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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후기

일/글쓰기 2017.04.21 09:21

『법- 레이먼드 웍스 지음, 이문원 옮김, 교유서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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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여유가 생겨서 번역 후기를 기록해 둔다.

 

번역은 흥미롭지만 어려운 작업이었다. 즐거운 곤란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타인의 글을 그저 읽는 것과도, 나의 글을 그저 쓰는 것과도 달랐다. 읽는 동시에 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마치 나의 말인 것처럼 쓴다. 번역자는 어디서부터 얼만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중개하는 일은 예상만큼 어렵지 않았지만, 의외로 역자에게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 꽤 곤란했다.

 

예컨대 저자의 문장이 불만족스럽거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역자가 자신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충실히 저자의 말을 옮겨서 그저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저자가 독특한 수사법을 사용하는 경우엔 어떠한가. 저자가 매우 현학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역자도 그에 준하는 현학적인 단어로 옮겨놓아야 할까? 현학적인 태도가 저자의 의도된 수사법이라기 보다는 그저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보이는 때에도? 심지어 저자가 틀린 정보를 제시하고 있을 때라면, 역자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역자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좋지 않은 우리 글’의 또 다른 탄생에 수동적으로 기여해도 괜찮은 것일까?

 

번역을 시작한 초기에는 소극적이었다. 대체로 저자의 문장과 1:1로 매칭이 되도록 충실히 옮겨놓는 길을 택했다. 초보 역자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한국어 문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문장의 어순을 바꾸고, 불필요한 주어를 생략하고, 영어 특유의 대명사의 남용을 지양하는 정도는 필요했으나, 그 이상으로 윤문을 하거나 아예 문장을 자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이 영 좋지 않았다. 저자는 법학교수 답게 매우 현학적이고 장황한 문장을 구사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뀐 문장은 더욱 고답적이었다. (초벌 리뷰를 해 준 분은 내가 법학을 공부하더니 문장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 평했으나, 나는 내 탓이 아니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독자는 역자의 핑계를 양해할 마음이 없다. 입문서라고 해서 읽으려는데 문장이 장황하다면, 역자의 실력과 성의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초벌번역을 마치고 며칠 뒤 다시 읽어본 글은 형편없었다.

 

결국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쉽게 쓰려고 했다. 아예 주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둘로 자르기도 하고, 의미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써보려고 했다. 지금 다시 봐도 중반 이후부터는 읽기에 훨씬 수월하다. 아예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가 잘 못 썼음이 명백한 문단의 순서를 바꾸면서 연결어를 삽입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의도를 오해한 출판사와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자로서는 난데 없는 문단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문판 독자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할 부분이었지만, 그런 체험까지 한국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갓 단행본 한 권을 번역했을 뿐인 초보 역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역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개론서나 교양서의 수준에서는 역자가 전면에 나서는 편이 좋다. 의미를 해치지 않는 가능한 한도에서 최대한 해당 언어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다시 써야 한다. 개성있는 역자의 무리수라고 볼 일이 아니다. 번역이 결국 우리말의 생태계에 다양성을 보태는 일이라면, 좋은 문장을 보탤 일이다. 새롭게 창작한다는 생각으로 번역을 해야한다. 원전에 충실해야 할 책(예컨대 강독을 위해 읽어야 할 고전)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러나 원전에 충실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면 원서로 직접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 (번역을 할 일이 또 생길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적극적인 역자가 되겠다. 영미의 어느 탁월한 번역자는 이런 찬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뒤 영어로 다시 책을 쓴 것 같다고.


(덧. 이력의 대학신문에는 쌍꺽쇠를 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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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일/글쓰기 2013.06.03 23:08

좁은 문. 대학신문 5월 27일자 맥박.


『좁은 문』의 주인공 알리사는 사촌동생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혼자 쓸쓸하게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알리사를 강하게 지배한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는 그가 지상의 사랑을 억누르고 ‘좁은 문’을 거쳐 신에게 의탁하는 길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유년 시절 알리사와 제롬이 함께 들었던 주일 설교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불면과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했다.

