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심리불속행
최근 두 번의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았다. 판결(判決)은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라는데, 심리불속행도 판결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가? 판결문을 뜯어보아도 판단의 이유를 알지 못하니, 이름값을 못하는 편이다.
한 사건은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심, 2심에서 받았던 주문보다 1/6로 깎은 금액에 상대방과 합의를 봤다. “변호사님, 너무 고마워요. 안 잊을 거에요.” 의뢰인이 전화로 엉엉 울었다. 전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나도 같이 끌어안고 울었을 것이다. 비록 법원의 판단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의 서면이 설득력이 있으니 상대방도 1/6로 합의에 응한 터였다.
그러나 며칠 뒤부터 상대방은 우리의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 상대방 변호사님이 휴가라도 가셨나, 생각할 즈음,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이 나왔다. 어디서 언질이라도 받으셨던 것일까. 우연이라기엔 교묘했다. 합의를 하자던 상대방이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더니, 그대로 우리의 패소가 확정되고 만 것이다. 이번에도 의뢰인은 전화로 엉엉 울었다. 의뢰인의 아들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래도 되는지 따져 물었다. 전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나는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건은 처음에는 질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했다. 사안을 보면, 져도 좋을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원고와 피고 중 누가 지더라도 특별히 정의관념에 반할 것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을 살펴볼수록, 원심 판결문을 뜯어볼수록, 부당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판사가 이런 부분까지 놓쳐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론 그 자체만 두고 보면 별다를 게 없었지만, 관련 법리를 고려할 때 원심판결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나 역시 심리불속행이다. 해당 법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대법원 판단의 이유를 받아보지 못했다. 속이 쓰렸다.
의뢰인은 패소한 후에도 가끔 연락을 했다. 상대방과 어떻게든 연락해서 집행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무책임하게 들렸던 것일까. 언제나 절절했던 의뢰인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어떻게든 해보라며 소리를 질렀다. 심리불속행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고마움을 안 잊을 거라던 지난 말이 생각났다.
돌변한 의뢰인의 태도도, 싸늘해진 나의 마음도, 썩 달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