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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모리스> 채드 하티건 / Morris from America by Chad Hartigan

전주국제영화제JIFF 야외상영작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온 모리스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주변인이다. 그리고 자기가 주변인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모리스에게 힙합이 EDM보다 쿨하고, 풋볼이 사커보다 재밌으며, 망할 독일어도 배우고 싶지 않다. 외국인으로서의 어려움과 사춘기적 혼란이 겹쳐 모리스는 외로운 상태다.

  그러나 힙합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친구를 만들어간다는 뻔한 이야기로 달려가지 않는다. 힙합은 그저 지나가는 작은 에피소드일 뿐, 모리스에게 허들을 넘는 그 결정적 순간은 없다. 연적이 만들어 준 무대에서의 적당히 덜 허접한 프리스타일도 그저 소소한 경험일 뿐이다. 모리스의 아버지도, 모리스도, 모리스의 독일어 선생님도, 극적인 성취 없이 그럭저럭 고민하며 살아간다.

  오히려 관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카트린이다. 위태위태한 사춘기를 살아가는 카트린은 독일적인 무료함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러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음을 누구와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범상한 시각밖에 갖지 못한 나 같은 관객에게 카트린의 어른 흉내는 위험해 보인다. 청춘은 화려한 타인의 삶밖에 노래할 줄 모른다. 허망한 욕망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이야기다. 봄바람 부는 선선한 저녁에 야외에 앉아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던 것일까. 모리스의 성장담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다보니 신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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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셸 랑 Rachel Lang, 전주국제영화제JIFF


안나는 보잘 것 없는 청춘이다. 부푼 꿈을 안고 고향 스트라스부르를 떠나 독일에 왔건만 하찮은 일 밖에 맡지 못하고 욕이나 먹고 있다. 하루를 망쳐버리고 나니 수중에는 렌트업체에 반납해야 할 슈퍼카 한대와 파티용 드레스. 안나는 그대로 할머니 댁을 향한다. 할머니만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리라 생각한 것일까. 편찮은 할머니가 목욕 중에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안나는 욕실을 뜯어고치기로 결심한다.

안나는 21세기를 표류하는 프랑스 여성이다. 짧은 숏컷에 톰보이 스타일을 고집하며 바보 같은 성적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다. 여성에게 사회는 평등해졌고 성적으로 개방되었으며 누구나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 자기가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사회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니, 안나의 보잘 것 없는 삶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결국 안나에게는 허드렛일밖에 주어지지 않고, 성적 개방은 무책임한 관계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이 되었지만,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안나는 배관공 대신 큰 망치를 집어들 정도로 페미니즘의 이상을 좇지만, 그렇다고 딱히 안나가 화를 내거나 돌을 던질 대상도 없다.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저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담담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지키지 못한 약속들. 잘못된 선택들과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삶.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는 구세대의 시선. 슈퍼카와 찍은 멋진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며 아우토반을 신나게 달리고 싶지만, 아직 그런 삶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삶이 비정치적일 수 있을까.

안나는 할머니에게 바덴바덴으로 휴양을 가자고 말한다. 안나에게도 얼마든지 할머니를 바덴바덴으로 모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청춘에게,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는 위로는 별 의미가 없다. 설령 안나처럼 표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아마르처럼 모든 여유를 버려야 한다.

욕실 공사하듯 뚝딱 자신의 삶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일을 뜯고, 욕조를 드러내고, 시멘트를 바르다보면 언젠가는 그럭저럭 쓸 만한 욕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청춘은 그렇게 믿고 무턱대고 작업을 시작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너무 늦게 완성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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