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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사랑/일상 2017.12.01 18:41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잠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로 로스쿨에서의 마지막 학기시험이 끝났다. “무사히 수료는 하겠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쨌든 나도 무사히 수료는 하게 되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즐거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지치거나 외로운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날들은 잔잔하게 지나갔다. 그런 잔잔한 일상이 모여서 행복을 이루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이제 학교를 떠나도 매일매일을 잔잔하게 잘 살아내야지.

 

그래서 요즘에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본다. 숭고함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일단 학자금부터 갚고’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대단치도 않은 빚이지만, 로펌행의 핑계로는 제격이다. 핑계마저 다 떨어지면 무슨 말로 나의 인생을 변명해야 할까.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변명을 되뇌이는 건 스스로의 결정에 확신이 없어서일까.

 

온 힘을 다해 몰입할 수 있는 일생의 과업을 찾고 싶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나서기엔 절대선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제는 모든 주장에 일장일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양비론의 대가가 되었다. 어느 법학자는 행정행위의 공정력을 부정하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라고 말했다던데. 그러나 당연히 국민의 권리신장처럼 보이는 이론조차 공동체적 관점에서 부당할 수 있다. 순진무구한 선행이 생각치 못한 피해를 끼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지구에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음악, 학문, 저술, 산책, 요가, 뭐 그런 것. 한마디로 놈팡이로 놀고먹고 싶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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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랑/일상 2017.08.20 16:55

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멀리할 필요는 없지. 그건 그냥 솔직한 거니까. 사람이 너무 돈돈 해대면 피곤할 수는 있지. 그래도 돈은 결국 가치잖아. 가치를 원한다는 말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지.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돈을 안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돈에 미친 사람일 테니까.

 

그래도 말이야,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나은 말들이 있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은 사정이 있지. 잘생기고 예쁜 얼굴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하루종일 거울만 보고 있다면 그건 건강하지 않은 거잖아. 어쨌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냥 모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궁금하지도 않았던 일들인데 이제 너무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서 피곤해.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그냥 사는 것 같아서 무서워. 계속 그냥 살아갈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 무섭다는 생각도 점점 뜸해지는 것 같긴 한데. 맥락맹으로 살고 싶어. 너무 예리한 감각으로 관계를 알아채는 내가 좀 징그러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모르는 세계에 가서 바보로 살고 싶어. 마음껏 오독을 일삼으면서.

 

어제는 문득 구글에서 송선배 사진을 받았어. 사실 요 며칠 송선배 생각을 많이 했어. 세상에는 송선배같은 사람이 부족한데, 점점 나같은 사람만 늘어나는 것 같아. 얼마전에는 나의 대학시절을 농담처럼 말했어. 아무리 그냥 할만큼 하면서 사는거라지만, 그래도 할만큼은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모르겠어. 오늘은 비도 오고, 아직 계절은 여름이고, 나는 아무런 뜻도 세우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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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놀이 2017.07.31 13:09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적어도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는 말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그의 부인 조세핀 호퍼도 유망한 미술가였고, 에드워드의 작가적 성공을 위하여 미술을 포기했으며, 그는 부인을 모델로 여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의 그림은 정적인 태도로 현대인의 짙은 멜랑꼴리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중에는 방 안에 혼자 있는 조세핀의 뒷모습을 그린 것도 여럿 있었다.

 

그의 그림 다수는 아마도 뉴욕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미국 미술관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갔던 건 4년 전이다. 화창한 여름 날씨가 좋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겨울의 뉴욕은 날씨가 최악이라는데, 미술관은 다닐만 하려나. 조세핀의 그림도 몇 개가 휘트니 미술관에 있다. 아마도 에드워드에 미친 영향과 관련해서만 가끔 관심을 받을 뿐이겠지.

 

요켠대 포섭의 문제다. 누구는 시각적 쾌감이 좋아서 미술관에 가고, 누구는 작가를 둘러싼 뒷이야기가 좋아서 미술관에 간다. 누구는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을 사랑하고, 또 누구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까지야말로 위대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서로 취향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쨌거나 둘 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니 꽤 잘 맞았다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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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 책.

