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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연시에 만난 시(집)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 문혜연, <당신의 당신>

연말에는 나카메구로 천변을 걷다가 까마귀 한 마리를 보았다. 커다란 은행나무에 홀로 앉아있었다. 찬 겨울바람에 가지가 흔들려도 까마귀는 울지도 않고 조용했다. 전철고가 밑 작은 카페는 차분한 등불을 켜 두었다.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조용하던 카페에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멀리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약한 맥박소리처럼 처연했다. 도쿄의 밤은 떠들썩하지도 흥청망청하지도 않았고, 내내 그리운 마음이었다.

연말에는 하마리큐 정원을 걷기도 했다. 겨울바람이 차도 볕 아래 온기가 가득했다.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 멀리 도쿄만의 현수교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 남매가 언덕을 구르며 깔깔댔다. 추위에 발그레한 볼을 보니 너도나도 뭉클해졌다. 멀리서 남매의 엄마가 소리쳤다. 두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까.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10년 후를 생각했다. 찻집에 나란히 앉아서 작은 호수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으로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둥근 찻잔을 감싼 손이 따뜻했고, 내내 살가운 마음이었다.

신년을 맞아 신춘문예 당선시를 찾아 읽던 저녁이었다. 책방을 걷던 발걸음이 동시에 멈춰섰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 같은 시집이다. 혼자에게는 채이지 않던 시집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 귀갓길을 재촉한 저녁이었다.

그 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 박준, <선잠>

2019년 연시의 일이다. 혹은 2018년 연말의 일이다. 살다보면, 제목만으로 평생을 사랑할 것 같은 시집을 만나기도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