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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인질범_이영광

인질범 / 이영광

 

십 년을 쓰던 의자를 내다 버리는 아침

세상도 버려 온 내가 가구 따위를 못 버릴 리 없으니까,

의자를 들고 나가 놓아준다

 

의자도 버리는 내가,

십 년을 의자에 앉아 생각만 했던 사람을

버리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고 나가 놓아준다

 

이것은 너른 바깥에 창살 없는 새 감옥을 마련해 주는 일

이제 그만 투항하여

광명 찾자는 일

 

늙은 의자는 초록 언덕 아래로 실려 가고

고운 얼굴, 풍악(風樂)처럼 공중을 날아간다

 

잘 가라, 탈출이라곤 모르던 인질아

인사하면

잘 있어라, 포기라곤 모르던 인질범

답례하며

 

사정을 말하자면,

내게는 겨우 새 의자가 하나 생겼을 뿐이다

사정을 숨기자면,

다시, 투항이라곤 모르는 인질범이 되었을 뿐이다

 

오랜만에 좋은 시인을 발견해서 며칠을 우려먹었다. 시를 읽던 기세로 큰 돈을 들여 가구를 모두 바꿨고, 이제 나만의 작은 서재가 생겼다. 서재에 앉아서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며 책을 많이 읽어야지. 책도, 물도, 앉을 의자도, 서재도 있으니 이제 시간만 내면 된다. 시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