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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후기

『법- 레이먼드 웍스 지음, 이문원 옮김, 교유서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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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여유가 생겨서 번역 후기를 기록해 둔다.

 

번역은 흥미롭지만 어려운 작업이었다. 즐거운 곤란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타인의 글을 그저 읽는 것과도, 나의 글을 그저 쓰는 것과도 달랐다. 읽는 동시에 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마치 나의 말인 것처럼 쓴다. 번역자는 어디서부터 얼만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중개하는 일은 예상만큼 어렵지 않았지만, 의외로 역자에게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 꽤 곤란했다.

 

예컨대 저자의 문장이 불만족스럽거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역자가 자신을 드러내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충실히 저자의 말을 옮겨서 그저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저자가 독특한 수사법을 사용하는 경우엔 어떠한가. 저자가 매우 현학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역자도 그에 준하는 현학적인 단어로 옮겨놓아야 할까? 현학적인 태도가 저자의 의도된 수사법이라기 보다는 그저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보이는 때에도? 심지어 저자가 틀린 정보를 제시하고 있을 때라면, 역자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역자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좋지 않은 우리 글’의 또 다른 탄생에 수동적으로 기여해도 괜찮은 것일까?

 

번역을 시작한 초기에는 소극적이었다. 대체로 저자의 문장과 1:1로 매칭이 되도록 충실히 옮겨놓는 길을 택했다. 초보 역자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한국어 문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문장의 어순을 바꾸고, 불필요한 주어를 생략하고, 영어 특유의 대명사의 남용을 지양하는 정도는 필요했으나, 그 이상으로 윤문을 하거나 아예 문장을 자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이 영 좋지 않았다. 저자는 법학교수 답게 매우 현학적이고 장황한 문장을 구사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뀐 문장은 더욱 고답적이었다. (초벌 리뷰를 해 준 분은 내가 법학을 공부하더니 문장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 평했으나, 나는 내 탓이 아니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독자는 역자의 핑계를 양해할 마음이 없다. 입문서라고 해서 읽으려는데 문장이 장황하다면, 역자의 실력과 성의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초벌번역을 마치고 며칠 뒤 다시 읽어본 글은 형편없었다.

 

결국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쉽게 쓰려고 했다. 아예 주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둘로 자르기도 하고, 의미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써보려고 했다. 지금 다시 봐도 중반 이후부터는 읽기에 훨씬 수월하다. 아예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가 잘 못 썼음이 명백한 문단의 순서를 바꾸면서 연결어를 삽입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의도를 오해한 출판사와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자로서는 난데 없는 문단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문판 독자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할 부분이었지만, 그런 체험까지 한국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갓 단행본 한 권을 번역했을 뿐인 초보 역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역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개론서나 교양서의 수준에서는 역자가 전면에 나서는 편이 좋다. 의미를 해치지 않는 가능한 한도에서 최대한 해당 언어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다시 써야 한다. 개성있는 역자의 무리수라고 볼 일이 아니다. 번역이 결국 우리말의 생태계에 다양성을 보태는 일이라면, 좋은 문장을 보탤 일이다. 새롭게 창작한다는 생각으로 번역을 해야한다. 원전에 충실해야 할 책(예컨대 강독을 위해 읽어야 할 고전)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러나 원전에 충실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면 원서로 직접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 (번역을 할 일이 또 생길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적극적인 역자가 되겠다. 영미의 어느 탁월한 번역자는 이런 찬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뒤 영어로 다시 책을 쓴 것 같다고.


(덧. 이력의 대학신문에는 쌍꺽쇠를 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