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길고 좁다란 도서관 반대쪽 끝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한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책을 덮고 긴 도서관 통로를 걸어와서는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계속 날 쳐다보고, 나도 계속 당신을 돌아보고 있으니, 서로 이름쯤은 알아야겠네요. 저는 힐러리 로댐인데요. 당신은요?" - 빌 클린턴, 마이라이프
오늘은 긴 밤산책을 했다. 종암경찰서를 지나 개운산을 빙 두르는 산책길이었다. 산등성이를 타고 조성된 산책길을 걸으니 양 옆으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탁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기분전환으로 걷기에는 충분했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서울의 작은 공원들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숲이나 선유도공원처럼 대규모 공원 말고, 산책을 즐겨하는 동네 주민들이나 알법한 소박한 공원들 말이다. 서울에서 10년쯤 살고 보니, 동네마다 추천할만한 작은 공원들 한 두개 쯤은 알게 되었다. 굳이 시간내서 찾아갈 가치라고는 전혀 없지만, 식후에 삼십분쯤 산책하기에는 좋은 공원들. 커피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서 나뭇잎이나 세고 있기 좋은 그런 공원들. 뭐, 그런 공원에 대해서 알고싶어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연인을 은밀히 흠모하는 악취미는 그만두기로 했다. 조연이 주연을 넘보는 순간 극은 엉망이 되는 법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좋은 작품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기나 갈고닦을 일이다. 희극이 올지, 비극이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나 은밀한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 자체로는 흠도 하자도 아니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는 때와 장소, 맥락이 맞아야 한다. 시도때도 없이 감정을 까보이며 시청을 강요하는 것은 바바리맨의 일이다. 감정적 바바리맨. 스릴있고 흥분되겠지.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다.
빌 클린턴의 자서전을 읽었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힐러리를 만나는 대목 뿐이었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달랐다. 클린턴이 열성적인 민주당원으로 대학시절부터 전국 곳곳의 선거판을 얼마나 뛰어다녔는지는 내 삶의 지침을 세우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일은 오바마의 자서전을 읽어보려 했으나.
용산에서 근무중일 때 힐러리 국무장관을 본 적이 있다. 티비로 보던 것보다는 키가 커보였고, 무엇보다 제스쳐가 거침없었다. 힐러리같은 사람과 평생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빌의 삶을 질투했다. 오바마 방한 때처럼 악수를 청하고 싶었지만, 힐러리는 내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