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았다.
동명의 하루키 소설이 원작이라고는 하지만, 원작의 비중은 영화의 절반 정도 될 것 같다. 나머지는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류스케 감독의 순수 창작물(이거나 체호프의 희곡에 관한 류스케의 해석)이다. 그러니 절반씩 차지하고 앉은 하루키와 류스케가 팽팽하게 겨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류스케의 각본이 문학적으로도 하루키 못지 않게 혹은 때때로 더 뛰어나다는 느낌이다. 영화감독의 문학성이 대가를 이룬 소설가와 겨눌 정도이니, 지극히 연극적인 건조한 연출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연극적인 연출. 이 영화에서 류스케의 연출은 체호프적이다. 원작에서는 간단하게 제목 정도만 등장하는 체호프의 <반야 아저씨>를 류스케는 적극적으로 극중으로 끌어들인다. <반야 아저씨>의 대사는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 속 화자의 말로 재배치된다. 재배치된 체호프의 대사가 보여주는 보편성은 '연기' 또는 '연출'이라는 행위의 보편성으로 확장된다.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둔 것처럼 느껴지는 문학적 체험. 극중 대본 리딩이 류스케의 연출론을 옹호하듯, 류스케의 연출은 체호프의 문학론을 옹호한다. 주인공은 체호프의 바냐이고 하루키의 가후쿠이며 류스케 감독 본인이지만, 이들은 화학적 결합 없이 중첩된 모습으로 여러 번 관객에게 밀려온다.
* 붉은색 사브 900 터보가 너무나 아름답게 나온다. 차의 존재 자체가 영화의 문학성을 배가시킨다.
** 봉준호 감독의 팬으로서, 남의 영화 포스터에 봉 감독의 평가를 대문짝만하게 적어두는 건 좀 너무한 홍보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