? 상대방을 이겨서? 정의가 승리해서? 잘했다고 칭찬받아서? 그저 하던 일이 끝나서? 아니면 그 모두?

어쨌거나 첫 승리의 기억이다. 기념 회식에서 쏘맥을 연달아 마셔도 거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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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후기

일/글쓰기 2017.04.21 09:21

『법- 레이먼드 웍스 지음, 이문원 옮김, 교유서가, 2017.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4644877&orderClick=LAG&Kc=

  

간만의 여유가 생겨서 번역 후기를 기록해 둔다.

 

번역은 흥미롭지만 어려운 작업이었다. 즐거운 곤란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타인의 글을 그저 읽는 것과도, 나의 글을 그저 쓰는 것과도 달랐다. 읽는 동시에 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마치 나의 말인 것처럼 쓴다. 번역자는 어디서부터 얼만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중개하는 일은 예상만큼 어렵지 않았지만, 의외로 역자에게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 꽤 곤란했다.

 

예컨대 저자의 문장이 불만족스럽거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역자가 자신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충실히 저자의 말을 옮겨서 그저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저자가 독특한 수사법을 사용하는 경우엔 어떠한가. 저자가 매우 현학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역자도 그에 준하는 현학적인 단어로 옮겨놓아야 할까? 현학적인 태도가 저자의 의도된 수사법이라기 보다는 그저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보이는 때에도? 심지어 저자가 틀린 정보를 제시하고 있을 때라면, 역자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역자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좋지 않은 우리 글’의 또 다른 탄생에 수동적으로 기여해도 괜찮은 것일까?

 

번역을 시작한 초기에는 소극적이었다. 대체로 저자의 문장과 1:1로 매칭이 되도록 충실히 옮겨놓는 길을 택했다. 초보 역자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한국어 문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문장의 어순을 바꾸고, 불필요한 주어를 생략하고, 영어 특유의 대명사의 남용을 지양하는 정도는 필요했으나, 그 이상으로 윤문을 하거나 아예 문장을 자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이 영 좋지 않았다. 저자는 법학교수 답게 매우 현학적이고 장황한 문장을 구사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뀐 문장은 더욱 고답적이었다. (초벌 리뷰를 해 준 분은 내가 법학을 공부하더니 문장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 평했으나, 나는 내 탓이 아니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독자는 역자의 핑계를 양해할 마음이 없다. 입문서라고 해서 읽으려는데 문장이 장황하다면, 역자의 실력과 성의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초벌번역을 마치고 며칠 뒤 다시 읽어본 글은 형편없었다.

 

결국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쉽게 쓰려고 했다. 아예 주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둘로 자르기도 하고, 의미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써보려고 했다. 지금 다시 봐도 중반 이후부터는 읽기에 훨씬 수월하다. 아예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가 잘 못 썼음이 명백한 문단의 순서를 바꾸면서 연결어를 삽입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의도를 오해한 출판사와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자로서는 난데 없는 문단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문판 독자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할 부분이었지만, 그런 체험까지 한국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갓 단행본 한 권을 번역했을 뿐인 초보 역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역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개론서나 교양서의 수준에서는 역자가 전면에 나서는 편이 좋다. 의미를 해치지 않는 가능한 한도에서 최대한 해당 언어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다시 써야 한다. 개성있는 역자의 무리수라고 볼 일이 아니다. 번역이 결국 우리말의 생태계에 다양성을 보태는 일이라면, 좋은 문장을 보탤 일이다. 새롭게 창작한다는 생각으로 번역을 해야한다. 원전에 충실해야 할 책(예컨대 강독을 위해 읽어야 할 고전)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러나 원전에 충실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면 원서로 직접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 (번역을 할 일이 또 생길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적극적인 역자가 되겠다. 영미의 어느 탁월한 번역자는 이런 찬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뒤 영어로 다시 책을 쓴 것 같다고.