놀이 2017.07.30 22:48



먼저 산책.

 

때때로 이유 없이 시청 주변을 걷는다. 서울의 밤은 어딘가 음흉한 느낌이 있다. 오늘은 명동에서 저녁으로 회냉면을 먹었다. 여름에는 함흥냉면이, 겨울에는 평양냉면이 땡긴다. 광화문으로 올라오는 길에 하얀 칫솔도 하나 샀다. 구경할 것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어느 일본인 노부부를 보면서, 서대문 쪽에서 에어비앤비를 하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는 서촌을 걸었다. 수성동 계곡에 올라 정자에 누워 한참을 보냈다. 날이 무척 더웠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인왕산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동행의 웃음소리가 나른했다. 이런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 때는 괜찮았다.

 

금요일에는 회나무길도 걸었다. 보석길인지, 옆리단길인지, 장진우길인지, 아무튼 부르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그 길 말이다. 자주 가던 칵테일바는 그새 주인이 바뀌었는지 와인바로 변신을 했다. "서울은 너무 빨리 변해요." 투덜대며 말했지만 동행은 무심했다. 와인을 몇 잔 집어먹다가 그냥 진토닉을 시켰다. 혼자노는양의 라비앙로즈가 생각났다. 으스대며 시켜대던 날이 그리웠다. 하지만 동행은 맥켈란을 온더락으로 마시는 분이었으므로, 여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나는 쓸데없는 정보를 늘어놓다가, 알쓸신잡에 나가라는 말이나 들었다. 매우 아름답고 차분한 분이었다.

 

그리고 산 책.

 

말로만 듣던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책이었다.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문학적 성취를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취재없는 르포문학을 쓰려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새내기 선물용이라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그럴바엔 정희진 선생님 책을 두 권 사는 편이 낫겠다. 진영논리는 적정한 비평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권석천 선생님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썼다는 책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도 샀다. 권선생님 칼럼에는 몇 번 감탄한 적이 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풀어서 판결문 분석을 했다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법조기자를 오래 했다고는 하는데...

 

코치D의 <통증홈트>도 샀다. 이제는 이론보다는 실천을 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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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표절

사랑/일상 2017.07.22 22:12


“그에게는 언제나 대인관계가 순탄했으니, 작은 균열도 생소하여 피로감이 컸다.”

 

지나고 나면 굳이 마음쓸만큼 대단치도 않다. 그렇게 믿고 지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왔다. 비가 참 많이 왔고, 비가 많이 또 계속 왔고, 지겹도록 계속 비가 왔다. 비도 참 많이도 오네. 떨어지는 비를 넋놓고 본 날도 있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와도 되나. 언제까지 비가 오려나. 이제 비가 그만 그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그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며칠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칠월이었다.

 

칠월 들어서 책을 세 권 읽었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아주 좋은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이 섞여있다. <입동>이나 <풍경의 쓸모>는 김애란다운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결혼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침묵의 미래> 같은 작품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할배들은 아직도 이런 소설을 파고 있는 모양이다.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문학계의 수치이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도 읽었다. 여전히 김영하식의 작위적 유머는 껄끄럽다. 그런 말장난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만 재미있다. 등장인물이 입밖으로 꺼내서 말하는 순간 저급한 일본코믹풍이 되어버린다. <최은지와 박인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심보선의 새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글쎄, 나는 이번엔 잘 모르겠다.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점점 취향에서 멀어져간다.

 

하지만 모두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불만이 많은 계절이니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칠월에는 무엇을 읽어도 천국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체념뿐이다. ‘예상표절’이라고 했던가. 몇 번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내가 읽어온 것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기이한 생각을 한다. 선행된 텍스트는 자기복제를 거치면서 비로소 의미가 명료해진다. 비슷한 시간이 반복되기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감각. 그러니 순전히 개인적인 이별이다.

