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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땅을 보고 걸었다

어제는 땅을 보고 걸었다.

며칠 전엔 눈이 세차게 왔다. 언제 이렇게 겨울이 됐나 싶을 만큼. 하얗게 눈이 쌓인 석조건물은 아름답게 빛났다.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선배를 생각했다. 선배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절망이 깊어도 산책길은 아름답다. 무심한 풍경이다.

같은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걷다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또 걷다보면 생각이 사라진다. 삶이 건조해진 후로 강박적으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산책만이 내 삶의 촉촉한 순간이다. 같은 길을 걸어도 햇살이 다르고, 색감이 다르고, 그림자가 다르고, 온도가 다르다. 다른 온도의 길을 수 십 번 걷다보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내가 아무리 흔들려도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선배는 바보같은 웃음이 매력적이었다. 때로는 정색하고 말하는 법도 알았다. 물론 나는 대체로 혼나는 쪽이었다. 하지만 실망스러울 내 결정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후배들 중 하나라서 대수롭지 않았던 갈까. 나는 비밀스럽게 선배를 몹시 존경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어제는 내내 땅을 보고 걸었다. 평소보다 조금 멀리까지 걸어보기도 했다. 추운 길 함께 걸어준 그 사람에게 고마웠다. 역시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