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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일/글쓰기 2013.06.03 23:08

좁은 문. 대학신문 5월 27일자 맥박.


『좁은 문』의 주인공 알리사는 사촌동생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혼자 쓸쓸하게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알리사를 강하게 지배한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는 그가 지상의 사랑을 억누르고 ‘좁은 문’을 거쳐 신에게 의탁하는 길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유년 시절 알리사와 제롬이 함께 들었던 주일 설교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불면과 고뇌의 나날을 보내게 했다.

지금도 매일 밤 수많은 청춘은 좁은 문을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종교적 구원의 문이 아니라 정규직 취업의 문이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가는 길은 갈수록 험난해진다. 청년들은 서로를 밀치고 제끼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애쓴다. 그 옆에는 매우 크고 한산한 문이 비정규직이란 문패를 달고 섰지만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월급(명목임금)은 정규직이 253만원, 비정규직이 141만원이다. 격차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란다. 전체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증가했는데,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 가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정규직은 상승하고 비정규직은 하락했다. 게다가 잇단 산재 사망(대우조선해양), 계약 해지 후 자살(현대자동차), 실적 압박으로 투신(롯데백화점)과 같은 우울한 소식을 듣고 있자니, 정규직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비유는 문학적 수사에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알리사가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좁은 문에 다가가려 했다면, 오늘날 청춘은 ‘세속적 금욕주의’라 할 만한 태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견결하게 다듬는다.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점 관리에 힘쓰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이제 여가와 휴식, 우정과 사랑마저 세속적 금욕주의로 승화한다. 동아리 활동은 기왕이면 봉사활동이나 영어토론이 좋다. 프레젠테이션 동아리, ‘금융’이나 ‘경제’가 이름에 붙은 동아리라면 더 좋다.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듣기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미드’를 본다. 인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친구를 사귀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뺏기지는 않는다. 집값과 양육비 걱정에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소문에 따르면 한번 비정규직 트랙에 올라타고 나면 동일 노동을 하고도 2/3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4대 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되고, 또 좀처럼 비정규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씁쓸해하는 한편 또 오늘 낭비한 시간이 얼마인지 헤아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좁다.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을 꿈꿨던 수많은 이들은 인턴, 계약직, 파견직, 기간제, 하청, 특수고용 등 이름도 다양한 비정규직의 넓은 문으로 무기력하게 떠밀려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푸어’해지는 각종 신조어들이 낙인처럼 찍힌다. 문을 뚫고 마침내 성취한 소수의 성공담은 낙오자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상처가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오늘도 이 말을 되뇌며 버스에 지친 몸을 실었던 당신. 세속적 금욕주의로 삶을 벼리며 좁은 문에 끼워 넣으려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품었는지. 좁은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치며 어떤 멍이 들었는지. 들춰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를 상처들을 온몸 깊은 곳에 숨겨뒀는지.

 『좁은 문』으로 앙드레 지드는 사랑을 가로막는 종교적 윤리의 허무함을 비판해 기독교적 유럽 사회에 격론을 일으켰다. 숭고한 삶과 세속적 삶의 엄격한 구분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제약한 전통적 이분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 청춘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좁은 문은 어떤가. 좁은 문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떤 반기를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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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상식을 놓칠 수 없어 신문을 펼치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하...좁은 문 비유까지 ㅜㅜㅜ
    역시 대단하십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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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신문 2013년 5월 13일자 기고


<54
년동안의 필독>

  여기
54년 전통의 중견 언론이 있다. 격랑 속 현대사의 산증인이 되어 온 대학가 대표 언론, 한대신문이다. 1959년 창간호를 발행했다니 1965년 창간의 중앙일보, 1988년 창간의 한겨레보다도 역사가 깊다. 1386호에 이르는 발행기간 동안 한양대의 빛과 그림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성장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한양대 구성원간의 소통과 여론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이들이다. 이들 덕분에 한양대라는 공동체는 역사를 갖게 됐다.


