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에 구원은 없으리
붓다를 읽어도 하수상하다. 제도화된 종교와는 생각을 섞을 수 없었고, 신앙 없는 불교읽기는 공허했다. 경청할 말은 많았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실천적이었으므로, 지적 허기는 채워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아가버리는 삶을 뿌리내릴 단단한 토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평가할 척도 내지는 좌표랄까. 하루를 마무리하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가 오늘 보낸 삶은 어떠했던가, 생각해보게 하는 기준 같은 것 말이다. 이룬 일 하나 없지만 충실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고, 하루종일 치열했어도 형편없이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런 막연한 느낌이 있을 뿐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내게도 삶의 방향이나 속도를 설정할 지침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마도 넓은 의미의 윤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제,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 미안했다, 나는 자기윤리가 없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짐짓 떠들어 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윤리의식의 소유자이기라도 한 양. 차라리 침묵하는 사물이 윤리적이다. 동트는 꽃새벽까지 술을 마셨지만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침해가 내 윤리없음에 대한 비난으로 느껴졌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밤은 윤리의 공허를 덮어두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덮어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또 습관처럼 애착을 갖는다. 集이 苦를 부르는 것이라면, 애착은 해롭기 짝이 없다. 그러니 苦 이외에 무엇을 탐할 수 있을까? 내 생에 苦集만 있고 滅道가 없으니 당분간 구원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