(덧. 이력의 대학신문에는 쌍꺽쇠를 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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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법전서

일/법 2016.10.04 16:04

육법전서(六法典書)

 

   육법전서라는 표현은 일본 개화기의 법학자 미츠꾸리 린쇼(箕作麟祥) 박사가 1874년 프랑스법을 번역한 책인 불란서법률서(仏蘭西法律書)에서 등장한다. 당시 나폴레옹 오법전(민법전, 상법전, 형법전, 민사소송법전, 치죄(治罪)법전)이라 불리우던 Codes Napoléoniens에 헌법을 추가하여 육법전서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본래 난학자였던 린쇼 박사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당시 독일의 판덱텐 체계가 아직 편찬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폴레옹 법전이 사실상 유일한 근대법전이었다. 이 육법 이외에는 변변한 법이랄 것이 없었으므로 육법전서는 모든 법을 담은 법전으로 이해되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법전에 육법전서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육법전서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예컨대 김수영 시, ‘육법전서와 혁명’), 근래에 들어서는 오히려 기본3(헌법, 민법, 형법)과 후사법(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이라는 표현이 법학도들 사이에서 통용되었다. 그런데 이 명칭은 사법시험 1차과목과 2차과목을 지칭하기 위하여 편의상 사용한 것에 불과하여 사법시험이 폐지된 지금에 와서는 효용이 줄어들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로스쿨 교육체계에 따라 필수법과 선택법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은 많이 팔리는 법전 이름은 그냥 '변호사시험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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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에 앞서 이루어지는 전략적 제휴 등에 관하여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는 표현이 통용된다. 그러나 의향서(LoI) 내지 양해각서(MOU)의 경우 법적 구속력 있는 계약이 아니므로 “체결”이 아니라 “교환”이 맞다. 양해각서에 기재하는 내용은 당사자들이 거래에 관하여 각자 확인한 바를 단순히 기재하는 것에 그치고 계약에 관한 어떠한 권리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실적으로 본 계약 체결가능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영업비밀 등이 유출되는 경우에는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는 약정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한도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발생하므로 일종의 협상계약(교섭계약)이라고는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양해각서의 일부가 되거나 양해각서에 병행하여 이루어지는 계약일 뿐 양해각서 자체가 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 간 M&A가 아니라 회생파산절차에서 법원이 개입하는 M&A의 경우에는 성격이 다른데, 입찰참가의향서에는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조항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이란에 방문한 대통령의 MOU 교환을 두고 정부가 "52억 잭팟" 운운하며 홍보 중이다. 보도자료대로 효과가 있다면야 좋은 일이겠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 MOU는 계약 체결이 이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처음부터 MOU 교환이라는 용어가 정착해 있었더라면 고작 MOU 정도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법적 실질에 부합하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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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1 수업 결산

일/법학 2015.12.16 17:55

  더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기 전에 2015년도 수강내역을 기록해 둔다.

   1학기에는 헌법1, 형법1, 민법1(계약법), 민법2(책임법), 법조윤리, 법문서작성 등을 들었다.

   가장 재미있는 수업은 김제완 교수님의 계약법이었다. 실무가 출신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연혁적 설명은 최소화하고 바로 법리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셨다. 강의안도 마찬가지로 컴팩트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좋았지만 민법을 처음 공부한다면 좀 헤맬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업내용도 좋지만 강의 중간에 해주시는 뒷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예컨대 분단 직후 유상분배형식으로 이루어진 남한의 토지개혁이 어떻게 봉건적 지주세력을 근대 산업세력으로 재편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법대 교수님들은 정치적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고 느꼈지만, 김제완 교수님은 법과 법조인의 역할에 대하여 상당히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 김규완 교수님께서도 인품이 훌륭하시고, 나름대로 좋은 설명을 많이 해주셨지만 자신의 개성은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형법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과목이었지만 하태훈 교수님은 몹시 존경할만한 관점과 태도를 갖고 계셨다. 다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학점 따기가 쉽지 않았다. 헌법(통치구조론)은 형법보다는 흥미로웠지만 학부 때 정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김하열 교수님도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훌륭한 분이었다.

   반면 법조윤리, 법문서작성, 비아유리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김남근 교수님의 설명은 간결하고 명쾌한 측면이 있었고, 비아유리스에서는 종종 아주 좋은 강연도 있었다(그러나 몹시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해로운 강연도 많았다).

