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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산책을 했다


긴 산책을 했다.

 

산책하기엔 좋지 않은 계절이다. 따뜻한 날에는 공기가 좋지 않고, 공기가 좋은 날에는 찬바람이 거세다. 요컨대 양자택일이다. 기관지를 희생해서 따뜻한 날을 즐기거나, 추위에 떨면서 기관지를 지키거나. 어제는 간만에 청명하고도 몹시 추운 날이었으므로, 나는 귀와 코가 빨개지도록 산책을 했다. 성북천을 따라서 정릉천까지 갔다. 어느 쪽에도 볼만한 풍경은 많지 않다. 차가운 공기를 잔뜩 마셨으니 결과적으로 기관지를 지키는 선택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몇 가지 선택을 했다. 몇 날을 고민했지만, 돌이켜보면 회사를 옮긴 일은 선택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상과 성공, 돈과 명예, 사랑과 꿈, 그런 추상적인 것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골라도 실패한 선택이다. 요컨대 양자택일은 아니다. 그러다 꿈도, 사랑도, 돈도, 명예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귀와 코가 빨개지도록 사랑할 수는 없었던 걸까. 성북천을 따라서 정릉천까지 가는 동안,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산책할 때 강의를 들어. 오디오파일로 된 강의. 듣는 둥 마는 둥 귀에다 쑤셔넣다보면 뭐라도 기억이 나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나를 바라보던 측은한 눈을 기억한다. 아니면 한심하다는 눈이었을까. 멜론도 끊고, 음악 대신 강의를 들으면서 걷는다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음악은 자꾸만 듣고싶어지잖아. 좋은 음악일수록. 그런 마음으로 산책할 때마다 나의 세계는 딱 그만큼씩 쪼그라들까. 눈이 보고싶다. 날 한심하게 바라보던 동그란 눈.

 

이사를 가야할까.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걸을 새로운 산책루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사에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법. 요컨대 양자택일이다. 아니면 절충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