지금도 매일 밤 수많은 청춘은 좁은 문을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종교적 구원의 문이 아니라 정규직 취업의 문이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가는 길은 갈수록 험난해진다. 청년들은 서로를 밀치고 제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애쓴다. 그 옆에는 매우 크고 한산한 문이 비정규직이란 문패를 달고 섰지만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월급(명목임금)은 정규직이 253만원, 비정규직이 141만원이다. 격차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란다. 전체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증가했는데,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 가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정규직은 상승하고 비정규직은 하락했다. 게다가 잇단 산재 사망(대우조선해양), 계약 해지 후 자살(현대자동차), 실적 압박으로 투신(롯데백화점)과 같은 우울한 소식을 듣고 있자니, 정규직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비유는 문학적 수사에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알리사가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좁은 문에 다가가려 했다면, 오늘날 청춘은 ‘세속적 금욕주의’라 할 만한 태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견결하게 다듬는다.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점 관리에 힘쓰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이제 여가와 휴식, 우정과 사랑마저 세속적 금욕주의로 승화한다. 동아리 활동은 기왕이면 봉사활동이나 영어토론이 좋다. 프레젠테이션 동아리, ‘금융’이나 ‘경제’가 이름에 붙은 동아리라면 더 좋다.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듣기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미드’를 본다. 인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친구를 사귀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뺏기지는 않는다. 집값과 양육비 걱정에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소문에 따르면 한번 비정규직 트랙에 올라타고 나면 동일 노동을 하고도 2/3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4대 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되고, 또 좀처럼 비정규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씁쓸해하는 한편 또 오늘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지 헤아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좁다.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을 꿈꿨던 수많은 이들은 인턴, 계약직, 파견직, 기간제, 하청, 특수고용 등 이름도 다양한 비정규직의 넓은 문으로 무기력하게 떠밀려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푸어’해지는 각종 신조어들이 낙인처럼 찍힌다. 문을 뚫고 마침내 성취한 소수의 성공담은 낙오자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상처가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오늘도 이 말을 되뇌며 버스에 지친 몸을 실었던 당신. 세속적 금욕주의로 삶을 벼리며 좁은 문에 끼워 넣으려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품었는지. 좁은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치며 어떤 멍이 들었는지. 들춰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상처들을 온몸 깊은 곳에 숨겨뒀는지.

 『좁은 문』으로 앙드레 지드는 사랑을 가로막는 종교적 윤리의 허무함을 비판해 기독교적 유럽 사회에 격론을 일으켰다. 숭고한 삶과 세속적 삶의 엄격한 구분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제약한 전통적 이분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 청춘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좁은 문은 어떤가. 좁은 문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떤 반기를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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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하...좁은 문 비유까지 ㅜㅜㅜ
    역시 대단하십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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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신문 2013년 5월 13일자 기고


<54
년동안의 필독>

  여기
54년 전통의 중견 언론이 있다. 격랑 속 현대사의 산증인이 되어 온 대학가 대표 언론, 한대신문이다. 1959년 창간호를 발행했다니 1965년 창간의 중앙일보, 1988년 창간의 한겨레보다도 역사가 깊다. 1386호에 이르는 발행기간 동안 한양대의 빛과 그림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성장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한양대 구성원간의 소통과 여론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이들이다. 이들 덕분에 한양대라는 공동체는 역사를 갖게 됐다.


  신문은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 왔다
.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에 살게 된다.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온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보의 기사를 통해 대학의 구성원들은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해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고, 이러한 기억은 정체성과 자부심, 애착의 원천이 됐다. 54년동안의 필독으로 한대신문이 얼마나 많은 신입생들을 '한양인'으로 길러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대신문이 사건사고만 단순보도해 온 것은 아니다
. 한양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쟁을 선도해 온 것은 언제나 한대신문이었다. 학생, 교수, 직원을 아우르는 한양대의 언론매체는 한대신문 뿐이다. 학생의 입장, 교수의 입장, 혹은 학생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포괄하며 논쟁 가능한 한양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월요일, 한대신문을 펼쳐들고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하고, 논쟁하도록 만드는 기사를 쓰도록 한대신문의 기자들은 밤낮으로 분투해왔다. 대학이 단순히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대학공동체로서 당면한 문제들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도록 논의의 장을 마련해 온 것이다.


  요즘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말도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 월요일이면 학생들이 습관처럼 학보를 열독하고, 모교의 학보를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주던 대학가의 낭만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대신문은 한양대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외부 활동과 스펙 쌓기, 다원화된 관심사로 대학에 대한 애착감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대학의 문제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학보 외에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을까.


  54
돌을 맞은 한대신문이 100년동안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한대신문 기자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다. 한양인들의 삶을 파고드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읽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만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대신문은 한양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려는 이가 없으면 쓰이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없다면, 대학언론이 위기를 맞는 것도 당연할 터이니 말이다.


  한대신문의
54, 한양대의 74돌을 축하한다. 100, 200돌이 지나도 한대신문은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로 한양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독자인 당신의 관심만 있다면.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느라 글의 자기 복제 혐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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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자 대학신문 맥박.


