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인생에 관한 알레고리로 가득한 영화, <더 랍스터>를 봤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알레고리들.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도,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로도, 심지어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겠다. 나는 (평범하게도) 사랑에 대한 냉소로 읽었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기껏해야 카드 뒤집기 게임처럼 얼떨결에 짝을 맞춰가는 것. 혹은 모두를(자신을 포함하여) 속여가며 평생을 연기하는 것.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서로에게 총질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부분이 다르단 걸 확인하는 순간 짜게 식어버리고 마는 것. 서로에게 감정을 강요하며 거대한 사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그럼에도, 사랑이 오고야 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작 사랑을 찾을 때엔 없다가,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척 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하는 게 더 어려움을 절실히 깨달을 정도로 도저히 오지 않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체념하고 탈주하는 순간 덥썩 나타나버리고 마는 것을,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까.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정신줄 놓고 사랑하게 만드는 그 아찔한 충동을 어떡하면 좋을까.
콜린 파렐의 찌질한 어색함은 이 영화에서도 돋보였다. 하지만 레아 세이두… 나는 레아 세이두를 리더로 따를 수 있다면 일생을 옆에서 동료로 단지 지켜만 보면서 가슴 아프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레아 세이두가 무덤을 파고 들어가고 시키면 바로 그 자리에 기쁜 마음으로 눕겠다. 그 차가운 단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