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에 해당하는 글 1건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43쪽)

 그 날 읽은 문장을 따라 정서가 이리저리 휘날리게 된다. 얼마 전에는 김연수의 문장으로 동굴 속에 숨어들고 싶더니, 한강 연작소설을 읽으면서는 삶에 대한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사실 한강 소설을 읽는 건 처음인데,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 치고는 몰입해서 읽고 있다. (이 책이 그런 건지 한강의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징적인 환유가 풍부하고, 다소 예술적 작위가 드러난다. (서울예대 문창과의 향취?)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105쪽)

 은유는 보편성을, 환유는 개별성을 선전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은유는 강자의 폭력이요, 환유는 약자의 저항이라고 호미 바바는 말한다.(라고 김욱동 교수의 책이 그랬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모든 속물적인 삶의 진부함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라고 느꼈다. 정상적 삶을 일탈한 자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때, 다시 말해 "조금도 죄송하지 않은 듯한 말투로 담담히(48쪽)" 목소리를 높일 때 정상/이상, 보편/특이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그리하여 이들의 비정상성을 '교정'하고자 접근하던 '정상인'들은 스스로의 정상성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게 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떠나 "잠잠한 평화가 주는 행복을 영원히 잃(122쪽)"게 된다. 타자에 의존해서만 주체를 형성하는 양가성(ambivalence),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타자성을 내부에 품고 있는 주체의 적대적 의존관계는 주체/타자의 구분을 정교화하려 할 수록 내적 모순과 분열에 빠져들게 한다. (아, 과연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그녀는 베란다 난간 너머로 번쩍이는 황금빛 젖가슴을 내밀고, 주황빛 꽃잎이 분분히 박힌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흡사 햇빛이나 바람과 교접하려는 것 같았다. 가까워진 앰뷸런스의 사이렌, 터져나오는 비명과 탄성, 아이들의 고함 ,골목 안으로 모여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는 들었다. 여러개의 급한 발소리들의 층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147쪽)

 뜬금없지만, 작가의 이름은 검색어에 오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동맥처럼 펄떡이는 이미지의 낱말이다. 서늘한 눈매의 작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름, 문장, 정서를 갖고 있다. 작가의 얼굴을 찾아보는 못된 버릇은 그만둬야 하겠지만.

2010. 9. 30.

WRITTEN BY
moonwon
moon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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