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 톰파는 의식적으로 (거의 강박적으로) <당통의 죽음>을 현재로 소환한다. 극에는 18세기 프랑스를 연상시킬만한 외적 요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로베스 피에르가 차려입은 네이비 스트라이프 수트는 방금 프라다나 톰포드에서 뽑아온 것처럼 극도로 모던하며, 기하학적 구성과 입체성을 강조한 미니멀한 무대장치는 전위적 구성주의를 연상시킨다. 악명 높은 공안위원회는 바로크 공회당 대신 신식 컨퍼런스룸에서 열리는 식이다. 현대화와 동시에 극의 무대를 현지화하려는 노력도 보이는데, 라 마르세예즈가 <애국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과 중첩되곤 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이해하도록 강제한다. 연출가는 이야기를 18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진 예외적 상황으로 박제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로베스피에르의 기자회견은 다소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전반적으로 19세기의 희곡과 21세기 무대의 융합은 매우 성공적이다. 그가 현대적 연출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거친 도식화가 허용된다면) 아마도 전체주의 사회일 것이다. 금속과 아크릴 재질의 차가운 배경과 어둡고 단조로운 수트로 일관하는 자코뱅좌파(당통의 자코뱅우파는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의 수트를 입고 등장한다)와 그 어눌하면서도 격정적인 연설들은 자명하게도 파시스트 정부를 연상시킨다.
현대화 성공의 원천은 부분적으로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원작이 갖는 힘이다. 24세의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문학사의 흐름을 바꿀 대문호가 되었으리라는 뷔히너는 이미 19세기 초에 교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 20세기적 네러티브를 제시한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에 비껴있다. 단 세 편의 희곡을 썼을 뿐인 뷔히너가 브레히트와 현대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추앙받으며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평가받은 것은 그의 희곡이 갖는 모호함과 다의성, 열린 결말의 탈근대적 속성 때문이었다. 모순된 현실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인간의 모습은 오히려 19세기보다는 현대에 더욱 의미가 부각된다. 덕분에 가보 톰파의 현대적 연출은 원작의 구성과 아무런 부조화도 일으키지 않고 녹아든다.
여기에 현지화의 요소가 한 가지 추가되는데, 주요 인물을 제외한 ‘모든 인물’을 소화하는 소리꾼 이자람의 존재이다. 극의 진짜 주인공처럼 느낄 정도로 이자람의 비중은 매우 큰데, 이는 극의 처음과 끝을 그가 맡은 점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판소리로 출발한 소리꾼 이자람은 이제 탈장르적 공연세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당통의 죽음>에서도 창법의 제약 없이 ‘이름 없는 사람들’을 전부 연기한다. 거리의 광대는 혼자서 혁명기 파리라는 거대한 배경을 형상화하는데, 때로는 그저 혼자 여러 사람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때로는 어떤 ‘인민’이라는 추상적 개념 자체를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본래 1인극이면서 동작과 소리가 결합된 종합예술인 판소리의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처럼 보이는데, 이자람은 판소리 창법을 제한적으로만 사용함으로써 억지스러운 ‘전통과의 융합’이라는 함정을 비껴가고 있다. 사실 판소리적 요소는 연극적 전통 속에 매우 제한적으로만 차용된 것인데, 적극적 해설자의 역할을 겸하는 판소리와는 달리 이자람은 노래를 부를 때를 제외하면 철저히 극 내부의 인물로만 등장한다. (아마도 브레히트적 풍자는 뷔히너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전통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식의 이해는 피상적이다. 오히려 핵심은 서구적 연극의 계보에서 광대극의 요소를 통해 배경과 조연들을 대신케 하는 세련된 연출기법인 셈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자람의 역할이 ‘이름 없는 자들’을 대신한 것 뿐이라면, 그의 비중이 이토록 커야 했을까? 오히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를 가릴 정도로? 가능한 한 설명은 희곡 전체의 주제의식과 연관짓는 것이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대립은 표면적으로 쾌락주의 대 도덕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당통은 9월 학살에 회의를 느끼며 자유로운 욕망의 추구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로베스피에르는 도덕만이 혁명을 순수하게 만들 수 있다며 공포정치를 지속하려 한다. 그런데 극의 중반에 이르러 당통에 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위협이 가시화되면, 결정론 대 의지주의라는 진짜 대립구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요컨대 당통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도 결국 하나의 말로 ‘사용’될 뿐이라는 체념에 빠져 있다. 그의 말처럼 “혁명은 새턴과 같아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 앞에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족하다. 당통의 죽음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필연적이다. 여기에는 섣부른 가치판단이 배제되어 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자신의 힘으로, 인간의 의지로, 특히 도덕으로(!) 전진시키고자 한다. 혁명의 물결을 거스르는 돌은 직접 빼내야 한다. 혁명을 되돌리려는 반역적 흐름에 맞서 도덕적 의지의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대전제가 있다면 그 것은 인민이 추동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존재다. 이자람이 체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인민들이며, 따라서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를 넘어서는 주인공이 된다(되어야 한다). 격정적으로 라 마르세예즈를(그리고 애국가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동지가를!) 부르는 것은 결국 인민이며, “당통 만세!”의 구호를 “로베스피에르 만세!”로 2분만에 바꾸는 것도 결국 인민이다. 당통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인민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했던 필연인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치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서 뷔히너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중 누구를 옹호하는 것일까? 물론 제목에서 보이듯이 당통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단초를 극 전체에서 가장 이상했던 장면에서 찾는다. 토마스 페인의 등장(감상 중에는 페인인 줄 전혀 몰랐다!)과 그의 장황한 논변은 극의 진행과 관계없이 갑작스럽게 외삽되어 있다. 풍자인 듯도, 심오한 뜻이 담긴 듯도 한 그 짧은 감옥 장면에서 건질만한 문장은 딱 하나 있다. “여러분은 먼저 도덕으로 신을 증명하고, 그 다음 신으로부터 도덕을 증명하려 합니다!” 바로 이 문장으로 뷔히너는 로베스피에르의 도덕주의를 기각하고, 그의 공포정치를 기각하고, 그의 의지주의를 기각한다.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냉혹한 구현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관점을 기각한다. 그 자신이 혁명가의 삶을 살았던 뷔히너이기에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결론이다.
//덧, 당통이 자주 찍던 비디오카메라는 무슨 의미일까. 처음에는 당통이 끝을 예감하고 뭔가 담아두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되새기다보니 다음의 대사와 관계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양심은 거울이라구. 멍청이들만이 거기에 비친걸 보고 괴로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