  여름에는 미국재판실무를 들었는데, 미국에서 형사변호사로 활동하시는 민수영 교수님이 배심원제 하에서의 변론에 대해서 강의해 주셨다. P/F과목이라 부담 없이 참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사실 정말 좋은 강의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 형사재판의 절차에 대해서 실무가의 손에 잡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2학기는 헌법2, 형법2, 민법3(물권법), 민법4(기타민법), 민소1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려대 민법강의 구성에 다소 의문이 있다. 물적담보와 인적담보, 보전제도를 묶어서 담보법으로 강의하고, 소유권 및 용익물권과 기타 법리를 묶어서 재산법으로 강의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만 이 경우 현행과 달리 등기제도에 대한 일관된 이해가 좀 어려울 수는 있겠다. 여하튼 돌이켜보면 현행 고려대 커리큘럼으로는 1학년 2학기가 가장 널럴한 것 같다. 상총이나 행정1정도는 더 추가해도 될 커리큘럼이라는 생각. 개인적으로도 선택법을 한 과목 정도 더 듣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민법은 1학기에 이어서 김제완 교수님 강의를 수강했다. 김상중 교수님 강의도 들었는데, 매우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분이었다. 학생들에게 너무 많이 떠먹여주려는 감이 다소 있었다. 윤영미 교수님의 헌법 수업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예습이 필수적이고, 학기 후반부엔 예습을 못해서 전혀 못알아듣는 일도 많았지만, 일단 충실히 예습하고 들어가면 교수님의 설명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 있었다. 헌법소송에 대한 교수님의 관점도 경청할 만했다. 민소의 정영환 교수님도 훌륭한 인품을 갖추신 분이었다. 선배들에게 듣던 것과는 다르게 교재나 수업도 준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형법... 형법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상돈 교수님의 관점은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 것이 많았는데, 예컨대 성범죄와 관련한 교수님의 페미니즘 비판은 도무지 받아들일 것이 못됐다. 예컨대 부부강간이나 데이트 성폭력에 관한 교수님의 관점은 내 기준에서는 지극히 혐오스러웠다. 훌륭한 이론적 업적도 많고 탁월한 실력이 있는 분임에는 틀림없지만, 일단 사회를 보는 시각이 나와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른 모든 설명도 괜히 삐딱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고쳐야 할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형법은 아마도 성적도 좋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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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홈피 구성이 바뀌었군요. 무넌찡 잘 살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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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법시간에 윤선생님께서 따끔한 말씀을 주셨다. “변호인의 마음으로 공부하라.” 결과에 치중한 수험중심의 공부방법에 대한 우려의 말이었다. 교수님들이 으레 하는 말씀 중 하나로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요즘 하던 고민과도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깊은 공감이 갔다. 특히 법학에 대한 호기심이랄지 열정 같은 것들이 점차 사그러들고 있는 요즘,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었다.

교과서를 읽을 때, 판례를 읽을 때 자꾸 수험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이런 건 약술시험에 나올만 하지만, 저런 건 사례형으로 낼 수 없지, 제끼자. 뭐 그런 식. 내가 공부하는 것들을 나중에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내가 이 사례의 변호사라면 어떻게 논리를 구성했을 지 몰입해서 공부하려는 진정성이 부족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판례와 법리를 암기하고 수월하게 현출하는 데에 급급했을 뿐. 그래서 요즘 공부가 더 지겨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어느 직역을 택하더라도 남의 삶을 다루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단 잘 하고 볼 일이다. 내 인생 스스로 망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의 부족함이 타인의 삶을 망치도록 둘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착실히 기본기를 닦는 지금 이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지 좋은 점수를 받아 성공하겠다는 욕망의 시간을 넘어.

나는 지금 깨어있나. 법률가는 판례로 세상을 본다고 하던데,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일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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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본 소장

일/법학 2014.05.09 21:52

처음 써본 소장 연습. 

광활한 민법의 바다에서 오랫동안 허우적댔습니다. 퍼즐을 푸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결과는 점점 더 헝클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 날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남겨둡니다.


사실 틀린 것 투성이의 형편 없는 소장입니다. 140/200 맞음.




소 장 

!

