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 기형도(奇亨度, 1960~1989)
나무 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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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기형도의 <대학 시절>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80년대 초반의 대학, 격동의 시기에도 기형도의 화자는 플라톤을 읽었다. 아마도 플라톤은 80년대의 대학생인 화자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는 플라톤을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졌고, 곧이어 그는 외로워졌지만 졸업은 어김없이 왔다. 누구도 즐거운 마음으로 졸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