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사건’ 침묵하는 여성가족부?
마침내 불만이 폭발했다. 꼴페미, 된장녀, E대생, 보슬아치로 이어져 온 마녀사냥이 인터넷을 넘어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자연사건’에 침묵하는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를 폐지하라며1인시위에 나선 사람이 메스컴을 타는가 하면, 여성가족부 폐지 운동본부가 탄생하고, 여성부 폐지 아고라청원 등이 네티즌의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생활을 페미니즘과 함께 해 온 나라면 이같은 비난에 안타까움을 느낄 만도 하건만, 사실은 꽤나 담담하다. 오히려 여성부 비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측은함마저 느낀다. 그것은 이를테면 사장님앞에서 쩔쩔매다가 외국인 동료에게 화풀이하는 노동자를 볼 때 드는 생각과 비슷하고, 김수영 님의‘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그 분노와 흥분은 이해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엉뚱한 대상을 욕하고 있다.
여성부 폐지? 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여성부라면 오히려 폐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페미니스트는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통상적인 근거와는 정 반대에 있다.
공무원 페미니즘?
먼저 여성부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가자. “이중잣대의 페미니스트”, “남자 골수 빨아먹는 된장녀”, “쓸데없는 일만 하는 여성부”, 그 외의 여성에 대한 다양한 공격이 한 덩어리처럼 얽혀있어서 마치여성부가 그 모든 것의 대표자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각각의 실체는 교육부와 전교조, 초등학교선생님만큼 다르다. (오히려 그 이상일 수 있다.)
여성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공무원이 근무하는 국가 기관이라는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여성부의 대부분의 구성원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때때로 여성도 아니며, 그저 로테이션에 따라 업무가 배정된 ‘공무원’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부의 김교식 차관은 20년동안 재정경제부에 근무해 온 고위공무원일 뿐이다. 페미니스트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여성문제에 대해서 접해본 일도 없고, 심지어 여성도 아닌,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여성자원’을 국가적차원에서 잘 이용할지 골똘히 궁리하는 경제관료일 따름인 것이다.
물론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여성운동단체와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담론과 친숙할 수는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여성 행시합격자들이 선호하는 부처중의 하나기 때문에 타 부처에비해서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여성부의 서울 잔류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있는 근무지로 부상했다는 말도 있다.) 공무원 중에 페미니스트가 많을 것 같은가? ‘꼴페미’라는말을 들을 정도의 활동가들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지 않는다. 게다가 90년대이래로 영페미니스트들은 ‘국가기구’ 자체에 비판적이고, 심지어 주류 여성운동을 ‘개량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젊은 페미니스트중에 여성부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다.
공무원 페미니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공무원 마르크스주의나 공무원 아나키즘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국가기구가 공식적으로 페미니즘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회혁명이 임박한 시기에거나, 이미 페미니즘이 아닐 것이다.