원고 1. 김일동 (******-*******)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해누림아파트 112동 907호 

2. 이화순 (******-*******)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해누림아파트 112동 907호 

소송 대리인 변호사 경대승 

서울 서초구 서초동 345 법사랑빌딩 301호 

전화 02-532-1008, 팩스 02-532-1005, 전자우편 nhm1008@gymail.com 

!

피고 1. 김이동 (******-*******) 

 서울 송파구 잠실동 123-44 다세대 주택 2층 

 2. 최미선 (******-*******) 

 서울 송파구 잠실동 123-44 다세대 주택 2층 

!

건물인도 등 청구의 소 

! 청 구 취 지 

!

1. 원고 김일동에게, 

가. 피고들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100 지상 벽돌조 기와지붕 2층 영업시설 1층 150m2, 2층 150m2를 인도하고, 

나. 피고들은 연대하여 3500만 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 이화순에게 피고 최미선은 4000만 원 및 이에 대한 2012. 6. 30.부터 이 사건 송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월 1%,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3. 소송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한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 청 구 원 인 

!

1. 건물인도청구 

가. 원고 김일동은 2011. 6. 20. 소외 박치수로부터 피고들이 임차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100 지상 벽돌조 기와지붕 2층 영업시설 1층 150m2, 2층 150m2(이하 ‘이 사건 건물’이라고 한다)를 매수하며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였고, 2011. 9. 20. 소외 박치수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았습니다. 피고들은 이 사건 건물의 임차인으로,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하여 2011. 3. 20.부터 2013. 3. 19.까지를 임대기간으로 하여 보증금 1억 원, 월세 500만 원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나. 그러나 피고들은 약정 차임을 2기 이상 연체하였고 2013. 3. 19. 원고 김일동은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여 적법하게 임대차가 종료되었으나 피고들은 이 사건 건물을 인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 피고들은 건물 인도와 보증금 반환의 동시이행을 주장하나 보증금반환청구권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체된 차임과 상계되어 소멸하였으므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라. 따라서 피고들은 원고 김일동에게 이 사건 토지를 원상으로 회복하여 반환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2. 차임지급청구 

가. 원고 김일동은 이 사건 건물을 매수하면서 연체 중인 차임의 수령권한도 승계하는 약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들은 2011. 3. 20. 부터 2013. 10. 20.까지 30기의 차임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1억 5000만 원의 차임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 피고들은 천장과 벽면 누수 현상에 대한 보수비용으로 500만 원, 전기 시설, 수도 시설 교체 비용으로 1,000만 원의 필요비를 각 지출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상계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음식점 영업에 필요한 간판설치 및 인테리어 비용으로 지출한 2,000만 원, 주방시설 구입 및 설치비용으로 1,000만 원은 오로지 임차인의 특수목적에 이용될 뿐 건물의 사용에 객관적인 편익을 가져오게 하는 물건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원고 김일동이 지급할 의무가 없습니다. 

다. 피고들은 원고 이화선이 원고 김일동을 대리하여 1년치 월세를 면제해 주었다고 주장하나, 원고 김일동이 대리권 수여를 한 사실이 없고, 1년치 월세의 면제가 기본가사대리권의 범위 내라고 보아 표현대리가 성립할 여지도 없으며, 원고 이화선으로서는 피고 최미선이 원고 김일동의 동의를 받는다는 조건 하에 인감도장을 제공한 것 뿐이므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라. 이 사건 건물 보증금반환청구권에 대한 가압류가 있으나, 임대인은 임차인에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 제3채무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 것이므로 원고 김일동은 연체된 차임과 보증금 1억원을 상계할 수 있습니다. 

마. 따라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 김일동에게 3500만 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 제3조에 따른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

3. 대여금반환청구 

가. 원고 이화순은 2009. 5. 10. 피고들에게 소갈비를 공급하여 3000만 원의 매매대금 채권을 갖고 있었으며, 2011. 9. 26. 피고 최미선에게 추가로 2000만 원을 빌려주면서, 피고 최미선의 동의 아래 채권자를 원고 이화선, 채무자를 피고 최미선, 채권액을 5000만 원, 변제일을 2012. 6. 30.로 하는 새로운 채권으로 경개하였습니다. 