“우리는 첫째 편협하지 않음으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으며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여 공평하게 인민으로 말할 터인데, 서울 백성만 위할 것이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代言)하여 주려 한다.”

1896년 4월 7일, 조선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그 독자를 ‘조선 인민 전체’로 호명(呼名)했다. 그저 선언에 그친 공허한 말이 아니었다. 「독립신문」은 양반이나 학문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국문체를 최초로 도입했고 한글 단어의 사용도 신중히 고려했다.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투고할 수 있도록 칼럼란도 개방했다. 인천, 원산, 부산, 평양에 지사를 설립해 실제로 조선 전국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계급과 지역, 연령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려 정치공동체의 인적 구성원리를 근대적으로 이해한 실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독립신문」이 호명한 ‘조선 인민’ 관념은 빠르게 대중화됐고, 객체로만 존재하던 인민은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주체로 서게 됐다.

신문은 처음 만들어진 이래 언제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대적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근대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집단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념을 부여해온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이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역, 기업, 정당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각각의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맡고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는 오늘날에조차 신문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학보(學報)를 발행하는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 때문이다. 대학은 학생, 교수, 직원의 산술적 합 이상의 유기체이며, 각각의 개별적 이익으로 분할되지 않는 공통의 역할과 의무를 갖고 있다. 구성원 간 갈등과 대립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쟁점을 합리적으로 짚고 ‘공동체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학보의 역할이다. 학보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참여해 대학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서 대학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학보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학의 공동체성을 긍정하는 선언이다. 만약 대학공동체라는 관념이 다만 허상일 뿐이고 대학을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학보는 쓸데없는 것이 될 것이다. 졸업장이든 연구비든, 각자 얻으려 하는 것을 얻고 떠나면 그만인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체라고 믿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보편화된 시대, 오늘도 대학 내 소식을 전하러 뛰어다니고 있는 학보사 기자들은 어쩌면 지독한 반(反)신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펴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독립신문」 창간일이자 ‘신문의 날’이었던 어제, 「독립신문」 창간사를 찾아 읽으며 『대학신문』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아직도 내걸고 있는 『대학신문』이 오늘날 보도해야 할 관악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학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 답은 이미 1896년에 준비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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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신문에 기고한 4월 1일자 <타대생각>


국립서울대학교가 이름 앞에 ‘법인’이라는 단어를 달게 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법인 서울대’로 신입생이 입학한 것도 벌써 두 학번 째니 이제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은 잠잠해졌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상황은 정 반대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여전히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두고 크고 작은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2011년의 본부점거 당시보단 조용하지만 오히려 논쟁은 더 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법인화 반대론자들의 가장 큰 우려였던 대학의 ‘시장화’는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기초학문이 고사하는 등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리라는 우려는 현재까진 기우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학 시장화의 결과는 단기간에 드러나기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변화로 서서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은 여전하다.
 
  대신 법인화로 변화한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한 쟁점이 중심으로 부상했다. 법인화 이전에는 최고 의결권이 평의원회에 있었다. 총장에 의한 자의적 운영을 평의원회가 견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1년 법인화 직후 평의원회가 심의기구로 격하되었고, 모든 의결권은 학외 인사 8명, 학내인사 7명으로 구성되는 법인 이사회로 넘어갔다. 이때 이사장은 총장이 겸직하고 있다. 사실상 총장을 견제할 조직과 방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총장직선제도 폐지되고 간선제로 바뀌면서 대학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안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교수들이다. 지난 25일 교수협의회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법인화법 개정안을 본부에 제출했다. 대학이 학교 법인에 포함되는 현 구조 대신 법인과 대학을 분리해 대학의 연구·교육·행정 기능을 대학 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수협은 본부에 검토를 촉구하고 학내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오는 10일에는 평의원회 주최의 법인화 1주년 세미나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공무원 인사규정을 따르고 있어 모호해진 직원의 지위를 개선해달라며 천막농성까지 펼치고 나섰다. 평의원회 직원 비중을 늘리고 대학 운영에 직원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겠다며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일단은 잠잠해 보인다.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된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해서일까. 총학 대신 들어선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법인회계 투명화를 위한 TF팀’을 출범시키기로 했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미미하다. 지난주에는 등록금 관련 강연회도 열었지만 참여자는 20명 남짓했다고 한다. 총학생회 재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상당수의 학생들은 선거가 시작한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단독으로 출마한 선본에게서도 법인화와 관련한 정책은 듣기 어렵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적어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2년 차에 접어든 법인 서울대에서 학생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이문원 대학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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