  신문은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 왔다
.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에 살게 된다.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온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보의 기사를 통해 대학의 구성원들은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해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고, 이러한 기억은 정체성과 자부심, 애착의 원천이 됐다. 54년동안의 필독으로 한대신문이 얼마나 많은 신입생들을 '한양인'으로 길러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대신문이 사건사고만 단순보도해 온 것은 아니다
. 한양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쟁을 선도해 온 것은 언제나 한대신문이었다. 학생, 교수, 직원을 아우르는 한양대의 언론매체는 한대신문 뿐이다. 학생의 입장, 교수의 입장, 혹은 학생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포괄하며 논쟁 가능한 한양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월요일, 한대신문을 펼쳐들고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하고, 논쟁하도록 만드는 기사를 쓰도록 한대신문의 기자들은 밤낮으로 분투해왔다. 대학이 단순히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대학공동체로서 당면한 문제들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도록 논의의 장을 마련해 온 것이다.


  요즘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말도 많다. 그럴지도 모른다. 월요일이면 학생들이 습관처럼 학보를 열독하고, 모교의 학보를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주던 대학가의 낭만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대신문은 한양대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외부 활동과 스펙 쌓기, 다원화된 관심사로 대학에 대한 애착감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대학의 문제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학보 외에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을까.


  54
돌을 맞은 한대신문이 100년동안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한대신문 기자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다. 한양인들의 삶을 파고드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읽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만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대신문은 한양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려는 이가 없으면 쓰이어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없다면, 대학언론이 위기를 맞는 것도 당연할 터이니 말이다.


  한대신문의
54, 한양대의 74돌을 축하한다. 100, 200돌이 지나도 한대신문은 빛나는 예지와 힘찬 붓줄기로 한양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독자인 당신의 관심만 있다면.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느라 글의 자기 복제 혐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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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자 대학신문 맥박.


“우리는 첫째 편협하지 않음으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으며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여 공평하게 인민으로 말할 터인데, 서울 백성만 위할 것이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代言)하여 주려 한다.”

1896년 4월 7일, 조선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그 독자를 ‘조선 인민 전체’로 호명(呼名)했다. 그저 선언에 그친 공허한 말이 아니었다. 「독립신문」은 양반이나 학문 식자층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국문체를 최초로 도입했고 한글 단어의 사용도 신중히 고려했다.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투고할 수 있도록 칼럼란도 개방했다. 인천, 원산, 부산, 평양에 지사를 설립해 실제로 조선 전국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계급과 지역, 연령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려 정치공동체의 인적 구성원리를 근대적으로 이해한 실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독립신문」이 호명한 ‘조선 인민’ 관념은 빠르게 대중화됐고, 객체로만 존재하던 인민은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주체로 서게 됐다.

신문은 처음 만들어진 이래 언제 어디서나 그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대적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근대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집단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념을 부여해온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이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개인들은 그날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함께 접하면서 비로소 동일한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역, 기업, 정당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각각의 신문은 독자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맡고 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는 오늘날에조차 신문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학보(學報)를 발행하는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 때문이다. 대학은 학생, 교수, 직원의 산술적 합 이상의 유기체이며, 각각의 개별적 이익으로 분할되지 않는 공통의 역할과 의무를 갖고 있다. 구성원 간 갈등과 대립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쟁점을 합리적으로 짚고 ‘공동체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학보의 역할이다. 학보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참여해 대학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서 대학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래서 학보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학의 공동체성을 긍정하는 선언이다. 만약 대학공동체라는 관념이 다만 허상일 뿐이고 대학을 고등교육이라는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학보는 쓸데없는 것이 될 것이다. 졸업장이든 연구비든, 각자 얻으려 하는 것을 얻고 떠나면 그만인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선을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체라고 믿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보편화된 시대, 오늘도 대학 내 소식을 전하러 뛰어다니고 있는 학보사 기자들은 어쩌면 지독한 반(反)신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펴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독립신문」 창간일이자 ‘신문의 날’이었던 어제, 「독립신문」 창간사를 찾아 읽으며 『대학신문』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아직도 내걸고 있는 『대학신문』이 오늘날 보도해야 할 관악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학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 답은 이미 1896년에 준비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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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신문에 기고한 4월 1일자 <타대생각>


국립서울대학교가 이름 앞에 ‘법인’이라는 단어를 달게 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법인 서울대’로 신입생이 입학한 것도 벌써 두 학번 째니 이제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은 잠잠해졌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상황은 정 반대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여전히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두고 크고 작은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2011년의 본부점거 당시보단 조용하지만 오히려 논쟁은 더 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법인화 반대론자들의 가장 큰 우려였던 대학의 ‘시장화’는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기초학문이 고사하는 등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리라는 우려는 현재까진 기우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학 시장화의 결과는 단기간에 드러나기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변화로 서서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은 여전하다.
 
