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해당하는 글 13건

한양대신문 2013년 5월 13일자 기고


<54
년동안의 필독>

  여기
54년 전통의 중견 언론이 있다. 격랑 속 현대사의 산증인이 되어 온 대학가 대표 언론, 한대신문이다. 1959년 창간호를 발행했다니 1965년 창간의 중앙일보, 1988년 창간의 한겨레보다도 역사가 깊다. 1386호에 이르는 발행기간 동안 한양대의 빛과 그림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성장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한양대 구성원간의 소통과 여론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이들이다. 이들 덕분에 한양대라는 공동체는 역사를 갖게 됐다.


  신문은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 왔다
.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에 살게 된다.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온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보의 기사를 통해 대학의 구성원들은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해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고, 이러한 기억은 정체성과 자부심, 애착의 원천이 됐다. 54년동안의 필독으로 한대신문이 얼마나 많은 신입생들을 '한양인'으로 길러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대신문이 사건사고만 단순보도해 온 것은 아니다
. 한양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쟁을 선도해 온 것은 언제나 한대신문이었다. 학생, 교수, 직원을 아우르는 한양대의 언론매체는 한대신문 뿐이다. 학생의 입장, 교수의 입장, 혹은 학생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포괄하며 논쟁 가능한 한양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월요일, 한대신문을 펼쳐들고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하고, 논쟁하도록 만드는 기사를 쓰도록 한대신문의 기자들은 밤낮으로 분투해왔다. 대학이 단순히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대학공동체로서 당면한 문제들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도록 논의의 장을 마련해 온 것이다.


  요즘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말도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 월요일이면 학생들이 습관처럼 학보를 열독하고, 모교의 학보를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주던 대학가의 낭만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대신문은 한양대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외부 활동과 스펙 쌓기, 다원화된 관심사로 대학에 대한 애착감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대학의 문제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학보 외에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을까.


  54
돌을 맞은 한대신문이 100년동안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한대신문 기자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다. 한양인들의 삶을 파고드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읽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만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대신문은 한양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려는 이가 없으면 쓰이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없다면, 대학언론이 위기를 맞는 것도 당연할 터이니 말이다.


  한대신문의
54, 한양대의 74돌을 축하한다. 100, 200돌이 지나도 한대신문은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로 한양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독자인 당신의 관심만 있다면.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느라 글의 자기 복제 혐의가 짙다.)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트랙백  0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2013년 4월 8일자 대학신문 맥박.


“우리는 첫째 편협하지 않음으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으며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여 공평하게 인민으로 말할 터인데, 서울 백성만 위할 것이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代言)하여 주려 한다.”

1896년 4월 7일, 조선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그 독자를 ‘조선 인민 전체’로 호명(呼名)했다. 그저 선언에 그친 공허한 말이 아니었다. 「독립신문」은 양반이나 학문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국문체를 최초로 도입했고 한글 단어의 사용도 신중히 고려했다.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투고할 수 있도록 칼럼란도 개방했다. 인천, 원산, 부산, 평양에 지사를 설립해 실제로 조선 전국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계급과 지역, 연령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려 정치공동체의 인적 구성원리를 근대적으로 이해한 실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독립신문」이 호명한 ‘조선 인민’ 관념은 빠르게 대중화됐고, 객체로만 존재하던 인민은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주체로 서게 됐다.

신문은 처음 만들어진 이래 언제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대적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근대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집단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념을 부여해온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이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역, 기업, 정당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각각의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맡고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는 오늘날에조차 신문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학보(學報)를 발행하는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 때문이다. 대학은 학생, 교수, 직원의 산술적 합 이상의 유기체이며, 각각의 개별적 이익으로 분할되지 않는 공통의 역할과 의무를 갖고 있다. 구성원 간 갈등과 대립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쟁점을 합리적으로 짚고 ‘공동체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학보의 역할이다. 학보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참여해 대학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서 대학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학보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학의 공동체성을 긍정하는 선언이다. 만약 대학공동체라는 관념이 다만 허상일 뿐이고 대학을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학보는 쓸데없는 것이 될 것이다. 졸업장이든 연구비든, 각자 얻으려 하는 것을 얻고 떠나면 그만인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체라고 믿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보편화된 시대, 오늘도 대학 내 소식을 전하러 뛰어다니고 있는 학보사 기자들은 어쩌면 지독한 반(反)신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펴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독립신문」 창간일이자 ‘신문의 날’이었던 어제, 「독립신문」 창간사를 찾아 읽으며 『대학신문』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아직도 내걸고 있는 『대학신문』이 오늘날 보도해야 할 관악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학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 답은 이미 1896년에 준비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트랙백  0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중대신문에 기고한 4월 1일자 <타대생각>


국립서울대학교가 이름 앞에 ‘법인’이라는 단어를 달게 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법인 서울대’로 신입생이 입학한 것도 벌써 두 학번 째니 이제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은 잠잠해졌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상황은 정 반대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여전히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두고 크고 작은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2011년의 본부점거 당시보단 조용하지만 오히려 논쟁은 더 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법인화 반대론자들의 가장 큰 우려였던 대학의 ‘시장화’는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기초학문이 고사하는 등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리라는 우려는 현재까진 기우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학 시장화의 결과는 단기간에 드러나기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변화로 서서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은 여전하다.
 
  대신 법인화로 변화한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한 쟁점이 중심으로 부상했다. 법인화 이전에는 최고 의결권이 평의원회에 있었다. 총장에 의한 자의적 운영을 평의원회가 견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1년 법인화 직후 평의원회가 심의기구로 격하되었고, 모든 의결권은 학외 인사 8명, 학내인사 7명으로 구성되는 법인 이사회로 넘어갔다. 이때 이사장은 총장이 겸직하고 있다. 사실상 총장을 견제할 조직과 방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총장직선제도 폐지되고 간선제로 바뀌면서 대학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안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교수들이다. 지난 25일 교수협의회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법인화법 개정안을 본부에 제출했다. 대학이 학교 법인에 포함되는 현 구조 대신 법인과 대학을 분리해 대학의 연구·교육·행정 기능을 대학 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수협은 본부에 검토를 촉구하고 학내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오는 10일에는 평의원회 주최의 법인화 1주년 세미나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공무원 인사규정을 따르고 있어 모호해진 직원의 지위를 개선해달라며 천막농성까지 펼치고 나섰다. 평의원회 직원 비중을 늘리고 대학 운영에 직원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겠다며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일단은 잠잠해 보인다.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된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해서일까. 총학 대신 들어선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법인회계 투명화를 위한 TF팀’을 출범시키기로 했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미미하다. 지난주에는 등록금 관련 강연회도 열었지만 참여자는 20명 남짓했다고 한다. 총학생회 재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상당수의 학생들은 선거가 시작한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단독으로 출마한 선본에게서도 법인화와 관련한 정책은 듣기 어렵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적어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2년 차에 접어든 법인 서울대에서 학생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이문원 대학신문 편집장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트랙백  0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