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1) 썸네일형 리스트형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나이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나이. 작은 힌트 하나에도 들떴다가, 이내 깊이 가라앉는다. 좋은 인연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지만,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두 시간만 함께 대화를 나누어도, 깊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는 사랑하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서건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사랑에는 애초에 매력이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기분. 기분을 흉내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어제는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늘은 ‘얼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열정’이라고, 또 언젠가는 ‘경외감’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일까? 사실 어느 쪽도 아니다. 이상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쨌거나 종종 안기고 싶은 것이 생긴다. 올드패션드. .. 비위생적인 사랑, <Shape of Water> 2018 비위생적인 사랑, A는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고 했다. B는 자기 인생영화 리스트에 들었다고 했다. C는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다. 나는 캡쳐 한 장면을 프로필에 걸어두었다. 누가 뭐래든,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야기는 와 닮아있다. 미녀는 미녀가 아니고, 야수는 야수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많은 지점에서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로 읽힌다. 악당 스트릭랜드가 의 개스통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에서 잘생기고 강하며 당당한 백인 청년은 영화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힘과 권력을 숭상하고,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며, 약하고 가련한 것에 대한 연민이 없고, 지식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한다. 스트릭랜드는 실은 캡틴아메리카같은 아폴론적 영웅.. <패터슨Paterson> _ 짐 자무쉬Jim Jarmusch 런던을 갈까 말까 며칠을 망설이다가 내일자 항공권을 질렀다.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신작 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은 시적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언 그대로 마치 시와 같다는 말이다. 시는 그저 단어들이다. 단어에는 표정이 없다. 단어의 선택로부터 표정을 짐작해 볼 뿐이다. 영화의 시선도, 남주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의 연기도, 종이에 적힌 시처럼 담담해서 모호하다. 그리고 그 담담함이 감정의 진폭을 넓힌다. 주인공은 말하자면 방구석 시인이다. 위대한 시인도 몇명을 탄생시킨 조용한 소도시 패터슨에서 그는 혼자서 가끔 시를 쓴다. 비밀노트에 적어내려간 몇 편의 시가 언젠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쩌면 위대한 시로 칭송받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아마도 그저그런 시시한 시겠지만. .. <1987> 봤다 ㅎ선배의 이야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녹두호프에서 청춘을 허비한 밤이었다. 막차가 끊어지자 ㅎ선배는 인학실(인문대 학생회실)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학교로 올라왔다. 운동권 소굴이던 인학실에는 밤샘 작업을 위한 낡은 2층침대가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문제는 ‘공식적으로는’ 12시 이후에 학교 건물에 출입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자동문이 모두 잠긴다는 점이었다. 당시 인학실은 인문대 3동에 있었다. 인문대 건물은 언덕을 따라 8개동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앞동은 문학계열, 뒷동은 사철계열이었다. 중간쯤에 위치한 3동도 언덕을 깎아가며 지었기 때문에 전면은 평지였지만 후면은 2층까지 대지가 솟아있었다. 후면 언덕에서 3동 2층 뒷문으로는 구름다리가 하나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 뒷문 옆이.. 12월 1일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잠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로 로스쿨에서의 마지막 학기시험이 끝났다. “무사히 수료는 하겠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쨌든 나도 무사히 수료는 하게 되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즐거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지치거나 외로운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날들은 잔잔하게 지나갔다. 그런 잔잔한 일상이 모여서 행복을 이루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이제 학교를 떠나도 매일매일을 잔잔하게 잘 살아내야지. 그래서 요즘에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본다. 숭고함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일단 학자금부터 갚고’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대단치도 않은 빚이지만, 로펌행의 핑계로는 제격이다. 핑계마저 다 떨어지면 무슨 말로.. 어제 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멀리할 필요는 없지. 그건 그냥 솔직한 거니까. 사람이 너무 돈돈 해대면 피곤할 수는 있지. 그래도 돈은 결국 가치잖아. 가치를 원한다는 말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지.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돈을 안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돈에 미친 사람일 테니까. 그래도 말이야,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나은 말들이 있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은 사정이 있지. 잘생기고 예쁜 얼굴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하루종일 거울만 보고 있다면 그건 건강하지 않은 거잖아. 어쨌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냥 모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궁금하지도 않았던 일들인데 이제 너무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서 피곤해.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그냥 사는 것 같아서 ..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적어도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는 말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그의 부인 조세핀 호퍼도 유망한 미술가였고, 에드워드의 작가적 성공을 위하여 미술을 포기했으며, 그는 부인을 모델로 여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의 그림은 정적인 태도로 현대인의 짙은 멜랑꼴리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중에는 방 안에 혼자 있는 조세핀의 뒷모습을 그린 것도 여럿 있었다. 그의 그림 다수는 아마도 뉴욕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미국 미술관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갔던 건 4년 전이다. 화창한 여름 날씨가 좋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겨울의 뉴욕은 날씨가 최악이라는데, 미술관은 다닐만 하려나. 조세핀의 .. 산책, 산 책. 먼저 산책. 때때로 이유 없이 시청 주변을 걷는다. 서울의 밤은 어딘가 음흉한 느낌이 있다. 오늘은 명동에서 저녁으로 회냉면을 먹었다. 여름에는 함흥냉면이, 겨울에는 평양냉면이 땡긴다. 광화문으로 올라오는 길에 하얀 칫솔도 하나 샀다. 구경할 것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어느 일본인 노부부를 보면서, 서대문 쪽에서 에어비앤비를 하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는 서촌을 걸었다. 수성동 계곡에 올라 정자에 누워 한참을 보냈다. 날이 무척 더웠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인왕산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동행의 웃음소리가 나른했다. 이런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 때는 괜찮았다. 금요일에는 회나무길도 걸었다. .. 이전 1 2 3 4 5 6 7 8 ··· 13 다음