  대신 법인화로 변화한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한 쟁점이 중심으로 부상했다. 법인화 이전에는 최고 의결권이 평의원회에 있었다. 총장에 의한 자의적 운영을 평의원회가 견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1년 법인화 직후 평의원회가 심의기구로 격하되었고, 모든 의결권은 학외 인사 8명, 학내인사 7명으로 구성되는 법인 이사회로 넘어갔다. 이때 이사장은 총장이 겸직하고 있다. 사실상 총장을 견제할 조직과 방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총장직선제도 폐지되고 간선제로 바뀌면서 대학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안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교수들이다. 지난 25일 교수협의회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법인화법 개정안을 본부에 제출했다. 대학이 학교 법인에 포함되는 현 구조 대신 법인과 대학을 분리해 대학의 연구·교육·행정 기능을 대학 구성원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수협은 본부에 검토를 촉구하고 학내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오는 10일에는 평의원회 주최의 법인화 1주년 세미나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공무원 인사규정을 따르고 있어 모호해진 직원의 지위를 개선해달라며 천막농성까지 펼치고 나섰다. 평의원회 직원 비중을 늘리고 대학 운영에 직원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겠다며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일단은 잠잠해 보인다.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된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해서일까. 총학 대신 들어선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법인회계 투명화를 위한 TF팀’을 출범시키기로 했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미미하다. 지난주에는 등록금 관련 강연회도 열었지만 참여자는 20명 남짓했다고 한다. 총학생회 재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상당수의 학생들은 선거가 시작한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단독으로 출마한 선본에게서도 법인화와 관련한 정책은 듣기 어렵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적어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2년 차에 접어든 법인 서울대에서 학생은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이문원 대학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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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자료집용 글

연대 2011.03.13 23:32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펼치지 않는 내 일기장에는 신환회 첫 날의 감상이 이렇게 시작되어 있다.

"휘황한 달빛 아래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녹두를 향해 걸었다. 고향은 어디에요, 학교는 어디 나왔나요, 떠듬떠듬 어색하게 묻는 목소리 사이로 서로를 향한 호기심과 설렘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구나 하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바로 선배들과 인사하고 동기들과 번호를 교환하던 바로 그 순간에!" -2007. 2. 8.

미지의 생활을 앞둔 야릇한 흥분. '새내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 찾아오는 그 청춘의 감정에는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막막하게 흔들리면서도 기대감에 설레는 기분. 모든 스무 살이 느끼고 있을 그 감정에 나는 오랜만에 옛 자료집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같은 문장을 읽어도 감상은 전혀 새롭다. 의뭉스런 선배들이 꽁꽁 숨겨둔 행간의 의미는 다섯 번 쯤 다시 읽어야 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양이다.

앗 그런데 선배라니. 믿기 어렵겠지만 5학년인 나에게도 선배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있다. 그것도 06, 05학번뿐이 아니라 지금은 삼십대에 접어든 01, 00학번 같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 11학번이 조금 어색하고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보듯 내가 낯설게 쳐다봤을 그런 선배들. 우연히 모반에 들어왔다는 점 이외에 어떤 그럴싸한 인연도 없는 나를 뻔뻔하고 오지랖 넓게도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던 그런 선배들. 서로 책임지지 않는 관계가 '쿨함'으로 찬미되는 이 시대에, 내 인생에 감히 개입하고 훈육(!)할 용기를 내어준 귀찮은 사람들 말이다.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랬다. "고학번 선배"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도 닥치고 나서야 나는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어떤 선배의 말들이 불현듯 이해되곤 한다.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대화의 뒤늦은 방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가, 반가웠다가, 다시금 서글퍼지는 것이다.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넌 요즘 하는 고민이 뭐니?" 그/녀들의 악취미적 질문이 물어다 준 소통과 미혹의 감격을 나는 흔히 왜곡하거나 폄훼하곤 했다. 아둔하고 자존감만 높았던 나는, 나만 모르는 얼마나 많은 수치스런 행위와 제멋대로의 오해를 반복했던 것일까.