 

슬프고 밉지만 마음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남아서 잠시 울다 갈테니 먼저 가셔도 좋다.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아마도, 그동안 정말 좋았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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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사랑은 보편적이지만, 사랑의 조건은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랑 이야기는 보편적인 서사를 개별적인 사랑의 조건이 드러나도록 잘 세공해야 한다. 우리는 삶에 관한 진실을 깨닫기 위해 허구의 이야기를 본다. 진실로 믿을만큼 훌륭한 거짓말은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은 디테일에 있다.

 

내가 미국인이었더라도 <살인의 추억>을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까? 아닐 것이다. 잘 만든 스릴러이긴 하지만, 인생의 영화라고 할 것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내가 조용구(폭력경찰)라는 인물을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을 나의 한국적 배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조용구라는 인물의 입체성이 좋다. 가끔은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진다.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 인물에 이렇게 빠져버린 건, 그만큼 디테일이 훌륭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봉준호의 <옥자>는 재미있다. 서사가 난폭하게 튀지만 장점이 될 뿐이다. 주제도 시의성이 있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미야자키 하야오 풍의 동화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동시에 장피에르 주네 식의 기묘함이 공존한다. 생각보다 잔인하지만, 관객을 불필요하게 고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옥자>는 결코 명작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넷플릭스는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 생각도 없었겠지만. <옥자>는 현실과 환상에 반쯤 걸쳐있다. 현실의 서울과 뉴욕이 익숙한 공간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낯선 모험이 펼쳐지는 가상의 공간일 뿐이다. 의미있게 등장하는 사회적 디테일들, 예컨대 4대보험, 사설경비업체, 유별난 경영자 자매같은 블랙유머들은 확장되는 일 없이 판타지 속에서 일회적으로 소비된다. 이는 <살인의추억>이나 <괴물>같은 봉감독의 위대한 성취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아예 차라리 환상 속으로 뛰어들어서 더 그럴듯한 거짓말의 세계를 창조했으면 어땠을까? 하긴, 그러려니 이미 <설국열차>라는 실패 사례가 있다.

 

어쨌거나 모자이크처럼 시골과 도시, 서울과 뉴욕, 현실과 환상, 블랙유머와 교훈드라마, 모험액션과 잔혹드라마를 거칠게 이어붙인 <옥자>는 서로 다른 분위기의 공존이라는 위태로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기는 하다. 넷플릭스와 극장개봉으로 태생부터 하이브리드였으니,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옥자를 보면 넷플릭스가 염두에 둔 주 고객층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미국 영화관객은 동양인 감독이 만든 동물권 이야기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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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진로를 약간 트는 선택을 했다. 나름 의외의 선택일까. 이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로컬한 업무를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반도 탈출의 길은 더욱 요원하게 되었다. 모순 덩어리의 인간이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었다가, 스스로의 속물성을 경멸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는 핑계도 바닥나고 있다.

 

그럭저럭 평온한 삶이었는데, 요즘 다시 들뜨고 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기뻤다가 우울했다가 한다. 집착했다가 체념했다가 한다. 꿈꾸다가 꿈깼다가 한다. 생각치도 않게 춤을 추러 가게 되었을 때엔 정말 즐거웠다. 동행이 예뻤던 것 아니냐고 한다면 반만 사실이다. 우리는 정말 각자의 춤을 열심히 추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밖에서 음악에 춤출 때 제일 들뜬다. 집에서 이렇게 글쓸 때 가장 침울하다. 하지만 글쓰는 걸 좋아한다고, 시끄러운 술집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는 하루 종일 지난 술자리의 장면들을 반추하게 된다. 내가 했던 말, 내가 들었던 말, 나와 상관 없이 나왔던 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도 선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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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 가요. 편한 미소를 지어주세요.


