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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J에게

그래서였을까. J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수 있고, J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갑작스럽고 생소한 균열감에 어딘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쌍둥이조차 삶이 같지 않다는데, 30년을 다르게 살아온 우리가 같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허황된 믿음이겠지. 그래도 나는 어쩐지 우리만은 기적처럼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희망을 가져보곤 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J가 나를,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말. 내가 J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 그리고 나 스스로가 J를 실망시켰다고 느끼는 순간들. 너무 유치해서 겉으로 내색하기는 어렵지만 내심 서운하고 어딘가 쓸쓸해지는 상황들. 아마도 J도 다르지 않았겠지? 그래서 나에게 그렇게 말을 꺼냈을 거고.

원래 연인이란 게 그런가 싶기도 해. 사랑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인생을 드라마틱한 장밋빛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하잖아. 좋을 때는 좋다가도 때로는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하기도 하고 그렇게 투닥대면서 만나는 거겠지. 친구 하나를 만나더라도 깊게 사귀다보면 누구나 실망스러운 법인데 연인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균열의 순간에 느끼는 외로움은 여전해. 좋아할수록 쓸쓸해지는 연애라면 꼭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젯밤에는 유난히 우리 강아지가 보고 싶었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보여줬던, 나의 모자람을 한없이 채워주던 꼬리의 흔들림. 얼마전 리처드 랭엄의 강의를 들었는데, 호모사피엔스는 길들여진 영장류래. 길들여진 반려동물은 야생상태의 조상들과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게 되는데,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할 때 반려동물의 유전적 특성을 갖는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사람의 쓸쓸함도 그저 함께 산책할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한 마리 반려동물의 마음처럼 애처롭게 느껴져.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은 욕망을 놓고 싶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목줄을 멜 용기는 없는 우리들은 아마도 평생 외롭지 않을까.

J만은 쓸쓸한 마음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_2022.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