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수확이 있는 날에는 기분이 좋다.
오늘의 수확은 이원하의 시집을 사게 된 것이었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습관처럼 교보문고에 갔는데, 시집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2020. 4. 1.에 초판이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시는 고인물 대잔치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동세대 시인을 발견하기 어렵다. 박준이나 오은 정도가 나와 가까운 편일까. 박준의 시는 얼마간 좋아했지만 자주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친구랑 술김에 하소연하듯 시를 읽고 싶을 때가 있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가 드물 듯이 코드가 잘 통하는 시도 드물다.
이원하 시집에는 귀여운 시가 많았다.
영원히, 말고
잠깐 머무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전화가 오면 수화기에 대고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자랑해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자랑해
<환기를 시킬수록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중>
마음이 두 개이고
그것이 짝짝이라면 좋겠어요
그중 덜 상한 마음을 고르게요
덜 상한 걸 고르면
덜 속상할테니까요
<마음에 없는 말을 찾으려고 허리까지 다녀왔다 중>
당분간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그렇고 그런 말들
내가 입기엔 너무 큰 말들
비가 그쳤는데 급하게 우산을 펼치는 말들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중>
말미에 실린 신형철 작가의 해설도 참 좋다. 신 작가의 해설은 언제나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다.
참고로, 이원하 시인은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