    오랜만에 꿈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자주 같이 갔던 어느 카페였다. 그 사람은 나를 발견하고는 건너편 두 테이블쯤 앞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놀란 듯 나른한 제스쳐였다. 가까이 앉으라는 말 같기도 하고, 옆에 앉지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 사람의 지시에 따랐다. 순한 양이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었다. 예컨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든가, 내가 보았던 경멸의 눈 같은 그런 것.

 

    일어나서 물을 많이 마셨다. 요즘엔 잠에서 깨면 자주 목이 마르다. 무리해서 늦잠을 잔 날에는 도리어 몸이 무거워 일어나기 어렵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간만에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즐겁게도 떠들었다. 안그래도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신 참이다. 전날 밤을 술과 추억팔이로 보냈으니, 그 사람이 떠오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간만에 봐도 아름답나요?

 

    그 사람의 입이 움직였지만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옆자리로 가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말도 전해지지 않은 편이 나았다. 그 때의 나라면 큰 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아니면 무턱대고 옆자리로 옮겼을 것이다. 뭐, 누가 보면 어때. 그런 말을 하며 무릎 위로 끌어앉히던 시절이다.

 

    얼마 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무심하게 기대어 책을 읽는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이 연극적으로 멋졌다. 나는 왜 그렇게 해야 했을까. 언제나,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른 근거도 없이 우리의 시간이 다시 올 것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는 잃어버린 낮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가 나른하거나 무심하게 서로 기대어 비오는 발코니를 바라보고 있었을, 어느 일요일 낮의 서늘한 거실바닥에 대해서 생각한다.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제나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날의 오래된 기억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끔 내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은 건넬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게 나을 답은 듣지 않는 지혜를 배웠다. 그래도 종종 우리가 걷던 그 길을 산책하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좋아했던 서울의 작은 공원들. 내가 정말 산책과 공원을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갈 곳을 몰라 시선이 없는 벤치에 기대어 앉아있고 싶었던 것 뿐인지, 이제는 더욱이 알 길이 없다. 나는 몇년 새 산책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되었고, 혼자서는 좀처럼 벤치에 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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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법은 무엇을 지키고자 하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교양으로 읽는 법의 세계

이 책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펴내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 하나로 법을 소개한다. 원제가 말해주듯 길지 않은 분량 안에 법의 생성부터 법이 다루는 영역, 법철학과 사법제도, 법이 직면한 현대의 과제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어느 때보다 법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때, 교양으로서 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알맞은 ‘법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서는 법을 고정된 실체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의 한복판에 두고 그 배경과 법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이 무엇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왜 역사마다 사회마다 법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법의 한계란 과연 무엇인지 다채롭게 그려낸다.

교보문고 http://fa.do/7yn0
알라딘 http://aladin.kr/p/PJfyv
예스24 http://fa.do/8Xn
인터파크도서 http://fa.do/Vj8z

 

저자 : 레이먼드 웍스 (Raymond Wacks) 

홍콩 대학교 명예교수로, 동 대학 법과대학장을 역임했다. 법철학, 인권, 프라이버시 보호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저술가이기도 하다. 저서로 『프라이버시와 미디어의 자유Privacy and Media Freedom』 『법학의 이해: 법철학 입문Understanding Jurisprudence: An Introduction to Legal Theory』 『법철학Philosophy of Law: A Very Short Introduction』 등이 있다.

 

역자 : 이문원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와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주한미군방송국(AFNK) 뉴스부에서 영어방송을 제작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미리보기

p.23

영미법 국가인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안티과에서 지나가는 법학도 아무나 붙잡고 무엇을 공부중인지 물어보자. 십중팔구는 ‘판례를 읽는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나 오스트리아, 알제리의 법학도에게 똑같이 물어본다면 민법전과 형법전을 집요하게 독파중이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p.33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분개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런 문제는 법이 해결해줘야 할 것 아냐!”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다. 그리고 만약 법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하면 우리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반사회적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기란 겉보기만큼 간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p.107

사회가 채택한 법과 도덕적 실천(또는 ‘실천 도덕’)의 관계는 일부가 겹치는 두 개의 원으로 그릴 수 있다. 두 원이 겹치는 부분에서 법과 도덕적·윤리적 가치는 일치한다(예컨대 살인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모든 사회에서 금지된다). 그러나 교집합 밖 한편에 위법하지만 꼭 비도덕적이지는 않은 행위(예컨대 주차 위반)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비도덕적이지만 반드시 위법하지는 않은 행위(예컨대 간통)가 있다. 교집합이 넓을수록 법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준수되기 쉽다.

