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 매듭이 예쁘게 묶인 날에는 일과가 끝나도 스카프를 풀고 싶지 않다. 머릿속이 잔뜩 헝클어진 채로 침대에 몸을 던져도 목에는 정돈된 스카프가 걸려있다는 사실이 꽤나 위안이 된다. 후회뿐인 어제와 진부한 오늘이 계속돼도, 목에 닿는 실크 스카프의 아슬아슬한 감각은 그럴싸한 내일을 상상하게 한다.
내 꿈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었다. 그 사람에겐 한낱 농담일 뿐인 내 꿈을.
몇 년 전인지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아봐야 알 어느 밤. 공원 벤치에 캔커피도 한 잔 없이 앉아서 우린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던가. 우리가 10년 뒤에 하고 있을 일들을 하나둘 꼽으면서 무슨 시덥지 않은 웃음을 나눴던 것일까. 그 사람은 내가 믿을 만 하다고 느꼈고, 나는 그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10년 뒤에 내가 할 멋진 일들을 상상했고, 그 사람은 10년 뒤에 내 옆에 있을 자신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대입결과 발표 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내 떠들썩한 밤을 보냈고, 그 사람은 방에서 조용히 흐느꼈다. 이후로는 뻔한 이야기. 나는 다가올 나날에 도취돼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스카프를 푼다. 아이보리색 실크 스카프는 풀리는 소리조차 매끈하다. 갑자기 허전해진 목 언저리에 찬바람이 스며든다. 고작 하루 동안 매고 있었을 뿐이다. 아련한 냄새가 나던 내 인생은 스카프를 풀자 아주 특별하고 외로운 우주가 되었다. 아무런 의미도 목표도 없는 방탕. 고독한 공국에서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어느 날을 그리워했다.
환상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봄날 대학가의 야릇한 흥분에 물들어갈수록 그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져 갔다. 어느 들뜬 술자리에선가 그 사람의 전화를 황급히 끊은 이후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집 앞으로 찾아갔던 날엔 꽃샘추위 찬바람만 잔뜩 맞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 사람이 머물러야 했을 쓸쓸함의 방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바람이 조금 추웠을 뿐이다.
어제, 내 꿈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었다. 한낱 농담으로 내뱉어진 내 꿈을 황급히 주워담았다.
꿈은 낯간지러운 단어가 됐다. 나는 더 이상 꿈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은 나에게 꿈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다소간 야비한 편에 속할까. 지인에게 내 10년 뒤를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출세하겠다고 보수 정당을 기웃대는 철새 같은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품어온 꿈이 비웃음거리가 될 때면 좀 억울하지만, 스스로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나는 너무 말이 많았다. 말이 많은 것은 그만큼 번복할 일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꿈은 뭐였던가. 내가 자신감에 겨워 계획을 풀어놨을 때, 그 사람이 내 눈을 한 쪽씩 번갈아 지긋이 보면서 힘을 줘 내뱉은 첫마디는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 사람이 살던 아파트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던 밤, 목을 쓸어내리면서,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 날 밤 홀로 빛나던 나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