나. 원고 이화순은 피고 최미선에게 2011. 9. 26. 빌려준 2000만 원 중 1000만 원의 채무를 면제하기로 하였으므로 이를 인정합니다. 

다. 따라서 피고 최미선은 원고 이화순에게 대여금 4000만 원 및 이에 대한 2012. 6. 30.부터 이 사건 송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지연손해금 약정에 따라 월 1%,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 제3조에 따른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대여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

4. 결 어 

이상과 같은 이유로 원고들은 본 소를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입증방법 

(생락) 

! 첨부서류 

(생략) 

! 2013. 10. 20.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경대승 

!

서울중앙지방법원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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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일/글쓰기 2013.06.03 23:08

좁은 문. 대학신문 5월 27일자 맥박.


『좁은 문』의 주인공 알리사는 사촌동생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혼자 쓸쓸하게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알리사를 강하게 지배한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는 그가 지상의 사랑을 억누르고 ‘좁은 문’을 거쳐 신에게 의탁하는 길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유년 시절 알리사와 제롬이 함께 들었던 주일 설교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불면과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했다.

지금도 매일 밤 수많은 청춘은 좁은 문을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종교적 구원의 문이 아니라 정규직 취업의 문이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가는 길은 갈수록 험난해진다. 청년들은 서로를 밀치고 제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애쓴다. 그 옆에는 매우 크고 한산한 문이 비정규직이란 문패를 달고 섰지만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월급(명목임금)은 정규직이 253만원, 비정규직이 141만원이다. 격차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란다. 전체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증가했는데,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 가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정규직은 상승하고 비정규직은 하락했다. 게다가 잇단 산재 사망(대우조선해양), 계약 해지 후 자살(현대자동차), 실적 압박으로 투신(롯데백화점)과 같은 우울한 소식을 듣고 있자니, 정규직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비유는 문학적 수사에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알리사가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좁은 문에 다가가려 했다면, 오늘날 청춘은 ‘세속적 금욕주의’라 할 만한 태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견결하게 다듬는다.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점 관리에 힘쓰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이제 여가와 휴식, 우정과 사랑마저 세속적 금욕주의로 승화한다. 동아리 활동은 기왕이면 봉사활동이나 영어토론이 좋다. 프레젠테이션 동아리, ‘금융’이나 ‘경제’가 이름에 붙은 동아리라면 더 좋다.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듣기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미드’를 본다. 인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친구를 사귀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뺏기지는 않는다. 집값과 양육비 걱정에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소문에 따르면 한번 비정규직 트랙에 올라타고 나면 동일 노동을 하고도 2/3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4대 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되고, 또 좀처럼 비정규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씁쓸해하는 한편 또 오늘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지 헤아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좁다.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을 꿈꿨던 수많은 이들은 인턴, 계약직, 파견직, 기간제, 하청, 특수고용 등 이름도 다양한 비정규직의 넓은 문으로 무기력하게 떠밀려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푸어’해지는 각종 신조어들이 낙인처럼 찍힌다. 문을 뚫고 마침내 성취한 소수의 성공담은 낙오자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상처가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오늘도 이 말을 되뇌며 버스에 지친 몸을 실었던 당신. 세속적 금욕주의로 삶을 벼리며 좁은 문에 끼워 넣으려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품었는지. 좁은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치며 어떤 멍이 들었는지. 들춰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상처들을 온몸 깊은 곳에 숨겨뒀는지.

 『좁은 문』으로 앙드레 지드는 사랑을 가로막는 종교적 윤리의 허무함을 비판해 기독교적 유럽 사회에 격론을 일으켰다. 숭고한 삶과 세속적 삶의 엄격한 구분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제약한 전통적 이분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 청춘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좁은 문은 어떤가. 좁은 문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떤 반기를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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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하...좁은 문 비유까지 ㅜㅜㅜ
    역시 대단하십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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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신문 2013년 5월 13일자 기고


<54
년동안의 필독>

  여기
54년 전통의 중견 언론이 있다. 격랑 속 현대사의 산증인이 되어 온 대학가 대표 언론, 한대신문이다. 1959년 창간호를 발행했다니 1965년 창간의 중앙일보, 1988년 창간의 한겨레보다도 역사가 깊다. 1386호에 이르는 발행기간 동안 한양대의 빛과 그림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성장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한양대 구성원간의 소통과 여론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이들이다. 이들 덕분에 한양대라는 공동체는 역사를 갖게 됐다.