(여성부에 대한 저속한 비난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http://ko.wikipedia.org/wiki/%EC%97%AC%EC%84%B1%EA%B0%80%EC%A1%B1%EB%B6%80#.EC.97.AC.EC.84.B1.EB.B6.80_.EA.B4.80.EB.A0.A8_.EA.B4.B4.EB.8B.B4.EA.B3.BC_.EC.A7.84.EC.8B.A4여기를 참조)
여성 “가족” 부
여성부를 비난하는 반페미니스트들의 분노가 측은한 더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여성부가 하는 활동의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출발한 여성부는 2004-2005년결정적인 변화를 겪는데, 남녀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증진시키던 종래의 업무를 국가인권위원회로이관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육업무를 받으면서 여성 “가족” 부로 개편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여성부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91%(예산 기준)는 영유아 보육과 관련한 영역이다. 여성부의 업무 중 페미니즘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만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가정폭력,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여성자원 활용과 관련한 국가정책 자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정도인데, 아마도 국가가 가정폭력을 방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초 중의 마초에도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페미니스트까진 아니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 한 꼭지에라도 공감했다면 여성부에 대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여성을 가정과 보육의 영역에 가두려는 가부장적 편견으로부터 저항해 온것이 페미니즘 200년의 역사라면, 여성가족부는 “여성의 위치는 가정이며, 여성의 업무는 보육이다”라고 이름에서부터 강변하고 있지 않은가! 성보수주의적인 편견과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해소하기는 커녕 더욱 공고화하고 권유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성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에 맞서 여성부를 옹호하려는 것도, 여성부의 실체를 드러내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성부는 그저 잡다한 업무를 떠맡은 무수히 많은 국가 기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그런데 한강다리 위에서 쌀포대를 뜯는 농민운동의 전투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농림부를 비난하는가? 혹은 역으로 교육부장관의 자질 부족을 들어 전교조를 욕하는가? 심지어 재정경제부의 정책 실패를 들어 기업가 전체를 욕하거나 경제주체 전체를 욕하는가? 나는 여성부가 여성주의를 대표하고, 심지어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이 미묘한 현상으로부터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좌표를 설명하는 징후적 독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여성, 여성운동, 여성주의
한국의 반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모든 것은 다 동일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명의 남성국회의원이 있다고 하자. 그 안에는 성격이 급한 사람도, 조폭 출신유단자도, 광선검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때 각각의 남성의 성향은 각자의 개성으로 이해된다. 그러다 어느 날 1명의 여성국회의원이 생겼다고 하자. 그 여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이제 모든 여성의특성을 대표한다. 우연히 그 여성이 성격이 급하면 모든 여성은 성격이 급한 것으로, 또 어쩌다 그 여성이 깔끔하면 모든 여성은 깔끔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수자는 각자 개별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소수자는 소수자로써의 정체성만이 강조된다. 소수자이론의 기본 중 하나이다.
여성주의는 손쉽게 단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라는 대표적인 집단을 생각해 보자. 이 셋 중의 어떤 단체가 “여성의 사회참여 50% 보장”을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고 하자. 이 내용을 접한 신문의 독자는 여성주의자들이 또 뭐 했구나, 라고 생각하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한 활동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어차피 여성운동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안타깝게도 아니다. 한국 여성운동의 두 축이랄 수 있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과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만큼의 공통점도 없다. 추구하는 여성의 상, 성역할에 대한 이해, 심지어 여성해방이라는 관념 자체가 판이한 것이다. 심지어 3월 8일 여성의 날에도 몇 년 째 따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http://www.womennews.co.kr/news/48798 참조)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이 모두 여성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운동을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노동운동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것(구사대)과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이 여성운동이나 여성주의와 친화적인것도 아니다. 소위 “이기적인 여성”을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인상을 바란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 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참고로 개별적 노동자의욕망과 노동운동의 이념이 “집단성”에서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적 여성의 신분상승을 위한 협상전략은 “집단적 운동”의 관점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페미니즘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반여성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혹은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공통의 이해를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 비록 때때로 이견을 보이는 척 하지만, 진정 여성의 이익이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대동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리라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매매특별법이 도입될 때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이 가한 비난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 수준을 초과하는 발본적인 것이다. 어떤 여성운동 진영의 활동은 어떤 페미니스트들의 보기에는 “가부장적으로 바람직한 어머니”를 길러내는 활동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여성이 페미니스트인 것도 아니고, 모든 여성 관련 의제가페미니즘의 영역인 것도 아닌데, 군가산점부활에 반대하는 여성은 반드시 “꼴페미”로 매장당하고 만다.
내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좀 이상하다. 노동의 노자만 들어가도 빨갱이라고 비난당하듯 비주류의 숙명이라고 수긍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하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해서 소수자이론이 이다지도 적절히 적용되는 현상 자체가 이상하다. 너무나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그저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성과 여성운동, 여성주의와 여성부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이 이다지도 유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페미니즘의 의의를 보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절반이라는 여성의 의제가 이토록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통사람들이 페미니즘에대해 적확한 비판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진짜 여성해방의 날이 아닐까.
WRITTEN BY
- moonwon
moonw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