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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 몇 편

소설과 영화 몇 편

 

종강 후에 소설과 영화를 여럿 보았다. 2016년에 못다한 문화생활을 막판에 몰아서 하는 건지, 2017년에 못다할 문화생활을 초장에 끝내려는 건지, 여하튼 많이 보았다.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 되고 있다. 좀처럼 울지 않고 감동받는 일이 드물다. 웃긴 걸 보면 잘 웃는걸 보면, 그냥 소시오패스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법 공부 탓으로 돌릴 마음은 없지만, 수험생의 조급함이라는 게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 같기는 하다.

 

먼저 기대하던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은 하지만 글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별점 몇점이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3.5/5.0점이라고 대답했다. 좋은 영화에 왜 그렇게 낮은 점수를 줬는지 처음에는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와서 말하자면 다니엘 블레이크를 그리는 켄 로치의 인간관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 켄 로치가 그리는 블레이크씨는 지나치게 투명하다. 이웃을 이유도 없이 돕고,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우며(그가 가진 유일한 편견은 성매매에 관한 것일 뿐), 결코 동요하지 않는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조차 스스로 감내할 뿐이다. 켄 로치식의 인민 영웅이다. 그러나 나는 흠결이 없는 영웅담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편의와 목적을 위하여 의도된 납작함으로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보장 시스템의 한계를 고발하려던 것이라면, 영화보다 얼마든지 나은 매체가 있다. 인간을 얄팍하게 그리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려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비슷한 느낌을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로부터 받았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뻔한 소재를 뻔하게 그리는데도 묘하게 매력이 있다. 담담하고 담백한 서술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연상시킨다는 평에 크게 공감이 갔다. 그러나, 최은영의 인물들은 모조리 착해빠졌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다. 모든 작중 갈등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 잘못된 교육, 사회적 억압, 편견, 그런 것들은 작중 인물의 잘못이 아니다. 오로지 선한 의도로 가득찬 주인공들이 불화하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함일 뿐이다. 아마도, 최은영 작가 본인이 그런 사람일 것이다. 오로지 선한 의도로 가득찬 사람. 그러나 나는 이기심과 탐욕,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모르는 사람을 작가로서 신뢰할 수 없다. 그런 글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저 잘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를 신뢰하지 못하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다.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첫번째 수록작이 유독 재미가 없었다. 정이현은 서울에 사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잘 그리지만, 주인공이 남자인 작품은 도저히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목소리가 마치 어색한 가면을 쓴 듯 생경하여 몰입하기 어렵다. 남성 작가가 그린 여성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끼게 될까? 나머지 작품은 괜찮았으나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아쉬웠다.

 

반면 완전히 놓아주기로 마음먹은 작가도 있다.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을 읽으면서는 혹시 <백의 그림자>가 뒷걸음질로 잡은 쥐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문학적 교양이 빈약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새 작품이 나오더라도 굳이 찾아 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은영이나 정이현의 신작은 환영이다)

 

그리고 화제의 <너의 이름은>. 그럭저럭 볼만한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정도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감각적인 표현에는 능숙하지만 인간의 복잡함을 섬세하기 그릴 줄 모른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라면 매우 훌륭했을 것이다. 두 주인공인 마츠다나 타키 모두 평면적이기 그지없고, 나머지 인물은 기계적 장치에 불과하며, 신사를 둘러싼 신화적 상상력도 이야기와의 결합이 피상적이다. 모든 운명이 주인공의 각성으로 귀결되어 세카이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적 재미의 핵심은 학교생활에 있어야 했지만, 아마도 감독은 그리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핍된 사춘기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될 정도)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일종의 단편적인 스케치의 나열에 불과하게 된다. 그 스케치가 매우 훌륭하므로 나머지 단점을 잘 가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니 내가 여전히 믿고 찾을 수 있는 것은 10년 전부터 읽은 권여선 작가의 신작 <안녕 주정뱅이>나, 오래된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인 <로그원> 같은 것들이다. 구관이 명관이다. 취향도 편협한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까. 새로운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드물다. 그렇다고 본 작품을 다시 찾는 사람도 아니건만.

 

아, <라라랜드>를 빼놓을 수 없지. 올해 가장 좋았던 영화, 꿈꾸는 기분으로 보았다. 재즈를 매우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그다지 jazzy한 영화는 아니다. 고슬링은 케니지를 조롱하고 있지만, 사실 <라라랜드>는 그야말로 케니지같은 영화니까. (케니지는 좀 심하고 빌 에반스 나 키스 자렛정도?) 긍정 에너지로 톤업된 white-washed <치코와 리타>랄까. <본투비 블루>처럼 재즈에 관한 영화는 전혀 아니고, 사랑과 성공, 만남과 엇갈림에 대한 잘 짜여진 헐리우드 뮤지컬이다. 그래도 좋다. 아무리 게토한 사람이라도 매일같이 마일스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만 듣고 살 수는 없다. 게다가, 빌 에반스도 역시 대단히 훌륭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