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언제나 대인관계가 순탄했으니, 작은 균열도 생소하여 피로감이 컸다.”
지나고 나면 굳이 마음쓸만큼 대단치도 않다. 그렇게 믿고 지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왔다. 비가 참 많이 왔고, 비가 많이 또 계속 왔고, 지겹도록 계속 비가 왔다. 비도 참 많이도 오네. 떨어지는 비를 넋놓고 본 날도 있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와도 되나. 언제까지 비가 오려나. 이제 비가 그만 그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그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며칠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칠월이었다.
칠월 들어서 책을 세 권 읽었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아주 좋은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이 섞여있다. <입동>이나 <풍경의 쓸모>는 김애란다운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결혼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침묵의 미래> 같은 작품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할배들은 아직도 이런 소설을 파고 있는 모양이다.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문학계의 수치이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도 읽었다. 여전히 김영하식의 작위적 유머는 껄끄럽다. 그런 말장난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만 재미있다. 등장인물이 입밖으로 꺼내서 말하는 순간 저급한 일본코믹풍이 되어버린다. <최은지와 박인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다.
심보선의 새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글쎄, 나는 이번엔 잘 모르겠다.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점점 취향에서 멀어져간다.
하지만 모두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불만이 많은 계절이니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칠월에는 무엇을 읽어도 천국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체념뿐이다. ‘예상표절’이라고 했던가. 몇 번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내가 읽어온 것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기이한 생각을 한다. 선행된 텍스트는 자기복제를 거치면서 비로소 의미가 명료해진다. 비슷한 시간이 반복되기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감각. 그러니 순전히 개인적인 이별이다.
슬프고 밉지만 마음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남아서 잠시 울다 갈테니 먼저 가셔도 좋다.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아마도, 그동안 정말 좋았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