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신해욱
교과서를 읽으며
나는 감동에 젖는다.
아픈 아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혼자 죽은 나무들이 외롭지 않도록
정성껏 밑줄을 긋고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
칠판에는 하얀 글자들이 가득하고
조금씩 움직인다.
나는 같은 자세로 앉아
자꾸만 같은 줄을 읽으며
나를 지나
그냥 가버리고 마는 이들을
지키고 있다.
죠스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싶어진다.
===
신해욱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마도 그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목소리로 그의 시와 글을 읽었다. 우리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서야 그가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여자임을 알았다. 나는 그의 시를 좋아하기로 결심했다. 눈 덮인 풍경을 뒤로 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던 그 사진이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스밀라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 눈이 덮인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내가 겨울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를 알았다. 시를 좋아하는 이유라기엔 좀 저급하기는 하다.
자꾸만 같은 줄을 읽는 사람. 무신경하게 그냥 지나쳐버리고 마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 자꾸만 자꾸만 같은 줄을 읽을 줄 아는 사람. 혼자 죽은 나무 옆에서 당분간 같이 떨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나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눈빛 정도는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