  

pp.224-225

법의 중요성을 과장하기는 쉽다. 특히 법률가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우리에게 법이야말로 인간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힘임을 가르친다. 이는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다. (…)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문명화된 가치와 정의가 승리하고 존속하려면,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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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극장에서 혼자 봤다.

 

홍상수 영화가 맨날 똑같지 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또 재밌게 봤다. 홍상수 근작 중에는 가장 좋은 것 같다. 특히 김민희의 연기가 아주아주 좋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쿡쿡 찌른다. <아가씨>에서도 그랬지만, 김민희는 히스테릭하게 소리지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기이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술냄새 진동하는 단체씬은 여느때나 다름없고, 홍상수 특유의 뜬금포 줌인 기법도 보는 맛이 쏠쏠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드물게도 여-여 케미가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전작들 중에 이런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여러 뮤즈가 주인공으로 나왔지만, 대부분 홍상수분신 또는 미니홍상수 또는 홍상수워너비 사이를 뱅뱅 맴돌 뿐이었다. 달리 말하면, 홍상수의 전작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홍상수였다. 그러나 이번 김민희는 진짜 주인공이다. 그리고 김민희-서영화, 김민희-송선미의 케미는 나머지 남배우들과의 관계보다 훨씬 돋보인다. 김민희-서영화는 이상하게 중독적이면서도 편안하고, 김민희-송선미는 묘하게 긴장되면서도 자연스럽다. 비로소 홍상수의 세계가 자의식으로부터 파트너에게로 확장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남자들도 느낌이 조금 다르다.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이 후기작으로 갈수록 점점 더 ‘인간’이 된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처음 권해효가 등장했을 때의 약간의 긴장감을 제외하면, 모두 찌질함 없는 젠틀맨이 되었다. 홍상수맨에 깊은 애착을 갖고 열심히 경멸했던 나로써는 아쉬울 만도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사랑은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는 것일까.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얄팍한 궁예질로 만족하기로 한다.

 

다만, 홍상수의 변명은 사족이다. (물론 홍상수의 변명이 아니라 김민희의 동요하는 내면이라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으나) 불륜이 불륜이지 뭐. 대단한 로맨스일 일도 악담을 퍼부을 일도 아니다. 굳이 찾아와 이 영화를 본 관객에게 설교할 것도 아닐 뿐더러, 변명할 일이 아니라는 말로 정작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쿨한 척 하는 예술가의 쫄보근성을 엿본 것 같아서 다소 초라한 느낌이었다. 그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예컨대 홀로 화면을 채우는 것만으로 관객을 외롭게 만드는 김민희의 공허하면서도 매력적인 눈매같은 것 말이다.

 

홍상수 영화를 정색하고 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상을 여럿 받았어도 마찬가지. 가끔 홍상수를 영화의 신처럼 추앙하는 사람을 보면 사실 나는 안목을 의심하게 된다. 그의 영화는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경이롭다. 그러나 어느 모로 봐도 자의식 과잉의 통속적 예술가일 뿐이다. 두 시간 피식대다가 마음을 울리는 한두 씬 건지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해변에 홀로 누운 씬은 너무 외롭고 아름다워서 충격받을 정도였으나, 복면맨의 등장이나 큰절씬은 좀 투머치 유치뽕이었다.) 나는 홍상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팬이지만, 그 팬심은 레드벨벳을 향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영화는 영화로 즐길 수 있도록 홍상수맨은 이제 그만 나타났으면 좋겠다. (불륜이라는 단어만 보면 날뛰는 성난 군중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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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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