  신문은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 왔다
.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에 살게 된다.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온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보의 기사를 통해 대학의 구성원들은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해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고, 이러한 기억은 정체성과 자부심, 애착의 원천이 됐다. 54년동안의 필독으로 한대신문이 얼마나 많은 신입생들을 '한양인'으로 길러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대신문이 사건사고만 단순보도해 온 것은 아니다
. 한양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쟁을 선도해 온 것은 언제나 한대신문이었다. 학생, 교수, 직원을 아우르는 한양대의 언론매체는 한대신문 뿐이다. 학생의 입장, 교수의 입장, 혹은 학생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포괄하며 논쟁 가능한 한양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월요일, 한대신문을 펼쳐들고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하고, 논쟁하도록 만드는 기사를 쓰도록 한대신문의 기자들은 밤낮으로 분투해왔다. 대학이 단순히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대학공동체로서 당면한 문제들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도록 논의의 장을 마련해 온 것이다.


  요즘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말도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 월요일이면 학생들이 습관처럼 학보를 열독하고, 모교의 학보를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주던 대학가의 낭만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대신문은 한양대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외부 활동과 스펙 쌓기, 다원화된 관심사로 대학에 대한 애착감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대학의 문제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학보 외에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을까.


  54
돌을 맞은 한대신문이 100년동안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한대신문 기자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다. 한양인들의 삶을 파고드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읽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만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대신문은 한양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려는 이가 없으면 쓰이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없다면, 대학언론이 위기를 맞는 것도 당연할 터이니 말이다.


  한대신문의
54, 한양대의 74돌을 축하한다. 100, 200돌이 지나도 한대신문은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로 한양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독자인 당신의 관심만 있다면.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느라 글의 자기 복제 혐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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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자 대학신문 맥박.


“우리는 첫째 편협하지 않음으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으며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여 공평하게 인민으로 말할 터인데, 서울 백성만 위할 것이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代言)하여 주려 한다.”

1896년 4월 7일, 조선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그 독자를 ‘조선 인민 전체’로 호명(呼名)했다. 그저 선언에 그친 공허한 말이 아니었다. 「독립신문」은 양반이나 학문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국문체를 최초로 도입했고 한글 단어의 사용도 신중히 고려했다.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투고할 수 있도록 칼럼란도 개방했다. 인천, 원산, 부산, 평양에 지사를 설립해 실제로 조선 전국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계급과 지역, 연령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려 정치공동체의 인적 구성원리를 근대적으로 이해한 실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독립신문」이 호명한 ‘조선 인민’ 관념은 빠르게 대중화됐고, 객체로만 존재하던 인민은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주체로 서게 됐다.

신문은 처음 만들어진 이래 언제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대적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근대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집단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념을 부여해온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이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역, 기업, 정당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각각의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맡고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는 오늘날에조차 신문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학보(學報)를 발행하는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 때문이다. 대학은 학생, 교수, 직원의 산술적 합 이상의 유기체이며, 각각의 개별적 이익으로 분할되지 않는 공통의 역할과 의무를 갖고 있다. 구성원 간 갈등과 대립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쟁점을 합리적으로 짚고 ‘공동체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학보의 역할이다. 학보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참여해 대학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서 대학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학보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학의 공동체성을 긍정하는 선언이다. 만약 대학공동체라는 관념이 다만 허상일 뿐이고 대학을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학보는 쓸데없는 것이 될 것이다. 졸업장이든 연구비든, 각자 얻으려 하는 것을 얻고 떠나면 그만인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체라고 믿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보편화된 시대, 오늘도 대학 내 소식을 전하러 뛰어다니고 있는 학보사 기자들은 어쩌면 지독한 반(反)신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펴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독립신문」 창간일이자 ‘신문의 날’이었던 어제, 「독립신문」 창간사를 찾아 읽으며 『대학신문』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아직도 내걸고 있는 『대학신문』이 오늘날 보도해야 할 관악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학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 답은 이미 1896년에 준비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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