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 9p

어느 날엔가 인생의 네 단계에 관한 영상을 본 일이 있었다. 유튜브의 그저 그런 “inspiring videos” 채널 중의 하나였는데,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1) 주위를 보고 따라하는 유아기, 2)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하는 청년기, 3) 한계에 맞추어 목표를 선택하고 열중하는 중년기, 4) 인생의 유산을 남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노년기. 그리고 위 각 단계를 잘 거치기 위해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삶의 진실이 있다. 언제나 꿈과 희망을 좇으라고 부추기는 세간의 말과는 반대로, ‘인생은 유한하며 나의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서둘러 찾아 집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꿈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는 아무런 정작 성취도 이루지 못하는 피터팬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가끔 내가 인생의 조연이라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출연자들의 목소리 속에서 가까스로 얼굴을 비추는 단역. 내 인생에서 내가 조연이라니 이상한 감각이지만, 어쨌거나 영웅적 주인공이 부재하는 서사라도 그럭저럭 읽히는 법이다. 나 자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의 의지만으로 인생을 만들어갈 수도 없으며, 대단치 않은 삶이나마 살아가는 일에도 대단한 노력을 요한다는 것. 그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에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내 앞날에는 고귀하고도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인생이 평범하다는 사실이 익숙해졌고, 어느 때에는 적잖이 위안이 되었으며, 때때로 그 쓸쓸함이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쓸쓸한 조연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퇴역탐정 ‘기 롤랑’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작은 단서들을 더듬어 나선다. 아주 조금씩 자신이 누군지, 왜 기억을 잃었는지 알게 되지만, 결코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오히려 슬프고도 처연한 텅 빈 막다른길에 다다르고 만다. 아무 것도 없는 끝에 다다라서도 기 롤랑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해변의 사나이’처럼.

‘해변의 사나이’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 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 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 - 76p

줄거리는 귀여운 이야기들의 모자이크같다. 주인공은 퇴역탐정이고, 전개는 일단 추리물의 형식을 따르지만, 정작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추리의 목적과 무관하다. 대신 러시아식 장례식, 호텔 바의 일본인, 너무 젊은 여자와 결혼한 피아노맨, 공탁된 성의 관리인, 살롱의 장의자에 잠든 여인같은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제시된다. ‘기 롤랑’이 방문하는 어느 ‘미로’ 정원처럼, 이 이야기는 탈출이 목적이 아니라 미로를 헤메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안개 낀 가로등 밑처럼 모호한 과거의 비극을 더듬어가는 여정 자체가 이 소설의 즐거움이다. 너무나 슬프고도 처연한 결말은 안개를 비추던 가로등 빛줄기마저 꺼버리고 말겠지만.

그러니 이 소설의 형식은 결론과는 모순된다.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모으면 인생이 된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 속 나는, 옛 사진에 찍혀있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조연들처럼 덧없이 조각나고 만다. 타인의 이야기를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지만, 그 타인은 좀처럼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삶의 비극은 조연성에서 온다.

요 얼마간 주인공의 마음으로 살았다. 꿈같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서막으로 여긴 일도 있다. 그러나 고귀함은 삶의 조연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온다. 그러니 작은 불일치에 쉽게 낙담하지는 말도록 하자. 쉽게 지워지고 말 발자국이라도, 용기 내어 내딛는 한 발이 필요한 법이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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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 문혜연, <당신의 당신>

연말에는 나카메구로 천변을 걷다가 까마귀 한 마리를 보았다. 커다란 은행나무에 홀로 앉아있었다. 찬 겨울바람에 가지가 흔들려도 까마귀는 울지도 않고 조용했다. 전철고가 밑 작은 카페는 차분한 등불을 켜 두었다.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조용하던 카페에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멀리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약한 맥박소리처럼 처연했다. 도쿄의 밤은 떠들썩하지도 흥청망청하지도 않았고, 내내 그리운 마음이었다.

연말에는 하마리큐 정원을 걷기도 했다. 겨울바람이 차도 볕 아래 온기가 가득했다.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 멀리 도쿄만의 현수교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 남매가 언덕을 구르며 깔깔댔다. 추위에 발그레한 볼을 보니 너도나도 뭉클해졌다. 멀리서 남매의 엄마가 소리쳤다. 두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까.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10년 후를 생각했다. 찻집에 나란히 앉아서 작은 호수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으로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둥근 찻잔을 감싼 손이 따뜻했고, 내내 살가운 마음이었다.

