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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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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 공기가 건조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물을 자주 들이키려 해보지만 어느 순간엔가 목마름에 익숙해져 있다. 매 순간 평가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자존감이 최저인지 스페이스 공감에서 이 나온다. 재즈바에 가고 싶어졌다. 누구랑 갔더라. 처음 갔던 에반스클럽의 작은 무대가 좋았다. 작은 테이블도 좋았고, 작은 술잔도 좋았다. 재즈의 계획된 우발성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재즈가 좋았다. 재즈가 좋았고,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기분도 좋았고,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재즈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실은 그 날 이후 재즈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돌이켜 보건데 내 모든 은밀한 애착은 항상 그랬다. 나는 그저 젠체하는 딜레탕트 정도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어째서 어떤 것에는..
마담 보바리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말 하잘것없고 공허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우리 인생을 이어주는 사슬에는 항상 어느 한 고리가 빠져 있고 객관적 무의미와 순전히 주관적인 의미가 안겨주는 서글픔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아르놀트 하우저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플로베르가 말했을 때, 그는 자기 경멸과 더불어 보바리에 대한 얼마간의 애착을 담으려 했을 것이다. 조야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딘가 낭만적 전망을 꿈꾸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숙명이라면, 누군들 한번쯤 보바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로부터 도피해 다른 어떤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보바리즘이라면, 소설이라는 형식이야말로 이미 보바리즘적 욕망을 체현하고 있는 구성물이다. 교양소설이 주관..
20100915 전화_ 그 사람이 내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 맞췄다. (몇 달 만인데도) 전화를 받자마자 뭐해요, 라고 물었더니 문원이구나, 하고 대답해 주었다. 서운했던 감정도, 침울해 있던 저녁도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안 그래도 5분 전에 생각났었다는 입 발린 말에도 잘도 넘어가 버렸다.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기저기 잘 걸어 다닐 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을 때면 종종 떠오르곤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피곤한 인상이 신경 쓰였는데, 요즘엔 전처럼 좀 장난끼 있게 웃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사악하던 송곳니. 누나와 추석에 할머니네 갈 약속을 잡았다. 밤늦은 전화였는데도 설계중이라 바쁘다고 했다. 요즘에도 야근을 많이 하는 걸까. 바뀐 번호를 가족에게 알려주는 것도..
2010908 위선과 나약함. 위선, 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 오히려 나약함, 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알아.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얼마나 희극적으로 비칠지. 하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건 그냥 내가 못난 인간인 탓이니까.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해. 나라고 해서 다를 리 없잖아. 욕망이 있고 두려움이 있는 나약한 인간이야.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그러는 거야. 심지어 때로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눈 딱 감고 저지르기도 해. 그리고는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그래놓고선 다 잊고 또 저지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사람인지, 내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의식하면서 살아가. 실은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오히려 그래서, 내가 얄팍한 인간이라서, 더욱 뭔가 숭고하고 이상적인..
Synecdoche, New York. There was supposed to be something else. You were supposed to have something. Calm. Love. Children. A child at least. Children... Meaning. "Everything OK? Eric?" "Everything is everything" He hates me. I disappointed him, and he hates me. "Everyone is disappointing, when you know someone"
다시, 무너질 것 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자신감을 얻고 있다. 필사적으로 쥐어잡던 손아귀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망해졌다. 어디에 가나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 그러나 변화를 만드는 것은 그 비슷한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실은 어디에 가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떤 인생을 사느냐는 단지 운에 걸려있거나 하는 것이다. 태도는 단지 불만을 억압하기 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