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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향기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에 몹시도 좋아했던 두 선배, 그리고 그럭저럭 가깝다고 생각하던 한 동기와 함께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났다. 또래끼리 나선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의 일정 계획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두 직접 한 것도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엉성한 계획이었고, 미숙한 탓에 더 싸게 갈 기회를 많이 놓쳤다.) 티벳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온 게 불과 몇 달 전이었으니,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능숙한 여행객의 풍모를 보이고 싶어했다. 여유가 곧 어른스러움이자 남자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꽤나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원어민에 가까운 일본어 실력자가 1명, 서브문화 덕후도 1명. 그리고 누구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가 여행 내내 날카롭게 의식한 것은 1대1의 성비였다. 나는 여선배들을 잘 따르는 편이었고, 또 여선배들은 나름대로 나를 귀여워했다. 그 선배들과 낯선 곳으로 열흘가량 여행을 떠난다. 대단한 로맨스를 기대하지도, 은근한 감정의 교환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혹여나 그런 순간이 올 것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뭐 그런 정도의 마음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모두가 작은 동요도 없이 여행 자체의 즐거움만을 마음껏 만끽하고 돌아왔지만.


  일단 삿포로에 도착하고 나서는 우리는 주로 기차로 이동했다. 고속열차, 완행열차, 야간열차, 전철까지 다양하게도 탔다. 여행은 역시 기차가 낭만적이라는 근거없는 편견 때문이었지만, 여행객을 위한 JR패스가 저렴하다는 실용적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일본인과 대화하게 된 것도 무수히 많이 탔던 그 기차들 중 하나에서였다.


  우리가 탄 기차의 좌석은 4석씩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었다. 바로 그런 마주보는 좌석일 것으로 기대하고 미리 예매한 4석은 실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2석씩 일렬로 나뉘어 있었고, 결국 나와 내 동기는 모르는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서 4시간을 가야 할 운명이었다. 그렇게 나누어 앉아 출발한지 30분쯤 지났을까, 내내 비어있던 우리 앞좌석에 드디어 승객이 한 명 앉았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일본 여자였다.


  그 사람이 20대 여자가 아니라 40대 남자였다면, 60대 할머니였다면, 혹은 10살 먹은 어린아이였더라도 내가 말을 걸었을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쁘장하게 생긴 20대 여자였다는 점이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 사람에게 나는 문득 ‘헬로-’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그 사람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러나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하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영어였는지, 아니면 일본어였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말하자면 여행객만이 가질 수 있는 뻔뻔함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름을 묻고, 또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묻고, 우리나 한국에서 온 대학생이며 홋카이도를 처음 여행하고 있다고 붙임성 있게 대화를 걸었다.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와 손짓을 섞어가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내가 대략적으로 알게된 사실은, 그 사람이 24살이며, 미용업에 종사하고 있고, 지금 친구를 만나서 놀다가 할머니댁에 가고 있다거나 하는, 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시시콜콜한 신상정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보는 낯선 이방인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별 것 아닌 대화에도 몹시도 신나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대화한 것만으로 수년간 교류했던 친구처럼 가깝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뿐임을 알았다. 어차피 기차에서 내리고 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운명이었고, 이를 서글퍼할 것도 아니었다. 도착지가 가까워오자 머뭇거리던 그 사람은, 문득 결심한 듯 친구와 찍은 스티커사진을 한 장 지갑에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억해달라는 의미였을까.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사진이었던 증명사진을 건넸다. 여권 분실에 대비해 가져온 예비분이었는데, 여권용 증명사진이 모두 그렇듯 대단히 못난 사진이었다. 대단히. 그렇게 그 사람은 아쉬운 표정으로 목적지에 도착해 먼저 내렸고, 우리는 삼십분인가를 더 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로 나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턱대고 대화를 걸었다. 하노이행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베트남인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는데, 6시간 가량의 비행시간 동안 ‘배고파요’ ‘화장실 어디에요’ ‘당신 참 예쁘네요’ 와 같은 생존베트남어(?)를 가르쳐주었다.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버스에서는 노란 머리의 일본인 배낭여행객과 금세 친해져서는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물론 서로 가끔 어색하게 좋아요만 누를 뿐 다른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는다.) 미얀마에 가는 동안 알게 된 어느 사업가 아저씨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런 식이었다. 여행객이 말을 걸어올 때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은 만국 공통의 에티켓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어쩌면 여행객만이 가질 수 있는 적극성과 뻔뻔함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무엇보다도 여행객이라는 지위를 남용하는 일이 즐거웠다.


  지난 목요일, 오랜 여행 끝에 한국에 돌아온 지인을 만났다. 외국물이 하나도 빠지지 않아 에스닉한 분위기의 그 사람에게서 여행자의 향기가 났다. 내가 무척이나 그리워하뎐 향이었다. 사람들이 자유로움 따위의 어려운 말로 설명하곤 하는, 그리고 내가 여행자의 뻔뻔함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향. 나는 내가 얼마나 근사하게도 나를 기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지난 날의 기억과 다짐은 모두 잊고 괘씸하게도 근사한 속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밖에 꿈을 꿀 줄 모르는 근사한 속물 말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사람도, 풍경도, 음식도, 음악도 모두 이 세상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여행을 사랑해본 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소중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기를 쓰고 여행을 떠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을 여행으로만 채울 수 없으니, 언제나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 매 순간 달라지는 모든 햇살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지난 몇 달의 삶의 태도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내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