신년을 맞아 신춘문예 당선시를 찾아 읽던 저녁이었다. 책방을 걷던 발걸음이 동시에 멈춰섰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 같은 시집이다. 혼자에게는 채이지 않던 시집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 귀갓길을 재촉한 저녁이었다.

그 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 박준, <선잠>

2019년 연시의 일이다. 혹은 2018년 연말의 일이다. 살다보면, 제목만으로 평생을 사랑할 것 같은 시집을 만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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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라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과자라고 불렀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꼽추의 이름을 따서 콰지모도라는 아이디를 쓰는 친구였다. 아이디가 너무 길어서 줄여 부른 것인지, 아니면 키읔의 파열음이 주는 거리감을 완화하려던 것인지, 콰지모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냥 과자또는 과자씨라고 불렀다. 어쩌면 콰지모도가 주는 대담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상반되었던 그 친구의 수더분한 성격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자는 자주 한가했다. 역시나 한가했던 18살의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과자와 보냈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별다른 일정 없이 책이나 읽던 한량이었고, 과자도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대학로의 어느 대안학교에 비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었다. 이외에도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나를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대판 싸우고 연을 끊은 친구도, 아주 일찍 생을 마감해버린 친구도 있었다. 어쨌거나 다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착한 아이들이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던 우리는, 자주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로니에의 벤치에서 자주 수다를 떨었고, 한강 공원에서 라면에 술을 마시기도 했고, 하늘공원에서 야외상영을 보았다. 맥주 한 봉지 사들고 낙산공원을 뛰어 오른 일도 있었다. 과자는 덕후 기질이 있어서 <파리의 노트르담><네 멋대로 해라> 이야기를 자주 했다(물론 후자는 고다르의 영화가 아니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던 영화나 소설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미묘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과자는 자주 집을 나왔다. 왜 집을 나왔는지는 다들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었다. 언젠가 모임 약속을 잡아서 공원에서 만났을 때엔, 일주일 째 집에 안 들어갔다면서 약간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과자가 집을 나오면 연락 가능한 핸드폰도 없어서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약속에 늦어도 알릴 길이 없으니 한 시간쯤 일찍 나와서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예사였다. 과자는 가끔은 내 자취방에도 문득 찾아와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했다. 또 가끔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셨다는 친구 집으로 다 같이 몰려가서 떠들썩하게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모두 귀가하는 편이었고, 친구들은 과자에게 오늘 밤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대화주제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꺼려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과자가 어디에서 자는지 아무도 모른 채 서둘러 인사하곤 헤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늦게까지 놀다가 함께 노숙을 한 일도 있었다. 아마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낮이 무척 더웠기 때문에, 이 정도 날씨라면 노숙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과자의 리드를 따르기로 했다. 과자는 밤의 길거리가 무척 춥다며 어딘가에서 버려진 신문지를 주워왔다. 신문지를 구겨서 옷 사이에 솜처럼 잔뜩 채워 넣었다. 한강변의 어느 굴다리 아래에서,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밤새 시덥 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여름의 밤이 그렇게 추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과자와는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과자에게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너무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과자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나는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과자를 잘 모르는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과자의 발냄새를 놀려댔다. 나는 친구를 나무라는 대신 함께 과자의 발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 날 과자의 표정이 자주 떠오른다. 과자는 평소처럼 쾌활하게 웃어넘기는 대신, 약간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학을 갔고, 한동안 과자를 만나지 못했다. 과자와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 언저리에서 잊혀질 즈음,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과자랑 연락이 되니?” 과자가 집을 나간 지 몇 달이 지났고, 혜화역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메일 답장도 없고, 최근에는 네이버 블로그도 폐쇄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별일 아닐거야. 어디서 평소처럼 잘 살고 있겠지 뭐. 가출은 자주 했었잖아?” 그러나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와 이메일은 과자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후로 겨울이 오면 가끔은 걱정을 했다. 여름에야 어떻게든 노숙이라도 한다지만, 추운 한겨울에는 어쩌나. 그런 걱정은 아주 가끔 내 안온한 삶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왔다. 옛날에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라고 추억할 정도로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 후로 한번도 과자를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를 봤다. 소공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얼마간은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게 사라져버린다. 사라져버린 소공녀를 가끔 추억하는 친구들은, 안온한 삶을 끌어안고 산다. 그 안온한 삶에도 걱정과 고민이 가득하다. 그러니, 누구도 소공녀를 재워줄 수 없다. 소공녀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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