내 대학생활의 전부를 쏟아 부은 모반과의 몇 년으로 나는 몹시도 많이 변했다. 모반에서 지지고 볶고 웃고 다투는 동안 나는 조금 울었고 종종 벅찼으며 다행히도 자주 자랐다. 어떤 만남은 이처럼 뜻밖의 오해나 우발적 마주침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버린 모반은 나를 통째로 뒤흔들었고 인생의 방향을 다소간 바꿔버렸다. 이제는 나 자신의 의지로, 어.쩌.다.보.니 모반에 들어와버린 새내기들을 격하게 아껴주려고 한다. 이들의 반짝이는 청춘이 한 번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야만의 시대에 억눌려 살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바로 나의 사랑스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해도 좋을까? 하물며 나 자신도 이토록 진동하며 갈피를 못 잡는 주제에?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확신에 차서 달려가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화두를 던졌던 선배들도 지금의 나만큼이나 한 아름의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들리던 그/녀들의 질문은 실은 더 거대한 의구심의 한 표현이었고, 나에게 건넨 말들은 실은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으며, 또한 그것은 느낌표로 위장된 은밀한 물음표였던 것이다. 뒤늦게 깨닫게 된 이 작은 비밀은 나에게 적잖이 위안이 된다. 바로 나 자신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의 의의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민하는 사람으로써 하는 질문이 당신의 마음에 일으킬 잔잔한 울림을 기대하면서

사랑스런 풍경이 그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색하고 촌스러운 표정으로 바위처럼을 추는 몸짓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해방터"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누군가는 오늘도 보편성을 상상하며, 또 서로 연대(Solidarity)하고 교통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도 모르게 찾아오던 일상의 불안감을 고맙게도 덜어주던 손길을 누군가는 계속 건넸으면 좋겠다. 내면화된 경쟁의 원리를 넘어 "함께 살자" 뜨겁게 외치던 함성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도 울려퍼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너무도 변했는지 모른다. 철지난 유행가처럼 어색하게 들릴 내 편지를 누가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게 될까. 잔치가 끝나도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운다지만, 우리가 부르다 만 노래는 홀로 마저 고쳐 부르기엔 너무 서글픈 멜로디가 아닌가.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눈이 쌓였다 녹고, 나는 여전히 막막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시 내년 이맘때 우리는 또 어딘가에서 겨울눈을 밟으며 새맞이의 야릇한 흥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나도, 당신도 모두 조금씩은 달라져 있겠지. 물론 어떤 이와는 같은 꿈을 그리며 달리기도, 또 어떤 이와는 만나지도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의 짧은 만남이란 실은 별 것 아니었노라고 어렴풋이 회상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웃고 싸우고 사랑한다면, 오늘의 모든 말이 허망한 것이었다고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일단은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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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iculum Vitae

About 2010.07.28 15:33

AREAS OF INTEREST

Litigation 

 

EDUCATION

Korea University Law School                                           February 2018
– Juris Doctor

Seoul National University                                                 February 2014
– B.A. in Western History
– B.A. in Political Science & International Relations

 

WORK EXPERIENCE

Attorney at Law, Lee&Ko, Mar. 2018 - Current
Translation, Very Short Introduction Series "Law", Oxford University Press(번역서『법』, 교유서가, 2017) 
Tutor,
Contract Law, Korea University, Spring 2016
Legal Intern,
Yulchon LLC, Seoul, Summer 2015, Winter 2016
President, Seoul University Press Association(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Seoul, Jan. 2013 – Aug. 2013
Editor-in-chief, SNUNews((
『대학신문』), Seoul National University, Dec. 2012 – Jun. 2012
Reporter, SNUNews(
『대학신문』), Seoul National University, Jul. 2011 – Dec. 2012
Broadcaster, American Forces Network Korea, Seoul, Jan. 2010 – Aug. 2011
Translator, Film Festival for Women’s Rights, Seoul, Oct. 2010

 

AWARDS

University Journalist of the Year, SISA IN(시사인), 5. Feb. 2013
Army Achievement Medal, US Army, 12. Jan. 2011
Army Commendation Medal, US Army, 7. Oct. 2011

 

VOLUNTEERING AND OTHERS

Participant, United Nations Alliance of Civilizations Summer Camp, New York, Aug. 2014
Volunteer, UN World Food Programme, Seoul office, May – Aug 2013
Volunteer, SNU Volunteer Corps(
서울대학교 공식 스누봉사단), Thanh Oai, Vietnam, Summer 2011

 

MISCELLANEOUS

Citizenship: Republic of Korea
Language: Korean (native), English (profi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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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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