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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딜레탕트

공기가 건조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물을 자주 들이키려 해보지만 어느 순간엔가 목마름에 익숙해져 있다. 매 순간 평가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자존감이 최저인지

스페이스 공감에서 <My Funny Valentine>이 나온다. 재즈바에 가고 싶어졌다. 누구랑 갔더라. 처음 갔던 에반스클럽의 작은 무대가 좋았다. 작은 테이블도 좋았고, 작은 술잔도 좋았다. 재즈의 계획된 우발성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재즈가 좋았다. 재즈가 좋았고,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기분도 좋았고,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재즈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실은 그 날 이후 재즈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돌이켜 보건데 내 모든 은밀한 애착은 항상 그랬다. 나는 그저 젠체하는 딜레탕트 정도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어째서 어떤 것에는 그토록 쉽게 몰입하면서도, 정말 매혹을 느낀 대상들에는 그저 비껴서서 관찰만 하고 있었는지.

양가적 감정에 넌더리가 난다. 나는 관객의 관찰자적 지위에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은밀히 주인공을 질투하곤 했다. 정작 권유는 극구 만류하면서도, 내가 더 나았으리라는 정신승리에나 만족감을 느끼는 B급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은 망설여졌지만, 구경만 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래서 고작 취하는 스탠스란 거슬리는 잔소리꾼이거나, 입만 산 비평가 딱 그 정도.

오늘은 내가 좀 싫다. 근래에는 대게 그랬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잘했다고, 잘할 거라고 속삭여주는 손길이 그리운 모양이다. 이것도 퍽이나 유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