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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소공녀>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

 

과자라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과자라고 불렀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꼽추의 이름을 따서 콰지모도라는 아이디를 쓰는 친구였다. 아이디가 너무 길어서 줄여 부른 것인지, 아니면 키읔의 파열음이 주는 거리감을 완화하려던 것인지, 콰지모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냥 과자또는 과자씨라고 불렀다. 어쩌면 콰지모도가 주는 대담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상반되었던 그 친구의 수더분한 성격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자는 자주 한가했다. 역시나 한가했던 18살의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과자와 보냈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별다른 일정 없이 책이나 읽던 한량이었고, 과자도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대학로의 어느 대안학교에 비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었다. 이외에도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나를 한 때 좋아했던 친구도, 대판 싸우고 연을 끊은 친구도, 아주 일찍 생을 마감해버린 친구도 있었다. 어쨌거나 다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착한 아이들이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던 우리는, 자주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로니에의 벤치에서 자주 수다를 떨었고, 한강 공원에서 라면에 술을 마시기도 했고, 하늘공원에서 야외상영을 보았다. 맥주 한 봉지 사들고 낙산공원을 뛰어 오른 일도 있었다. 과자는 덕후 기질이 있어서 <파리의 노트르담><네 멋대로 해라> 이야기를 자주 했다(물론 후자는 고다르의 영화가 아니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던 영화나 소설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미묘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과자는 자주 집을 나왔다. 왜 집을 나왔는지는 다들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었다. 언젠가 모임 약속을 잡아서 공원에서 만났을 때엔, 일주일 째 집에 안 들어갔다면서 약간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과자가 집을 나오면 연락 가능한 핸드폰도 없어서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약속에 늦어도 알릴 길이 없으니 한 시간쯤 일찍 나와서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예사였다. 과자는 가끔은 내 자취방에도 문득 찾아와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했다. 또 가끔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셨다는 친구 집으로 다 같이 몰려가서 떠들썩하게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모두 귀가하는 편이었고, 친구들은 과자에게 오늘 밤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대화주제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꺼려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과자가 어디에서 자는지 아무도 모른 채 서둘러 인사하곤 헤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늦게까지 놀다가 함께 노숙을 한 일도 있었다. 아마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낮이 무척 더웠기 때문에, 이 정도 날씨라면 노숙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과자의 리드를 따르기로 했다. 과자는 밤의 길거리가 무척 춥다며 어딘가에서 버려진 신문지를 주워왔다. 신문지를 구겨서 옷 사이에 솜처럼 잔뜩 채워 넣었다. 한강변의 어느 굴다리 아래에서,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밤새 시덥 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여름의 밤이 그렇게 추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과자와는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과자에게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너무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과자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나는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과자를 잘 모르는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과자의 발냄새를 놀려댔다. 나는 친구를 나무라는 대신 함께 과자의 발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 날 과자의 표정이 자주 떠오른다. 과자는 평소처럼 쾌활하게 웃어넘기는 대신, 약간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학을 갔고, 한동안 과자를 만나지 못했다. 과자와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 언저리에서 잊혀질 즈음,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과자랑 연락이 되니?” 과자가 집을 나간 지 몇 달이 지났고, 혜화역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메일 답장도 없고, 최근에는 네이버 블로그도 폐쇄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별일 아닐거야. 어디서 평소처럼 잘 살고 있겠지 뭐. 가출은 자주 했었잖아?” 그러나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와 이메일은 과자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후로 겨울이 오면 가끔은 걱정을 했다. 여름에야 어떻게든 노숙이라도 한다지만, 추운 한겨울에는 어쩌나. 그런 걱정은 아주 가끔 내 안온한 삶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왔다. 옛날에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라고 추억할 정도로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 후로 한번도 과자를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를 봤다. 소공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얼마간은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게 사라져버린다. 사라져버린 소공녀를 가끔 추억하는 친구들은, 안온한 삶을 끌어안고 산다. 그 안온한 삶에도 걱정과 고민이 가득하다. 그러니, 누구도 소공녀를 재워줄 수 없다. 소공녀의 사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