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_테드 창
영화 <컨택트Arrival>를 관람한 기세를 몰아 테드 창의 중단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읽었다. 안그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상”을 두고 친구들과 장광설을 늘어놓은 게 엊그제니, 나름대로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그러나 테드 창은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이 떠올라버렸는지도 모른다.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주변적 이야기를 적절히 컷트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 스토리의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몰입해버렸다. 특히 후반부에는 겉잡을 수 없이 사변적인 결론으로 치닫는다. (나는 궁예는 아니지만) 중반까지와 이후의 전개를 보면, 최종 결과물은 테드 창이 애초에 쓰고 싶었던 형태의 소설은 아니게 되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창작의 ‘경로의존성’이야말로 이 책의 주제의식에 일관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말은 없지만.
그럼 과감히 궁예질을 해보자. 애초에 테드 창은 인간과 소프트웨어의 감정적 애착의 형성을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기르듯이 소프트웨어를 기르게 된다면 어떨까. 반려소프트웨어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고, 그를 기르고 교육하는 일이 인간에게 감적적 유대를 가져다 준다면. 나아가 소프트웨어가 수명을 다할 처지에 있게 된다면. 예컨대 유행이 지나가버려서 더는 업데이트지원이 되지 않는 윈도우 95시대의 게임처럼 말이다. 최종 결과물과 연관성이 적어보이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제목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테드 창은 주체성과 선택이라는 사변적 이야기에 몰입해버렸고, 결국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딜레마는 흔한 가족용 성장드라마와 다를 바 없어졌다. 너무 빨리 자라나 내 손을 떠나게 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불안한 시선같은 것 말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 관한 초기의 구상을 잘만 그렸다면 상당히 슬픈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누구도 그런 소설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 설익은 아이디어 스토리의 단점은, 유사한 아이디어로 쓴 이야기를 어쩔 수 없는 아류작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